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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실종자가족 대표자협의회 김태원씨

화이트보스 2010. 4. 12. 10:19

천안함 실종자가족 대표자협의회 공동대표 김태원씨

입력 : 2010.04.11 23:52

 

11일 경기도 평택시 해군2함대사령부 부근에서 만난 천안함 침몰사고 사망자 고 김태석 상사의 형 김태원씨. 동생 시신을 확인하던 순간을 말하다 참았던 눈물이 흐르자 고개를 돌리고 있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위기대응·구조과정 너무 열악…
누가 아들을 해군에 보내겠나"
왜 구조함과 수색함이 후방인 진해에 있어야 하나
태극기에 싸인 동생 시신 처음엔 볼 자신 없었다
수색현장 가보니 너무 열악 "수색 중단하고 인양"결정
함체 절단면 모두 공개하면 우리 약점敵에 노출될수도

11일 경기도 평택 해군 제2함대사령부 앞에서 만난 천안함 실종자가족 대표자협의회 공동대표 김태원(45)씨는 굵은 눈물을 흘렸다. 그동안 다른 가족들이나 기자들 앞에서 한 번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던 그였다. 동생 고(故) 김태석 상사가 지난 7일 시신으로 발견될 때 이야기를 하자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그는 실종자가족 대표로 백령도 앞바다에 가서 수색과 인양 작업을 지켜봤고 동생 시신을 발견했을 때도 그 바다 위에 있었다. 지난 3일 실종자 가족들이 "수색·구조 작업을 중단하고 인양 작업으로 전환해 달라"고 쉽지 않은 결정을 하도록 설득한 것도 그와 몇몇 대표들이었다. 그는 "실종자 가족들은 할 말이 너무 많다"고 했다. 동생을 비롯한 희생자들이 다시 생기지 않으려면 바꿔야 할 것도 너무 많다고 했다.

―지난달 29일 사고해역에서 '내 동생도 저 속에 있겠지만 살아 있더라도 꺼낼 방법이 없다'고 말했던데 왜 그렇게 생각했나.

"바닷속 45m면 4.5㎏의 압력이다. 호스로 물을 쏘면 45m가 날아가는 강한 압력이다. 이런 수압에서 어떻게 문을 여나. 2명이 들어가서 15분씩 일하는데 무엇을 할 수 있나. 감압챔버도 하나밖에 없고 장비도 없었다. 비관적인 생각이 들었다."

―수색을 중단하고 인양 결정을 하기로 한 것은 해군이 권유한 것인가.

"아니다. 해군은 가족들에게 뭐라고 말할 입장이 아니다. 여러 가족들이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왜 빨리 실종자들을 꺼내지 않느냐고 항의하지만, 우리가 가보니까 상황이 너무 열악했다. 선체로 연결된 밧줄에 다른 밧줄과 낚싯줄이 엉켜 구조대도 위험한 상황이었다. 대부분 가족들은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수색·구조 과정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해군은) 함수와 함미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침몰 선체를 찾기 위한 함선도 늦게 도착했다. 왜 구조함과 수색함이 경남 진해에만 있어야만 하냐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이런 문제는 보완돼야 한다. 결국은 국방 예산의 문제다. 구조 함정들이 접적(接敵) 해역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적시적기에 가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실종자 가족들이 군 당국으로부터 비공개 설명도 들은 것으로 아는데, 사고원인에 대해 어떻게 분석하나.

"내부가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좌현 밑에서 폭발이 있었던 것 같다. 좌현 쪽 1층 기관조종실에서는 내 동생을 포함해 다 실종됐지만 우현 지하 1층 상사 침실 승조원들은 다 살았다. 왼쪽에서 뚫려 위로 올라가면서 후폭풍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배가 찢어진 모양도 C자형이 된 것이다. 그런 걸 보면 어뢰라고 생각한다. 밑에서 위로 터지는 기뢰는 아니다."

―어뢰라면 북한밖에 없지 않나.

"그렇다. 정부에서는 그 얘기를 안 하려고 한다. 파편 조각들을 찾는 데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다. 그러니까 아직 뭐라고 못하는 것 같다."

