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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만명 그 이름들을 다 부르자

화이트보스 2010. 4. 5. 20:15

22만명 그 이름들을 다 부르자

입력 : 2010.04.04 22:57 / 수정 : 2010.04.05 01:04

작년 5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리버사이드 국립묘지에선 메모리얼데이(현충일)를 앞두고, 시민 300여명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10여일간 그곳에 안장된 14만8000명의 이름을 부르는 롤콜(roll call) 행사를 했다. 자원봉사자들은 15분씩 번갈아가며 24시간 내내 그들 영웅의 이름을 불렀다.

3일 고(故) 한주호 준위의 영결식장에서 후배 UDT 대원들이 흘리는 눈물을 보면서, 한동안 잊고 있던 기자의 어린 시절 영웅들을 떠올렸다. 1965년 월남전 참전을 앞두고 훈련 도중 부하가 잘못 던진 수류탄에 몸을 던져 부하들의 생명을 구했던 강재구 소령과, 1968년 1월 북한의 무장공비 김신조 일행을 검문하다가 숨진 서울 종로경찰서의 최규식 경무관과 정종수 경사. 이들은 1970년 초반 초등학생이었던 기자가 선생님들로부터 듣고 배웠던 영웅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턴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영웅들의 이름은 더 이상 우리 입에 오르내리지 않고 있다.

지금 침몰한 천안함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남기훈 상사 외 실종자가 45명이다. 지난달 2일, 강원도 황병산 자락에선 F5 전투기 2대가 추락하면서 세 명의 공군 장교가 산화(散華)했다. "발전하지 않고 머무르려는 것이 가장 두렵다"며 직접 2인승 전투기의 뒤에 앉았던 오충현 중령과, 네 살배기 첫딸과 임신 8개월의 아내를 남긴 어민혁 대위, 많은 상을 받으며 촉망받던 새내기 조종사 최보람 대위가 하늘에서 사라졌다. 다음날엔 육군의 헬기조종사 박정찬 준위와 양성운 준위가 야간훈련 비행에 나섰다가 목숨을 잃었다. 2월엔 육군 특수전사령부 소속 이기수 중사가 낙하산 줄이 몸에 엉키면서 순직했다. 1월 동부 전선에선 밤낮없이 제설(除雪)작전을 수행하던 송희추 상사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숨졌다.

이명박 대통령은 고 한 준위의 조문록에 "그토록 사랑한 대한민국은 당신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고 썼다. 그러나 우리는 한 준위에 앞서 간,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할' 그들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가. 한 준위가 목숨을 던졌던 이 바다에서 2002년 전사한 6명의 제2연평해전 영웅들, 화마(火魔)와 또 범인과 싸우다 순직한 수많은 소방대원과 경찰관들, 아프가니스탄과 동(東)티모르의 평화를 지키다 숨진 꽃다운 젊은이들의 이름을 우리는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가.

한 준위가 대전 현충원에 안장된 3일, 2004년 4월 해군 대위 아들을 먼저 보낸 한 어머니는 현충원의 사이버 참배 공간에 이렇게 썼다. "한 준위 안장식에 갔다가 어미는 또 내 아들 생각에 울고 말았다. 혹시나 내 아들을 아는 분이 있을까 하고 둘러보았건만… 그만큼 세월이 너무 흘러버렸나 보구나." 같은 날 하사 아들의 묘를 찾았던 한 어머니는 "꿈속에서도 서럽게 울었는데, 누가 왔다 갔는지 꽃이 꽂혀 있더구나. 이럴 때 엄마는 무엇보다 기뻐. 우리 정현이를 잊지 않고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거"라고 썼다.

우리도 6·25 60주년인 6월 25일, 아니면 대한민국 정부 수립 62주년인 8월 15일에 서울과 대전의 국립현충원에 안장되고 위패가 봉안된 우리의 영웅 22만여 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모두 불러 줄 것을 제안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