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6 천안함 침몰 고 한주호 준위 영결식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3일 오전 10시 성남 국군수도병원에서 고 한주호 준위의 영결식이 열렸다. 영결식을 마치고 식장을 나가던 운구행렬을 잠시 멈춰 세운 UDT 대원들이 고인이 생전에 즐겨 불렀던 군가 ‘사나이 UDT가’를 함께 부르며 애도하고 있다. 눈물을 흘리거나 울먹이는 그들의 모습이 보는 이의 가슴을 또 한번 쳤다. 성남=김경빈 기자 | |
고 한주호 준위의 동료와 선ㆍ후배 UDT(해군 특수전여단) 대원들의 울먹임 속에 군가가 시작됐다. 불끈 쥔 주먹들이 위아래로 왔다갔다했지만 평소와 달리 힘찬 모습은 아니었다. 검게 그을린 대원들의 얼굴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준비 없는 이별이 믿기지 않는 듯했다. 예기치 않았던 사고가 원점으로 되돌려졌으면 하는 눈빛들이었다. 영결식이 끝나고 식장을 빠져나가던 한 준위의 운구행렬이 중앙 통로 한가운데에서 잠시 멈춰 섰다. 한 UDT 대원이 큰 소리로 외쳤다.
“마지막 가시는 길, 고인이 생전에 즐겨 불렀던 ‘사나이 UDT가’ 를 합창한 후 보내드리겠습니다.”
전ㆍ현직 UDT 대원들이 마음을 모아 군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대원들은 한 준위의 영정과 훈장, 태극기에 싸인 영현(고인의 유해)을 바라보며 노래를 불렀다. “고인에 대하여 경례!” 노래가 끝나자 한 대원이 구령을 붙였다. “필! 승!” 대원들의 우렁찬 목소리가 식장 안에 울려 퍼졌다. 고인을 보내는 마지막 경례였다.
UDT의 살아있는 전설, 고 한주호 준위의 영결식이 3일 오전 10시 성남 국군수도병원에서 열렸다. 영결식은 유가족 30여 명과 고인의 동료, 선ㆍ후배 장병 등 1000여 명의 조문객이 참석한 가운데 해군장으로 치러졌다.
향 냄새 가득한 식장 앞 단상에는 하얀색 국화꽃에 둘러싸인 한 준위의 영정과 지난달 31일 추서받은 보국훈장이 놓여져 있었다. 조문석 가장 앞 줄에는 고인의 가족들이 나란히 앉았다. 부인 김말순(56)씨는 1시간여의 식이 진행되는 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흰 장갑을 낀 두 손을 꼭 쥐고 눈을 감은 채 흐느끼기만 했다. 제복을 입고 참석한 아들 상기(25ㆍ육군 중위)씨와 검은 상복을 입은 딸 슬기(19)씨는 넋을 잃고 한 준위의 영정만 바라봤다. 영결식은 고인에 대한 훈장 추서를 시작으로 진행됐다. 정운찬 국무총리가 단상 앞으로 나가 충무무공훈장을 추서했다. 충무무공훈장은 직접 전투에 참가해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중대한 임무를 수행한 사람에게 주는 훈장이다.
무공훈장 중 셋째로 격이 높다. 원래 있던 보국훈장을 포함해 두 개의 훈장이 놓여졌다.
“대한민국 UDT의 살아있는 전설, 우리들의 영원한 영웅 고 한주호 준위, 오늘 그가 조국의 깊고 푸른 바다를 가슴에 품고 우리 곁을 떠나려 합니다.” 장의위원장인 김성찬 해군참모총장의 조사가 시작됐다. 추도사를 맡은 후배 김창길 준위는 단상 앞으로 나와 “선배님! 뭐가 그리 바쁘셔서 사랑하는 가족과 후배들도 남겨둔 채 이렇게 훌쩍 가십시까!”라며 애도했다. “지옥에서 살아오라고 저희에게 가르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영원히 죽지 않는 UDT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당신을 통해 UDT의 진정한 삶을 배웠는데 이젠 누구한테 배우라고 그렇게 가시려 합니까?” 고인과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후배의 추도사에 조문객 일부가 흐느꼈다. 얼굴이 눈물로 범벅이 된 김 준위 역시 목이 메어 중간중간 말을 잇지 못했다. 추도사가 끝나고 군종실장인 강보승 법사가 불교의식을 진행했다. 이후 단상 양 옆의 헌화병에게 흰 국화 한 송이씩을 받아든 조문객들이 차례로 헌화를 시작했다. 아들 상기씨에 이어 부인과 딸 등이 헌화했고 김성찬 해군참모총장, 전두환 전 대통령, 정운찬 국무총리, 김태영 국방부 장관 등의 순서로 헌화와 분향을 했다. 이어 세 명씩 세 번에 걸친 해군 의장대의 조총 발사와 묵념을 마지막으로 영결식은 끝났다.
영결식에 참석한 수도방위사령부 손진순 준위는 “끝까지 성실했고 진정한 용기를 보여줬던 진짜 군인이었다. 이제 우리 후배들이 선배의 정신을 이어받을 시간”이라고 말했다. 27년 전 전역한 전 UDT 대원 김우홍씨 역시 “한 선배와 4년간 같이 근무했었는데 정말 아까운 군인을 잃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오전 11시 식장을 출발한 운구차는 20분 후 화장장(성남 영생관리사업소)에 도착했다. 고인의 관이 화장장 안으로 들어서자 유가족들은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고인의 작은어머니는 “아이고, 한 번만 더 만져보자”며 태극기에 덮인 관을 어루만지며 오열했고 여동생은 “오빠, 아이고 오빠, 잘 가요”라며 통곡했다. 고인의 친형 한창호씨는 “평생 고생했다. 전역이 얼마 안 남았는데… 이제 다 끝내고 편하게 살 때가 됐는데 이렇게 가 버린 게 안타깝다. 그게 제일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부인 김씨는 눈물을 흘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한 준위의 유해는 화장돼 오후 3시30분 국립 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한 준위는 지난달 30일 천안함 함수 부분에서 수중 탐색작업을 하던 중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며 실신했다. 미군 구조함 살보함으로 후송돼 치료를 받았지만 순직했다. 국군수도병원에 빈소가 마련된 지난달 30일부터 영결식이 치러진 3일 오전 8시까지 8000여 명이 병원을 찾아 한 준위를 추모했다.
성남=임현욱·김진경 기자 g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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