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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첫 기동전단 이범림 초대 전단장

화이트보스 2010. 2. 25. 16:41

해군 첫 기동전단 이범림 초대 전단장

1982년 임관… 세계에 맹위 떨친 청해부대 지휘
“세계 바다 누비는 대양해군 기대하세요”
▲ photo 대한민국 해군본부
부산시 남구 해군 작전사령부 부두에는 한국형 구축함(KDX-Ⅱ) 왕건함이 정박해 있었다. 4500t급으로 우리 해군이 보유하고 있는 한국형 구축함 6척(이순신함·문무대왕함·대조영함·왕건함·강감찬함·최영함) 중 4번째 함이다. 기동전단장 이범림(51) 준장을 만나기 위해 해군 관계자의 안내를 받아 왕건함에 올랐다. 왕건함은 지난 2월 1일 대한민국 사상 처음으로 출범한 해군 제7기동전단 소속 함정 중 하나다. 창설식 당시 총집결했던 함정의 대부분이 출동 중이어서 부두는 조용했다. 1년 중 잘해야 90일 정박한다는 왕건함에서 인터뷰를 하게 된 건 그나마 행운이었다.

접견실에서 기다리니 약속시간인 오후 3시30분에 딱 맞춰 이 준장이 나타났다. 1959년생으로 해군사관학교 36기(1982년 3월 임관)인 이 준장은 대한민국 해군사에 영원히 남을 보직의 초대 지휘관이 되는 영광을 누린 인물이다. 기자가 만난 이날은 그가 제7기동전단장에 임명된 지 나흘째 되는 날이었다. 중간 정도 키, 다부진 체격의 호남형인 그는 “부임 인사를 하기 위해 지역 육군과 해군 관계자를 만나고 김해에서 올라오는 길”이라고 했다. 예정된 인터뷰 시간이 끝난 직후엔 “회의가 있어 먼저 가봐야 한다”며 악수를 청하곤 어디론가 뛰어갔다.


세계 바다 어디든 출동!

제7기동전단이 창설된 지난 2월 1일, 주요 언론은 창설식 현장 풍경을 보도하며 ‘대한민국 해군의 기념비적 사건’으로 대서특필했다. 그럴 만도 하다. 1945년 해방병단(海防兵團)이란 이름으로 출발한 우리 해군의 당시 재산은 미국으로부터 물려받은 몇 척의 구형 함정이 전부였다. 그런데 불과 65년 만에 세계 어디든 출동해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기동전단을 갖춘 ‘대양(大洋)해군’으로 거듭났다.

해군 최초 기동전단 지휘관, 엄청난 중임(重任)이다. 이 준장은 “기쁨에 앞서 무거운 책임감과 사명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번 창설식 때 정말 많은 분이 와주셨습니다. 국민이 우리 기동전단에 얼마나 큰 기대와 열망을 갖고 있는지 깊이 느낄 수 있었어요. 전 장병이 한마음 한뜻이 돼 하루 빨리 부대를 정착시켜 국격(國格) 향상에 앞장서고 국제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제7기동전단의 가상 항진(航進)도. / photo 대한민국 해군본부
기동전단을 창설하는 건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수상·수중·항공 등 어떤 작전도 수행할 수 있어야 하므로 반복된 해외 연합훈련을 통한 경험과 지식, 즉 소프트웨어 구축은 필수다. 이를 뒷받침하는 하드웨어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이지스구축함(KDX-Ⅲ)과 구축함, 잠수함, 항공기 등 다양한 첨단전력이 여기에 해당한다. 기동전단 유무가 곧 그 나라의 국력을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준장은 여기에 또 하나의 의미를 부여했다. ‘해양시대를 맞아 국내외 해양안보 측면에서 해군의 역할이 중요해졌으며, 그 중심에 기동전단이 있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서해상에서 발생한 세 차례 해전이나 NLL(북방한계선) 해상에 대한 해안포 사격 같은 북한의 도발, 해양자원을 둘러싼 세계 각국의 영유권 분쟁과 대양에서의 해적행위 증가 등은 국내외 해양안보에 대한 해군의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해군의 브레인’… 본부 정책실장 출신

