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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믿고… 사업마다 채권 남발… 지자체 빚, 2년만에 17배

화이트보스 2010. 3. 20. 09:24

뭘 믿고… 사업마다 채권 남발… 지자체 빚, 2년만에 17배

입력 : 2010.03.20 03:10

국가재정 악화 우려
선거 앞두고 무리한 개발경쟁… 血稅로 막을 판

강원도는 2006년부터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알펜시아 리조트' 사업을 벌이고 있다. 강원도가 100% 출자한 '강원도개발공사'가 이 사업을 추진 중이며, 사업재원을 마련하려고 채권을 5100억원 발행했다.

전라남도 역시 장흥·해당 산업단지 조성, F1포뮬러자동차 경주장 건립 등을 추진하고 있다. 사업주체인 '전남개발공사'는 재원 조달을 위해 2600억원의 채권을 발행했다.

20일 본지가 동양종합금융증권에 의뢰해 지방공사들의 부채현황을 분석한 결과 서울경기도 등 전국 14개 광역자치단체 산하의 도시개발공사가 채권을 발행하면서 생긴 빚이 최근 2년 동안 17배 폭증했다.

2007년 말 8040억원 수준이었던 이들 공사의 전체 채권발행 잔액은 지난달 말 14조8000억원까지 불어났다.

각 지자체의 개발공사는 지방정부가 출자해 만든 지방 공기업이다. 따라서 손실이 발생하면 지방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들 지방공사가 경쟁적으로 무리하게 사업을 벌이다 기대만큼 수익을 내지 못하면 지방재정 악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전문가들은 "지역개발공사의 부채 급증이 계속될 경우 앞으로 5~10년 사이 재정이 파탄지경에 빠지는 지자체가 생겨나고 국민 세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작년에만 12조원 이상 채권 발행

지역개발공사들의 채권 발행은 지난해에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이들 공사의 채권 발행 잔액은 작년부터 지난달까지 불과 1년여 사이 12조2000억원가량 늘어났다. 지방정부들이 경기부양을 위해 건설·토목 사업을 대폭 늘린 결과다.

이들 사업 가운데는 올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무리하게 집행된 것도 적지 않다.

특히 수도권 지역 공사들이 채권 발행을 많이 했다. SH공사가 5조2500억원의 채권을 발행했고, 인천도시개발공사와 경기도시공사 역시 채권 발행잔액이 2조~3조원가량으로 늘었다. 이렇게 조달된 자금은 주로 수도권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뉴타운 개발과 공공임대주택 건설, 신도시 개발 사업 등에 사용됐다.

지방정부가 산하 공기업의 채권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수밖에 없는 것은 '열악한 재정자립도' 때문이다. 우리나라 지방정부의 재정자립도 평균은 53.6%다. 강원도와 전라남도, 제주도 등의 재정자립도는 10~30% 수준에 불과하다. 재정의 상당 부분을 중앙정부 교부금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규모 사업을 추진할 여력이 부족한 형편이다.

또 지방재정법에 지방채 발행한도를 '당해 지자체의 전전(前前)연도 예산액의 10% 범위'로 규정하고 있어, 지방정부가 스스로 채권을 발행해 재원을 마련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조세연구원 김현아 연구위원은 "자체 세입을 늘리거나 자금 동원 능력이 떨어지는 지방정부로서는 대규모 사업을 위해선 개발공사의 채권발행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앙정부가 4대강 살리기 등 각종 국책사업 재원을 일반 공기업 자금을 통해 우회적으로 조달하듯이, 지방정부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GDP(국내총생산)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35.6%로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양호한 편이지만 일반 공기업 부채와 지방공사 부채라는 '쌍둥이 부채'가 급증할 경우 나랏빚 증가 속도가 더욱 빨라질 수 있다.

부채는 급증하는데 수익성은?

문제는 이들 지방 공기업이 벌이는 사업에서 과연 충분한 수익이 나올 수 있느냐에 있다. 인천시의 인천도개공이 2006년 착공한 송도국제도시 내 임대단지인'웰카운티 3차'는 전체 515가구 중 외국인 전용인 120가구에 단 1가구만 청약이 들어왔다. 2차 임대 모집 공고를 냈지만 추가 청약이 들어올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관련 업계의 전망이다.

강원도의 강원도개공이 진행 중인 '알펜시아 리조트 사업' 역시 비슷한 처지다. 지역 시민단체에서는"분양이 100% 된다고 해도 2800억원 이상 적자가 발생할 것"이라며 "사업 추진주체를 민간으로 돌릴 것"을 요구했다. 이 사업은 재원 조달 방안 등과 관련해 감사원 지적을 받기도 했다.

광교신도시 개발사업 등을 벌였던 경기도 산하 경기도시공사는 부채비율이 539%(2009년 9월 말 기준)까지 올라갔지만, 영업이익률은 오히려 2007년 18%에서 작년 5.8%까지 하락했다. 채권 발행 등으로 부채가 늘어난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 수익을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지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지방정부에 전가된다.

동양종금증권의 강성부 연구원은 "지금 빚을 내서 벌이는 사업들이 5년, 10년이 지난 뒤 문제가 될 경우 미래 세대에게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부채발(發) 국가재정 악화 우려

전문가들은 지방 공기업들이 빚을 내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나중에는 국가재정 건전성을 헤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일본과 달리 '재정파산제도'가 없어 지방정부의 재정손실을 중앙정부가 교부금 지원 등의 방법으로 메워줘야 한다. 결국 지역에서 벌이는 무리한 개발사업이 국민 세금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에 지원하는 교부세는 2006년 21조5000억원을 기록한 이후 올해 27조4000억원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주만수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방정부와 공사들이 발행하는 채권들을 보면 마치 어린아이들이 부모만 믿고 용돈을 막 쓰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3개 공기업과 광역·기초자치단체들의 부채 합산 규모는 2008년 말 197조원을 기록했다. 전년(156조5000억원)보다 25.8%나 늘어났다.

2003년 91조6000원에 비해선 두 배 넘게 부채 규모가 늘었다. 2005년 전체 국가부채의 47% 수준이었던 지자체 부채와 공기업 부채 규모는 2008년 63.9%로 17%포인트 가까이 증가했다. 국제 기준에 의하면 국가 부채에 지자체 부채는 포함되지만, 공기업 부채는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공기업 부채는 2003년 75.1조원에서 2008년 177.1조원으로 100조원 이상 급증했다. 지표상으론 한국의 재정상태가 비교적 양호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빠른 속도로 위험 수준에 접근해가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