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우셰스쿠: 악마의 손에 키스를
에드워드 베르 지음|유경찬 옮김|연암서가
372쪽|1만8000원
1989년 12월 22일 루마니아의 절대권력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1918~1989)와 부인 엘레나(1916~1989)는 군중들의 야유를 받으며 공산당 중앙위원회 건물에서 헬리콥터를 타고 탈출했다. 1967년 국가평의회 의장이 되고 1974년부터는 대통령으로 20년 넘게 독재정치를 펴온 차우셰스쿠는 정권이 붕괴된 뒤 외국으로 도망하려 했으나 도중에 헬기에서 내렸다가 붙잡혔다. 이들 부부에 대한 재판은 신속하게 진행되어 군사법정에서 12월 25일 사형 판결을 받았으며 곧 총살형이 집행되었다.이 책은 초등학교 졸업과 초등학교 3학년 중퇴의 학력을 가진 차우셰스쿠 부부가 공산당 최고 지도자가 되어 2000만 국민들의 인권을 장기간 유린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영국 출신의 언론인으로 베트남 전쟁 때 종군기자로 활약한 저자는 일본이 점령한 만주국의 괴뢰황제 푸이의 일대기를 그린 '마지막 황제'의 작가이기도 하다. '마지막 황제'는 베르톨루치 감독이 영화로 만들어 오스카상을 받은 화제작이다. 그는 또 히로히토 일본 국왕의 일대기를 새롭게 조명한 '히로히토: 신화의 뒤편'을 쓰기도 했다.
- ▲ 연암서가 제공
권력을 장악한 이후 차우셰스쿠는 반대파들을 철저하게 제거하고 족벌정치와 공포정치를 펼쳤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심지어 옛 소련에서조차 차우셰스쿠 시대의 루마니아처럼 강압체제가 횡행했던 곳은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루마니아 비밀경찰은 루마니아의 모든 것을 지배했다. 루마니아 공산당과의 협조체제는 물론 소련의 KGB보다 훨씬 다양한 기능을 갖고 정부기관에 침투해 있었다. 한 예로 루마니아 해외통상부는 비밀경찰 본부와 다름없었다. 비밀경찰은 자체조직으로 무역회사, 해외지주회사, 은행까지 운영했고, 공산당 내부의 정보망을 이용하기도 했다.
차우셰스쿠 통치법의 가장 큰 특징은 철저한 개인숭배였다. 그의 생일이 국경일이었으며 그것도 모자라 부인 엘레나의 생일도 국경일로 정했다. 1970년대 이후 권력 2인자의 자리를 차지한 엘레나를 두고 루마니아 사람들은 '엘레나가 차우셰스쿠의 악(惡)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아무도 믿지 않았고, 모두를 증오했다. 엘레나는 최소한 대중 앞에서는 남편에게 가장 충실한 사람이었으며 확실한 지지자였으나, 사석에서는 남편에게도 사람들을 증오하는 그녀의 평소 태도를 드러냈다."
하지만 루마니아에 독재체제가 자리 잡게 된 것은 차우셰스쿠와 그의 추종자 또는 비밀경찰의 힘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협조했고, 때에 따라서는 주도권을 잡기 위해 적극적인 가담도 서슴지 않았다. 이러한 진행 과정은 결국 인민들 간에 불신과 적대감만 양산해 놓았다. 누가 누구를 비난해야 할지, 함정을 만든 사람들이 누구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린 것이다."
차우셰스쿠는 여러모로 북한 통치자들을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다. 실제 그는 1970년대에 북한을 다녀온 뒤 김일성 주석의 주체사상과 통치방식에 감명받아 그것을 모방하는 조치들을 취했다. 탐욕스럽고 혐오스러운 한 인물이 한 나라와 국민들을 어떻게 유린했는지를 여실하게 보여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