▲ 2월 1일 제7기동전단 창설식 현장에 총집결한 세종대왕함(제일 뒤)과 한국형 구축함들. / photo 조선일보 DB
세계 해군력의 60%는 서울을 중심으로 2000㎞ 반경 내에 집중돼 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G20 소속 선진국 역시 국가 위상에 걸맞은 강력한 해군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번 제7기동전단 창설은 우리 해군이 선진국 못지않은 위상을 갖추게 됐다는 점에서도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 준장은 “이젠 우리 함정으로 다국적군과 함께 해외에서의 국가경제활동을 보호하는 등 우리나라의 안보관리 능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임관 21년째인 2003년 한국형 구축함 2번함 문무대왕함 초대 함장을 맡아 2년간 조직을 안정적으로 이끌었다는 평을 얻었다. 최첨단 장비를 갖춘 대형 함대 지휘 경험은 기동전단장이 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다. 유창한 외국어 구사 능력 역시 그가 기동전단장에 발탁되는 데 적지않은 역할을 했다. 그는 2000년 캐나다 합동참모대에 파견 근무한 경력이 있다. 기동전단장에 오르기 직전엔 ‘해군의 브레인’으로 통하는 해군본부 정책실장을 역임했다. 해군 수장이 갖춰야 할 덕목을 두루 갖춘 에이스인 셈이다. 물론 그의 성공 뒤엔 든든한 지원군, 가족이 있다. 그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요즘도 저녁식사 후엔 아내, 두 딸과 함께 집 근처 산책에 나설 만큼 가정적인 가장이다. 이번 발령을 누구보다 기뻐해준 이들 역시 가족이었다. 이 준장은 경기 고양 출신이다.

제7기동전단은 71전대와 72전대로 나뉘어 부산과 진해 해군기지에 각각 배치된다. 현재 보유 함정은 해군 첫 이지스함인 세종대왕함과 4500t급 한국형 구축함 6척 등 7척. 오는 8월 두 번째 이지스함 율곡 이이함이 실전배치되면 8척으로 늘어난다. 2014년 완공 예정인 제주 해군기지를 모항(母港)으로 본격적 원거리 작전능력까지 갖추게 되면 명실상부한 ‘해상 파수꾼’으로서의 진면모를 발휘할 전망이다.

제주해군기지는 지난 1993년 합동참모회의에서 건설하기로 한 지 17년 만에 착공이 결정됐다. 국방부와 해군은 수차례에 걸친 주민 대토론회, 200여회 이상의 사업 설명회와 방송 토론회 출연, 제주도민 여론조사 등 지속적 주민 설득과 대안 제시를 통해 단계적으로 사업을 추진해왔다. 이 준장은 “특히 제주해군기지는 해군함정 20여척과 15만t급 크루즈 선박 2척을 수용할 수 있어 일자리 창출 등 막대한 경제적 효과가 예상된다”고 했다.


“장병 마음 움직이는 리더 될 것”

▲ 제7기동전단의 부대마크. / photo 대한민국 해군본부
4월 10일 이 준장은 소말리아로 출국한다. 연합해군사령부 소속 다국적 부대 CTF-151 지휘관 자격으로 약 4개월간 아덴만 해역에서 해적 퇴치를 통한 선박 안전수송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다. 한국 해군이 다국적군의 지휘관을 맡게 된 건 유례가 없는 일. 국제사회에서 우리 해군의 위상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그는 “앞서 소말리아 해역에 진출, 국내 기업의 해외 경제활동을 돕는 등 맹활약 중인 청해부대가 세계적으로 위상과 능력을 인정받은 덕분”이라며 겸손해했다.

창설 원년인 만큼 올 한 해 제7기동전단은 숨 돌릴 틈 없이 분주할 전망이다. 오는 6월 하와이에서 진행되는 세종대왕함 전투체계종합능력평가(CSSQT)를 비롯, 청해부대 4·5진 출항, 림팩(RIMPAC) 훈련 등 다양한 해외 연합훈련이 예정돼 있다. 빠른 시간에 내부 역량을 강화해 ‘적이 감히 넘볼 수 없으며 국가정책을 강력한 힘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정예선진해군의 초석을 세우겠다는 게 이 준장의 복안이다.

이범림 준장은 해군본부 정책실장으로 복무하던 지난해 2월 4일 국방일보에 칼럼 하나를 기고했다. 제목은 ‘등 뒤에서 부하 이름을 불러주어라’. 다음은 그 일부다. “찜질방과 같은 무더운 기관실 바닥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정비작업을 하고 있는 부하의 등 뒤에서 그의 이름을 불러주면서 수고한다는 말 한마디를 건네라. 그날부터 그 부하는 지휘관의 팬이 되고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앞장서게 될 것이다.” 그는 “지휘관 생활을 하며 남에게 받는 인정이 자신감과 신명으로 이어진다는 진리를 깨달았다”며 “제7기동전단을 이끌 때도 구성원이 자발적으로 목표 달성을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리더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 부산=최혜원 기자 happyend@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