김태원씨는 천안함 침몰 사고의 원인에 대해“어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천안함 도면을 보여주며 배의 좌현 아래에서 어뢰가 터졌을 것이라고 했다. /이태경 기자

―남기훈 상사에 이어 두 번째로 김태석 상사 시신이 나왔는데, 현장에서 시신을 확인했나.

"그날 시신이 나왔다고 해서 '내 동생은 아니겠지, 설마 내 동생이겠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 동생이었으면…'하는 생각도 교차했다. 시신이 태극기에 싸여 있는데 정말 볼 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확인해 달라고 해서 간신히 봤는데…. (눈물을 흘리며) 생각하고 싶지 않다. 건져 올렸는데 손도 퉁퉁 불어 있고, 제 동생 같지 않았다."

―실종자 가족 대표를 하면서 우는 모습을 한 번도 보이지 않았는데.

"동생을 헬기 찬 바닥에 누이고 함께 타고 오면서도 많이 울었다. 남들 보지 않는 곳에서 많이 울었다. 아침에 밥 먹으면서 '동생은 저 냉동고에 있는데 나는 또 밥을 먹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또 울컥했다."

―실종자 46명 가운데 2명만 시신으로 발견됐다. 다른 가족들 분위기는 어떤가.

"친해진 다른 가족 대표가 전화해서 '축하한다'고 하더라. 이런 일로 말도 안 되는 축하를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우리끼리 얘기했다. 시신이 떠내려갔거나 폭발로 다 훼손됐을 수도 있으니 찾는 것만도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영원히 못 찾게 되면 어떡하느냐'고 걱정하는 가족들도 있다."

―지난 4일 '나도 해군 출신이지만 이제 내 아들은 해군에 보내지 않겠다'고 했다. 어떤 심정에서 한 말인가.

"농담처럼 했지만 뼈 있는 얘기다. 나라 지키기 위해 애썼는데 언제든 이런 일 생길 수 있다고 생각이 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번 일 겪으면서 사고처리 과정이나 장비 부족, 장비 지연 도착, 구조과정 모두 열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상황이 보완되지 않았는데 생때같은 자식을 해군에 보낼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르면 이번 주 인양이 될 텐데 함체의 절단면을 공개할 것인가 논란이 있다. 가족들 입장은 무엇인가.

"군 당국은 실종자 가족에게는 다 보여주겠다면서도 전부 공개는 안 한다는 입장이다. 군 입장에서는 절단면 공개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국민의 알 권리도 있지만 몰라야 할 사람은 몰라야 한다고 본다."

―몰라야 할 사람이라면 누구를 말하는가.

"적(敵)이 될 수도 있고, 우리와 바다를 맞대고 있는 다른 나라도 있다. 우리 약점이 다 드러나는 것이다. 남은 해군 장병들의 안위도 걸린 문제다."

―3형제가 모두 해군인데 사연이 있나.

"내가 해군 장교로 근무하니까 둘째 동생이 대학 휴학하고 해군 사병으로 입대했었다. 막내 태석이는 고교 졸업하고 진로를 고민하기에 내가 '해군 부사관 보니까 풍족하지는 않지만 너 혼자는 살 수 있다. 군인으로 자부심도 가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동생이 저렇게 되니까 후회가 된다. 한 방에 이렇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 이런 비극이…."

―사고가 난 뒤 부모님은 충격을 받지 않으셨나.

"어머니(77)는 사고가 난 뒤 TV 앞에만 앉아 계셨다. 혹시 막내 이름이 나올까 봐. 시신을 찾은 뒤 제가 전화로 알려 드렸더니 '아이고 우리 막내, 이렇게밖에 못 살 거 왜 태어나게 했던가'하며 펑펑 우셨다. 쓰러져서 병원에도 다녀오셨다."

―해군 장교로 참수리호 부정장까지 지낸 것으로 안다. 이번 사고로 볼 때 해군 시스템의 문제는 무엇인가.

