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미국 본토가 처음 공격당한 9·11사태 때 미국 정부는 즉각 범국가적인 비상체계를 갖췄고, 여야 정치권은 상·하원에서 만장일치로 결의안을 채택해 그런 정부와 대통령에 힘을 실어줬다. 국민들은 자발적으로 정부의 구조작업을 지원했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원(自願) 입대하겠다'는 청년들이 속출했다. 9·11에 대한 정부·의회의 합동조사는 2002년 11월부터 시작돼 2004년 7월에야 최종보고서가 나왔다.
우리도 9·11사태 당시 미국 조야(朝野)가 혼연일체가 돼 걸었던 그 길을 가야 한다. 천안함 실종자 탐색 등 구조작업은 비상(非常)하게 하되, 사고 원인 분석과 후속 조치 등은 '빨리빨리'의 강박(强迫)에서 벗어나 충분한 시간을 갖고 정상적(正常的) 절차를 밟아 진행해 가야 한다. 그래야 바닷속 후배들을 구하기 위해 바다에 뛰어들었다 자신마저 순직(殉職)한 한주호 준위 사건의 재발(再發)도 막을 수 있다.
군 잠수구조대는 현재 잠수병(潛水病)을 막는 데 필수적인 감압(減壓)챔버가 1대밖에 없고, 수중 탐색 장치 등의 도움도 충분히 받지 못한 상태에서 40여m 바다속에 들어가고 있다. 정부와 군은 미군의 협조를 받아서라도 감압챔버를 더 늘리고, 잠수함 구조함 '청해진함'이 갖고 있다는 심해구조장비(DSRV)도 신속히 사고해역에 배치해 잠수사들의 탐색 작업을 도와줘야 한다.
이런 와중에 여야(與野) 정치권은 이날도 야당의 국회 내 특위 구성 요구를 놓고 '안 된다' '된다' 치고받으며 맞섰다. 언론 매체들은 천안함이 둘로 갈라진 원인을 놓고 갖가지 추측과 주장을 쏟아내고, 인터넷에서는 정부와 군(軍)을 옹호하는 쪽과 비난하는 쪽이 각각 수백개씩 주장과 댓글로 편 가르기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일부 정치권이 장병 46명의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회에 진상조사 특위를 만들어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겠다는 건 실종 장병과 가족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이치에도 맞지 않는 일이다. 이번 사태 검증은 구조작업이 끝난 뒤 정치권이 정부와 함께 조사를 벌일 수도 있고, 정부 조사에서 의문점이나 미흡한 부분이 발견되면 그때 직접 정치권이 나서도 늦지 않다.
국민들도 지금은 일단 정부와 군의 구조작업과 대응을 지켜봐야 할 때다. 국가적 비상상황에 처해 우리 내부에서부터 이념과 지지 정당에 따라 갈라지고, 인터넷에 '이런 군대를 가야 하느냐'는 식의 글이나 올린다면 국제적 망신일 뿐 아니라, 스스로의 자존심을 허무는 짓이다. 그리고 이런 틈을 엿보고 있는 세력들만 웃음 짓게 만들 것이다.
대한민국이 한편으론 비상한 조치를, 다른 한편으론 정상적 대처를 함께 밀고 나가면서 천안함 사태에 대처해 나가도록 이끌어가야 할 대한민국호(號)의 선장(船長)은 대통령이다. 대통령은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사고 수습을 지휘해 사고 원인 등을 사실 그대로 국민에게 알림으로써 국민과 정치권의 이해와 협조를 끌어내는 통합과 설득의 리더십을 발휘, 나라의 중심을 다시 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