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발전이 대안이다/자주 국방

<모기>와 <무소유>에 대한 법정 스님

화이트보스 2010. 3. 14. 13:38

<모기>와 <무소유>에 대한 법정 스님 [0]
김영일(choen3) [2010-03-12 21:43:33]
조회 158  |   찬성 1  |   반대 0  |  스크랩 0

   법정(法頂) 스님의 입적은 평소 그의 건강하고 정정한 모습에 비추어 볼 때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폐암으로 투병하다가 숨을 거두었다는 사실이 정녕 믿기지 않는다. 스님은 흔히 보는 시체의 스님들과는 전혀 딴 모습으로 살아 온 것도 하나의 특이한 인상에다가, 그의 행동반경에 따라 세속의 많은 이목과 관심을 끈 점에 있어서도 압권이 아닌가, 여겨진다.


   그는 저 유명한 송광사(松廣寺)의 고승 효봉(曉峰) 스님(훗날 조계종 종정이 된 분)의 제자로 불교에 입문한 것이 인연이 되어 <법정>이라는 승명을 가졌는지 모른다. 효봉 스님은 원래 판사로 재직했지만, 자신의 오판으로 생사람에게 사형을 선고함으로써 무고한 자의 생명을 앗은 것이 후에 진범이 잡힘으로써 드러나자, 판사라는 직을 과감히 저버리고 처자식에게도 알리지 않고 가출하여 불교에 입문한 ‘양심’이었다.


   스승을 기리는 뜻에서 <법>자를 딴 것인지, 아니면, 불교계에서는 삼라만상을 모두 <법>으로 해석하는 것인 만큼, 부처의 법을 철저히 준행하는 <이마>(頂>라는 뜻으로서의 <법정>이라는 승명과 인연을 맺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가 내뿜는 기(氣)는 부드럽고 인자한 그 무엇이 아니라, 뭔가 단호한 의지로 내공(內攻)이 다져진 그런 모습을 늘 느끼게 했다.


   앞모습뿐만 아니라, 뒷모습도 바지 가랑이가 바람에 나풀거리지 않게 단단히 조여 맨 듯한 차림은 먼 길을 떠나는, 결연한 그 무엇이 감도는데 요즘 자가용을 흔히 몰고 다니는 승려의 세계와는 딴판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최근 몇 년 동안은 강원도 산골 오지에 깊숙이 들어가 움막에서 혼자 끼니를 해결하는, 어려운 수도생활을 해 온 것으로 알려진다.


   필자가 아는 법정 스님이란 승명이 1970년도부터 신문지상에 오르기 시작한 것으로 기억된다.  박 정희의 공화당 정권이 <3선 개헌> 추진으로 뒤숭숭한 때였다. 당시 비민주적 정국의 흐름에 저항하는, 뜻있는 사회적 중진인사들로 구성된 <민주수호국민협의회>라는 시민집단이 등장했다.


   이 명단 속에는 법조계 인사로는, 이 병린(李 丙璘), 이 병용 변호사 등이 들어 있었고, 언론계로는 동아일보 주필로 있었던 천 관우(千 寬宇), 종교계로는 유일하게 법정 스님이 올라 있었으며, 문학계에서도 여러 작가들의 이름이 보이기도 했다. 주로 이 병린 변호사 사무실에서 상기 인사들이 모여 선언문을 낭독하는 수준의 집회였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자 젊은이를 통해 게릴라식으로 신문사에 선언문을 전달하는 것이 활동의 고작이었을 뿐이었다.


   그 뒤 국회에서 ‘3선 개헌안’이 통과되고, 유신선포에 이르기까지 경색된 정국으로 상기 집단도 실제로 어떤 활동도 못했지만, 각종 선언문들이 계속 음성적으로 나돌고 있었다.  공화당 정권이 무너지고 난 뒤의 법정 스님의 활동은 가시적인 민주투쟁보다 <글을 통한 우회적인 문화운동>이었다고 생각된다.


   알기 쉬운 수필을 통하여 벌인 계몽활동이야 말로 법정 스님의 대민(對民) 접촉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웬 할머니가 ‘해인사 8만 대장경’을 가리켜 ‘그 빨래판 말인겨?“ 라고 반문했을 때, 불교의 진리를 절간에 화석화시킬 것이 아니라, 쉬운 말과 글로 대중화시킬 필요를 느꼈다고 말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생각된다.


   스님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시민생활을 제시하기 위해 불교의 교리와 연관시켜 가볍게, 알아먹기 쉽게, 길지 않게(지루하지 않게), 재미있게 글을 쓰는 것이 그의 장기이기도 하다. 주로 <샘터>라는 잡지에 정기적으로 글을 실거나 ‘단행본’으로 내는 경우가 빈번했다.


