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대중 고문
집권당의 횡포도 발목 잡는 야당도 없어지고
우파의 영구 집권 원하는 사람들도 없어져야…
민주당은 지방 선거에서 거점 확보 전략으로 가야
한나라당이 세종시 문제 등으로 분열돼서 지지부진하고 있는데도 민주당의 인기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대통령선거의 전초전이라 할 수 있는 지방자치제 선거를 3개월 앞두고 있는 시점인데도 상황은 여전하다. 왜 그럴까? 우선 국민이 국회의 무기력한 모습에 거의 절망 상태고, 여당이나 야당이나 그저 그것이 그것이라고 포기할 때 여당보다 더 손해 보는 쪽은 야당이기 때문이다.야당의 존재 이유는 간단히 말해서 두 가지다. 하나는 정권대체(代替) 세력이고 다른 하나는 집권당의 견제 역할이다. 지금으로서는 제1야당으로서의 민주당의 정체성에 회의하는 사람들이 많다. 민주당 지도부의 비판처럼 이명박 정부가 독선적이고 독주·독재적이라면 그것은 MB가 민주당을 얕보고 있다는 역설(逆說)이며 국민들이 '집권당의 횡포'에 못지않게 '야당의 발목 잡기'에 식상해 있다면 민주당의 견제 기능은 이미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반증이다.
전통적으로 한국의 야당은 당을 이끄는 지도자를 중심으로 존재해왔다. 신익희, 조병옥으로부터 김영삼, 김대중에 이르기까지 야당에는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 있었다. 이제는 강력한 1인체제의 지도력에 의존하는 과거에서 탈피하는 시대로 가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당을 통합하는 구심점이나 응집력이 있을 때 당은 더 활성화되는 것을 우리는 쉽게 보아왔다.
지금 민주당에는 그런 것이 없어 보인다. '대통령' 하겠다는 사람들은 여럿 있는 것 같은데 당을 통합하고 조정하는 리더십은 없다는 말이다. 김대중, 노무현 두 전 대통령의 존재가 사라진 민주당은 새로운 리더십이 만들어지기까지 공백의 시기를 거칠 수밖에 없다. 친DJ, 친노, 386세대 등 여러 요소들이 혼재하면서 여전히 당내 주도권 싸움을 하는 오늘의 모습에서 '주인 없는' 야당임을 느끼게 한다.
그것이 기회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당은 어쩌면 김대중-노무현의 '유훈(遺訓)'에 안주하고 있는 듯하다. 민주당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DJ-노무현'의 족쇄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롭고, 보다 창조적이며, 보다 합리적이고, 보다 서구식 사회주의 노선에 부합하는 패러다임과 새로운 리더십을 창출할 좋은 기회를 얻었다는 공감대가 당 내외에 형성돼야 한다.
민주당에 냉철한 이성적 판단 능력이 있다면 모두가 2012년 대선으로만 몰려갈 것이 아니라 오는 6월 지자체 선거에서 주요 거점을 확보하는 '간접집권'의 방식으로 가야 한다. 민주당의 한 고위당직자는 "현재로서는 다음 대선에서 정권 교체를 이룩한다는 확실한 전망을 갖고 있지 않다"고 솔직히 고백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선 6·2선거에서 서울시장, 경기도지사를 비롯한 주요 지자체장을 차지하기 위해서 헤비급 인사들이 욕심을 버리고 스스로를 전진 배치하는 자세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대선의 분위기를 바꿀 수도 있다.
민주당은 또 대안(代案)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당의 투쟁노선을 업그레이드하는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이제 국민은 어제의 국민이 아니다. 덮어놓고 싸우기만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국민 전체로 볼 때 이념적 색채가 많이 희석되고 있기도 하고 여러 선진국의 의회 운영 방식을 많이 보아온 만큼 우리 야당의 교조적 당 운영과 비타협적 투쟁방식, 즉 농성하고 때리고 부수고 '공중부양'하는 따위의 행동양식에 찬동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그보다는 정책적 대결을 할 때마다 "우리가 집권하면 이렇게 하겠다"는 대안을 내고 필요하다면 당내에 섀도 캐비닛(야당 정부)을 만들거나 관련 위원회를 구성해 자체적으로 심의하는 등의 입법, 또는 견제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어떨까 한다. 사실 집권당이 야당을 정말로 두려워하는 것은 여당과 그 정책을 물리적으로 저지할 때가 아니라 국민들로 하여금 판단할 수 있도록 대안을 내고 다음 선거에서 지지를 호소할 때인 것이다.
우리가 의회민주주의 방식을 고수하는 한, 우리에게는 집권당과 야당의 존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또 정권의 교체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라가 바뀌지 않고 정부가 바뀌어야 한다.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 영국의 노동당과 보수당, 독일의 기민당과 사민당, 일본의 민주당과 자민당들처럼 우리도 일정 기간 정부를 교대로 맡기며 균형을 취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항상 좋은 야당, 준비된 야당, 국민과 호흡하는 야당이 있어야 한다. 집권당의 횡포도 이제는 없어져야 하지만 발목만 잡는 야당도 없어져야 한다. 동시에 야당이 집권하면 나라가 망할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 우파-보수세력이 영원히 집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없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