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고목이 남쪽으로 쓰러지는 경우는 피해야"
북한이 화폐개혁에 실패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수명이 "3년쯤 남은 것 같다"(캠벨 미 국무부 차관보)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북한은 이대로 가면 '초읽기 상태'가 될 것"이란 우려가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와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소가 19일 강원도 양양 대명리조트에서 공동 개최한 '남북관계 전문가 대토론회'에서 김영수 서강대 교수는 "북한은 현재 일정기간 버텨낼 수 있다고 설정해 놓은 기간이 소진되고 있는 상황에 직면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올 초부터 북한 체제가 종전 궤도를 이탈하고 있기 때문에 "연내 미증유의 '북한 사태'를 경험할 가능성이 크다"는 말도 했다. 김 교수는 "현재 북한은 화폐개혁 실패가 보여주듯 시장 의존도가 높아졌고, 정보 유통 속도가 빨라지는 등 의미 있는 변화가 진행 중"이라고 했다. 남한 화장품과 전기밥솥이 '명품'으로 통하고 드라마 '아이리스'와 '선덕여왕'이 인기일 만큼 주민 의식이 변했고, 신병 탈영이 속출하는 등 북한군도 예전과 다르다는 것이다. 그는 "쓰러질 상태의 고목(枯木·북한)이 남쪽으로 쓰러지는 경우는 피해야 하는 상태가 도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류길재 경남대 교수도 "북한 급변 가능성이 미니멈(최소한) 20%는 넘어섰다"고 했다. 그는 옛날처럼 경제협력과 지원으로 북한 체제를 변화시키겠다는 것도 과욕이지만, 북한을 '빨리 끝장내자'는 태도도 우리 능력을 벗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현실적 (급변)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올해도 벼랑 끝 외교와 전통적 기만전술을 구사할 것인데, 미국과의 대립이 격화하면 김정일이 통제력을 상실할 수 있다"(유호열 고려대 교수), "김정은 후계는 결국 실패할 것"(박형중 통일연구원 박사) 등의 얘기가 나왔다. 올해 북한 위기의 근거로 ▲ 4~6월 춘궁기에 최소 50만t 식량 부족 ▲ 남한·중국 등 외부 지원 불충분 ▲ 김정일에 대한 주민 불만 확산 등이 거론됐다.
반면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북한이 곧 망할 것이란 주관적 기대(wishful thinking)만 내세워 대북 정책에 '올인'(다걸기)하는 것은 금물"이라며 "정부가 북한 불안정성에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정성을 회복할 가능성도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중국의 지원을 받는다면 당장 급변사태가 임박하지 않을 것인데, 북한을 압박만 하면 강경 대응을 유발할 뿐이란 설명이다.
이날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를 지냈던 이수혁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은 서울 삼청동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6자회담 진전이 쉽지 않고 자주 좌절했지만 6자회담을 대체할 다른 대안은 없을 것"이라며 "지금은 북한 급변사태를 대비할 시점"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