   필자는 간혹 그의 글을 읽은 것 가운데 가장 인상 깊게 기억에 남는 것은 모기에 대한 연민의 글이었다. 자신의 몸에 피를 빨아먹는 모기를 발견한 스님이 순간적으로 내리쳐 죽임으로써 불가의 한 인간으로서 가지는 뉘우침이 바로 그것이다. 모기라는 미물 한 마리가 인간의 피를 빨아먹는다고 하더라도 1mg의 몇 십분의 1도 안 되는 피를 훔쳐 먹는다고 그 미물의 생명까지 뺏을 수 있느냐?라는 것이 그의 센티멘틀리즘이었다.


   모르긴 하되, 불교의 교리에 따르면, 인간이나 인간 이외의 생물은 계급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중생(衆生)인 것 같기도 하다. 미물의 생명을 빼앗은 데 대하여 그런 권리가 있는가? 를 생각하면, 정말 부끄럽고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그의 고백은 사후약방문이기도 하지만, 그의 연민의 정에 이해가 가고도 남음이 있었다.


   왜 필자는 이 모기타령을 크게 부각시키느냐? 하면, 그의 숱한 수필 가운데 이 글을 제1의로 내세우느냐? 하면, 그가 펴낸 단행본 가운데 <<무소유>>라는 제목이 유난히도 필자의 심정윤리에 거슬리고, 에세이 문집의 제목으로는 너무나 큰 위화감(違和感)을  주기 때문이다.


   결국 모기를 죽이는 것은 <실존의 존재양식과 소유양식(Being and Having Models of Existence)>의 문제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즉 모기가 생명을 가진다는 것은 <존재>를 의미하며, 그 모기를 죽이는 것은 모기를 죽일 수 있는 <소유>의 관념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죽이는 것이 소유의 범위 내에 자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보아진다.


   우리 인간은 시아노 박테리아라는 단세포로부터 진화해서 오늘과 같은 생물 분포도를 낳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 인간은 근-현대에 이르기까지는 고대 희랍과 로마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철학은 신과 인간과의 관계를 구명하는 인간의 <존재론적 의미>이며, 근-현대에서는 그런 관계의 추구보다는 <소유>의 문제가 철학이나 사상에 있어서 중심을 차지했다.


   칼 맑스나 에리히 프롬이 제기한 것이 근-현대의 화두가 되는 바로 소유(having)의 문제이다.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소유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는 것은 불가피한 논리적  귀결이며, 그러한 상호적 관계는 <존재>와 <소유>중에 어느 것을 최우선적으로 상위(上位)에 둔다는 것은 참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보아진다.


  불교나 기독교에서 무소유(無所有)를 권장하는 것은 이해나 납득은 되는 일이다. 석가는 인간발전의 최고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소유를 갈망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으며, 예수는 누가 복음 9장 24절에서 25절에 이르기까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따라야 한다. 이제 목숨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제 목숨을 잃거나 망해 버린다면,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


   법정 스님은 고대로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의 <존재론적 문제>보다는 스님이 태어난 전라도의 오래 된 시원적(始原的)인 빈곤-이것은 3국 통일부터 주어진, 정치적 이유이기도 하다-에 동향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시달려 온 데 대하여 더 주목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역사적으로 쌓인 한을 남한에서부터 해소하는 것이 통일에 이르는 첩경인지도 모를 일이다.


   결론적으로 <무소유>로는 <존재>가 불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소유와 존재는 유기적으로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것은 <필연>이다. 이 관계를 법정 스님이 모를 턱이 없겠지만, <무소유>를 책 제목으로 강조하다시피 내건 것은 무엇 때문일까?


   지나친 소유로는 타인의 존재를 불가능하게 한다는 말을 역설적으로 강조하기 위해 <무소유>를 내세운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미물의 모기에도 생명의 존재를 누릴 자연의 섭리를 내세운 것을 보아 타인의(가지지 못한 자의)무소유는 바로 존재론적 의미가 없다는 것을 가르치려고 한 것이라고 보아진다.


   가지려는 소유의 욕망은 인간의 타고난 무한 욕망이며, 이를  채워주는 것이 <<시장경제>>의 매개체이다. 이를 통해 이 나라는 산업화를 달성함으로써 절대빈곤의 숙명적인 빈곤에서 헤어날 수 있었던 것은 너무나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산업화의 달성은 우리 모두의 피땀 어린 결과의 성과이지 특정 계층의 독점적인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고 본다.


   아직도 이 나라는 정의의 평등한 복지국가라고 일컫기에는 요원하다. 서민이 부유층의 부를 <불노소득>으로 기생해서도 안 되지만, 부유층은 정당하게 서민들에게 일자리를 기피하고 <자동화>하는 방향으로 오우토메이션 해서는 결국 산업평화는 결코 이루어질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