"나는 동해에서 근무했지만 서해는 바로 적이 보이는 곳이다. 이런 사고에 대비해서 작전 개념이나 위기 대응 체계를 바꿔야 한다. 나라의 문제다. 지금 우리 해군의 구조함이나 구조대는 침몰한 배에 대해서는 대책이 없다. 꺼내는 것을 민간이 할 수밖에 없다면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춰야 하지 않나. 해군 전력이 우리가 저쪽보다 나은데 우리만 자꾸 당한다. 연평해전 때는 참수리호가 침몰했고, 지금은 초계함이 침몰했다. 다음은 뭐냐고 얘기한다. 얼마나 비통한 얘기인가."

―실종자 전체가 발견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어렵겠지만 보상문제는 논의되고 있나.

"다 인양해놓고 말하면 시신 놓고 협상한다고 할 것이고, 그전에 말하면 시신도 꺼내기 전 보상문제 얘기한다고 할 것 아닌가. 이번 주말 인양된다고 하는데 이제 논의할 때가 된 것 같다. 다 인양하고 보상 논의하면 언론이나 이상한 네티즌들이 또 말들이 많을 것이다."

―조선일보 10일자에 보도됐듯이 익명의 기업인을 비롯해서 천안함 희생자들의 희생정신을 기리자는 성금이 모이고 있다. 가족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국민들이 마음을 나눠준다는 게 너무 고맙다. 실종자나 사망자 가족 입장에서는 경제적인 문제가 가장 현실적이다. 이런 마음들이 모여서 위로가 될 수 있고 군인 가족들이 '국민들이 우리를 생각하는구나, 숨지 않고 살아도 되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뭔가 움츠러드는 마음이 들게 하는 게 있다. 정부와 국민들이 군인 가족들이 위축되지 않도록 명예를 고양시키는 부분에 신경 써야 한다."

―2002년 제2 연평해전 때 희생된 해군의 가족이 '나라 위해 가신 분을 홀대하는 것은 썩은 나라'라며 미국으로 떠난 일이 있다. 추모제도 축소된 일이 있었다. 그런 일을 말하는가.

"그렇다. 동생 김태석 상사 딸들이 나중에 커서 '우리 아빠가 이런 사람이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할 것이다. 내 생각에는 그런 사회는 아닌 것 같다."

인터뷰를 마친 김씨는 빨래 뭉치가 든 가방을 들고 2주 만에 집에 간다고 했다. 그가 탄 차는 고 김태석 상사의 차였다. "주인 없는 차가 놀게 돼서 동생 대신 형이 몰고 다닌다"고 했다.


◆ 김태원 대표는

故 김태석 상사 맏형… '구조→인양' 전환 이끌어

천안함 실종 장병 46명 중 지난 7일 함미(艦尾) 절단면 부근에서 숨진 채 발견된 김태석(37) 상사의 맏형이다. 3남3녀 중 태원(45)씨가 첫째 아들, 고 태석 상사가 셋째 아들이다. 둘째 아들은 태균(41)씨이다. 3형제 모두 해군 출신이다. 태원씨는 지난 1988년 해군에 입대해 참수리호 부정장(250t급)을 맡았고 1991년 중위로 전역했다. 태균씨는 일반병으로 해군에서 복무했다.

지난달 26일 천안함이 침몰한 뒤 해군 경험을 살려 천안함실종자가족협의회 공동대표(각 가족마다 1명씩으로 46명)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3일 실종자 가족들이 구조작업을 중단하고 인양작업을 개시할 것을 요청하는 합의를 이끌어낼 때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사고 3일째인 지난달 28일에는 실종자 심영빈 하사 가족의 '실종된 심 하사로부터 전화가 왔다'는 말을 듣고 가족들이 동요하자 "침착하게 기다리자"며 차분한 분위기를 이끈 것으로 알려졌다.

전북 군산 출생으로 부경대학교 기관학과를 졸업했다. 1991년 한국전력공사에 입사, 현재 한국동서발전 사업지원처 차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가족으로는 부인과 2명의 아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