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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의 리더쉽 자만심으로 몰락

화이트보스 2010. 4. 10. 09:25

자만심 빠진 순간, 진시황 리더십 금 가기 시작했다

 
2010-04-10 03:00 2010-04-10 07:55 여성 | 남성
■ 천하통일한 후 왜 몰락했나



진시황은 강인한 의지와 독창적인 방식으로 천하통일을 이뤘지만 대업을 성취한 후 자만심이 한껏 부풀어 올라 결국 몰락하고 말았다. 사진은 진시황릉으로 역대 제왕묘의 모범이 되었다. DBR 자료 사진
천하통일을 이루기까지 진시황이 보여준 리더십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치밀한 준비와 시기를 놓치지 않는 냉혹한 결단, 필요에 따라 자신을 굽힐 줄 아는 유연한 전략적 두뇌, 상대의 치명적 약점을 심리적으로 파고드는 독수는 그의 강인한 의지와 맞물려 천하통일을 이루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하지만 그의 나이 39세, 인생의 절정기에 통일을 이룬 후 진시황의 리더십에 서서히 변화가 생겼다. 어마어마한 성취가 그의 자만심에 불을 댕기면서 45세를 기점으로 진시황의 리더십은 파탄을 드러냈다.

○ 천하통일, 콤플렉스의 결정체

어떤 목표를 정해놓고 치열하게 접근해가는 과정에서 개인의 육체적, 정신적 결함, 즉 콤플렉스는 장애가 아닌 적극적인 자극제로 작용할 수 있다. 부모와의 권력다툼 등으로 콤플렉스가 많았던 진시황 역시 그랬다. 그는 콤플렉스를 강인한 의지와 자기만의 독창적 방식으로 극복했고, 천하통일이라는 위대한 과업을 완수했다.

통일에 따른 제국의 재편성 과정에서는 그의 천재성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정교한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시스템에 따른 국정 운영, 이를 위한 문물제도의 정비와 통일, 정치 경제 군사 문화를 한꺼번에 염두에 둔 기반시설 확충(도로)과 정책(인구 이주책)은 오늘날 보아도 여간 참신하지 않다. 특히 인사 문제에서 진시황은 확실히 고수였다. 무엇보다 특정인에게 권력이 집중되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특정인을 승진시킬 때마다 그 권한을 억제하는 조치를 함께 취했다. 생전에 특정인을 남다르게 총애한 일도 없었다. 측근인 환관이 함부로 설치지 못하게 철저하게 통제했다. 심지어 그는 황후조차 두지 않았다. 음탕한 어머니에게 실망해 여성에게 환멸감을 가졌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외척의 발호를 근원적으로 예방하는 효과가 있었다.

○ 리더십의 변질

39세의 나이에 대업을 성취한 그의 기세는 하늘을 찌르고도 남았다. 통일 후 진시황이 취한 첫 조치는 자신에 대한 호칭과 최고 권력자와 관련한 용어 변경 및 재검토였다. 그는 자신을 신()을 뛰어넘는 초월적 존재로 올려놓았다. 정상에 오르거나 큰 성취를 이룬 자들이 가장 많이 범하는 실수의 원천이 바로 자만심이다.

진시황 리더십 변질의 두 번째 징후는 과도한 토목공사를 통해 나타났다. 함양에 거대한 궁전을 짓기 시작한 것을 필두로 자신의 무덤 축조, 아방궁 수축, 만리장성 건설, 각종 도로공사 등을 쉴 새 없이 진행했다. 자신의 무덤인 여산묘와 아방궁 건설에는 무려 70만 명이 동원됐다.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진 것은 당연했다. 42세 때 자신이 탄 수레가 저격을 받은 후로는 더욱 폐쇄적인 성격으로 바뀌었고 오로지 시스템에 의해서만 제국을 통제하려는 강박관념이 커졌다.

급기야 그는 자기 없는 진제국을 받아들이지 못하기에 이른다. 통치 후반기 많은 시간을 내서 전국 순시에 몰두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순시에 힘을 쏟느라 후계자 문제도 깨끗하게 정리하지 못했다. 이는 결국 훗날 조고()를 비롯한 야심가들에게 정변의 빌미를 제공했다. 곳곳에서 모순과 갈등이 터져 나왔고, 이 모든 것이 진시황을 압박했다. 그는 잠도 자지 않고 일하다 결국 쓰러졌다. 300만 km²에 이르는 거대한 제국을 끌어안은 채.

김영수 중국역사학자

정리=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비즈니스 리더를 위한 고품격 경영저널 동아비즈니스리뷰(DBR) 54호(2010년 4월 1일자)의 주요 기사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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