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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보다 비싼 ‘쓴 물’ 처음엔 이해 안됐죠”

화이트보스 2010. 3. 20. 09:31

밥보다 비싼 ‘쓴 물’ 처음엔 이해 안됐죠”

 
2010-03-20 03:00 2010-03-20 03:00 여성 | 남성
‘새터민 자립 카페’ 1호점 24일 오픈… 탈북 4명 바리스타 새 인생
“이젠 꿈에서도 커피이름 외워”



 19일 서울 중구 남산동의 북 카페인 ‘블리스&블레스’에서 새터민 청년들이 바리스타 교육을 받고 있다. 이들은 24일부터 열매나눔재단이 운영하는 커피전문점에서 일하며 커피를 만들어 팔 예정이다. 변영욱 기자
“카페라테 한잔 주세요.” “우유 180mL에 에스프레소 7g, 거기다 우유거품을 얹어야지.”

19일 서울 중구 남산동 청어람빌딩 1층 북 카페인 ‘블리스&블레스’. 24일 개점을 앞두고 한창 공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이곳에서 일하게 될 새터민들이 마지막 교육을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 카페는 사회복지재단 열매나눔재단이 새터민 청년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주기 위해 처음으로 문을 여는 카페 체인점이다. 새터민 4명이 개점과 동시에 바리스타(즉석에서 커피를 만들어 주는 사람)로 일하게 된다.

“처음에는 이렇게 쓰고 맛없는 걸 왜 밥보다 더 비싼 돈을 주고 마시나 싶었죠.”

나현화 씨(26·여)는 처음 ‘쓴 물’을 마실 때를 회상하며 인상을 찡그렸다. 북한에서 커피는 일부 고위층 사람들만 마신다. 나 씨는 처음 바리스타 교육을 받을 때만 해도 ‘쓴 숭늉을 잘 만들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커피 맛을 모르면서 커피를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바리스타로 일하게 될 새터민 4명은 ‘커피 적응’을 위해 바리스타 교육기간 3주 내내 하루에 커피 10잔 이상을 마셨다. 탁은향 씨(20·여)는 “처음에는 머리가 핑핑 돌 정도로 쓰기만 했는데 교육이 끝나니 이제 커피 맛을 좀 알 것 같다”며 빙긋 웃었다.

이들에게는 커피 용어를 익히는 것도 ‘외국어 배우기’만큼이나 어려웠다. 나 씨는 “커피 이름이 다 외래어니까 20가지가 넘는 메뉴를 일일이 기억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최남혁 씨(28)는 “‘카푸치노’는 거품이 많고 계핏가루가 들어간 것, ‘카페라테’는 우유가 많은 것, ‘허브티’는 향 나는 차… 이런 식으로 외웠다”고 말했다. 커피 이름으로 쪽지시험도 여러 번 봤다. 교육생 4명은 이제 “꿈에서도 커피 이름을 외운다”고 했다.

‘블리스&블레스’는 우리 사회의 취약계층인 새터민 청년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자는 취지로 열매나눔재단에서 지원하는 사업이다. 예비사회적기업에도 등록했다. 처음에는 똑같은 월급으로 시작하지만 실력과 성과에 따라 점차 급여를 달리 할 계획이다. 우수한 이들은 카페 주주로 발탁해 2호점, 3호점을 맡길 예정이다.

앞으로 3개월은 전문 바리스타가 이들을 도와주지만 그 이후에는 모든 일을 스스로 해야 한다. 재단은 이들 4명을 시작으로 계속 새터민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해 ‘지속 가능한 자립’을 도울 계획이다. 연내 4호점까지 문을 열 예정이다. 카페는 24일 오후 3시에 문을 연다. 개점식에는 현인택 통일부 장관과 신헌철 SK에너지 부회장 등 각계 인사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