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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도 '압축성장'한 한국

화이트보스 2010. 3. 17. 11:37

기부도 '압축성장'한 한국

입력 : 2010.03.16 22:25 / 수정 : 2010.03.17 00:45

지난 13일(현지시각) 인구 1만6000명의 칠레의 폐광촌 로타(Lota). 지난달 27일 대지진 이후 수돗물 공급은 보름째 끊겼다. 로타시는 진앙 인근에 있어 피해가 크지만, 작은 도시여서 정부의 복구 지원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었다.

이날 기아대책 김신성(49) 봉사단원은 현지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해 로타시 200여 가정에 일주일치 식량을 전달했다. 김씨는 원래 한국 기아대책에서 보내주는 후원금으로 볼리비아에서 600여명의 학생들을 공부시키는 봉사를 하고 있었다. 그는 대지진 이후 칠레에 급파됐다.

김씨는 "한꺼번에 주면 나중에 식량이 떨어질 수도 있다"며 "힘들어도 일주일 후에 다시 와야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비센시야 오레야나(78) 할머니는 "지금까지 아무런 지원도 못 받고 있었다"며 "한국 사람들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물이 없어 손도 제대로 씻지 못한 칠레 자원봉사자들이 감자를 으깨고 생선을 손질해 '감사의 점심'을 만들어 줬다. 감자는 고소했다.

그런데 이 작은 도시까지 들어온 한국인은 김씨뿐만이 아니었다. 한국 감리교단에서 파견된 2명의 선교사들이 지원을 위한 사전답사를 위해 이곳에 와 있었다. 다른 나라 구호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기자가 칠레에서 본 한국 구호팀과 봉사단의 활동은 우리나라의 '압축성장' 과정과 닮아 있었다. 현지인들도 한국인 구호품을 나를 때는 "빨리, 빨리"를 외쳤고, 구호팀은 소외된 '틈새'를 끈질기게 찾아다녔다.

지난 4일 칠레 한인회는 대지진 발생 5일 만에 4만5000달러를 모금했다. 그것도 한인 의류상가가 밀집해 있는 산티아고 파트로나토 지역에 있는 약 200여 상가와 교회 등에서 급하게 모은 돈이 그 정도다. 지난 6일 한인회에서 칠레 제2의 항구도시 산안토니오에 구호물품을 전달했을 때, 그곳 시장은 "칠레 정부보다 한인의 지원이 빨랐다"며 고마워했다.

이 밖에도 한인들은 옷과 담요 등도 8000벌이나 내놓았다. 한인 교회에서 추가로 10만달러 이상을 모았고, 성당과 사찰에서 모금활동이 전개된 것을 감안하면 구호액수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박세익 한인회장은 "파트로나토에서 장사하는 팔레스타인 상인이나 중국인 상인들은 따로 성금을 모으지 않았다"고 했다.

글로벌 기업 간의 기부경쟁은 삼성과 LG의 경쟁이다. 삼성은 현금 50만달러와 1900대의 태양열 충전 휴대전화를 칠레 정부에 기부했다. LG는 지진피해 지역 4곳에 무료 빨래방을 열 계획이고, 50만달러어치의 가전제품을 기부했다. 이 밖에도 소방대들에 따로 수백대의 휴대전화를 지급했다. 글로벌 기업 중 HP만이 산하 재단에서 50만달러의 성금을 냈고, 도시바는 5만5000달러, 캐논은 17만달러를 냈다. 홍현칠 삼성칠레 법인장은 "다른 전자업체들이 조용해 당황스러울 정도"라고 했다.

국가별 경쟁에서도 밀리지 않는다. 미국·중국과 일본 등 강대국들이 300만달러 안팎의 구호성금을 내놓을 때 우리나라도 200만달러를 내놓아 현지 언론에 주요 후원국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대지진 현장에서 본 대한민국은 기부에서도 선진국을 무섭게 따라잡고 있었다. 아직 '완성미' '노련미'는 떨어지지만, 칠레에서 '베푸는 나라, 코리아'는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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