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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맺힌 ‘카틴 숲’ 또 폴란드 울렸다

화이트보스 2010. 4. 12. 10:31

한맺힌 ‘카틴 숲’ 또 폴란드 울렸다
 
2010-04-12 03:00 2010-04-12 09:01 여성 | 남성
1940년 스탈린, 폴란드 엘리트 2만2000명 학살-암매장
1943년 시코르스키 망명정부 총리, 진상조사 추진중 의문사

러시아와 각세운 카친스키
푸틴이 추모식 초청 안해 뒤늦게 별도 방문하다 참변

카틴 숲의 비극은 70년이 지나서도 끝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0년 독일과 비밀협정을 맺고 폴란드에 쳐들어간 옛 소련의 비밀경찰(NKVD)은 러시아 서부 스몰렌스크 인근의 산림지역인 카틴 숲에서 폴란드의 사회지도층 인사 2만2000여 명을 처형해 암매장했다. 학살의 주동자인 스탈린은 “폴란드가 독립국으로 일어설 수 없도록 폴란드 엘리트의 씨를 말릴 것”을 명령한 것으로 알려졌다.

학살은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졌으나 3년이 지난 1943년 나치 독일이 카틴 숲에서 4100구의 시신을 발견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당시 영국 런던에 있던 폴란드 망명정부의 총리인 블라디슬라프 시코르스키 장군은 국제적십자에 진상조사를 요구했다.

그러나 시코르스키 장군은 그해 지브롤터 상공에서 비행기 추락사고로 숨졌다. 당시 영국 공군은 그가 탑승했던 항공기가 정비결함으로 추락한 것이라고 결론지었으나 폴란드에선 소련 비밀조직의 암살음모에 의해 희생됐다는 음모론이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바츨라프 하벨 전 체코 대통령은 10일 체코 CT24 방송에 출연해 “레흐 카친스키 대통령의 비극은 수십 년 전 비행기 추락사고로 숨진 시코르스키 장군의 의문의 죽음을 다시 기억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카틴 숲 학살은 2차 대전이 끝난 후 폴란드가 소련 치하로 들어감에 따라 40여 년간 폴란드 러시아 양국에서 언급 자체가 금기시돼 왔다. 옛 소련은 학살이 나치의 소행라고 주장했으나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면서 지금까지 폴란드와 러시아 간 분쟁의 불씨로 남아 있다.

특히 이번 사고로 사망한 카친스키 대통령은 공산 폴란드 치하의 자유노조 ‘연대’ 출신으로 러시아에 깊은 반감을 가져온 인물로 러시아의 진상 공개와 사과 요구에 앞장서 왔다. 러시아는 사건과 관련해 보관 중인 문건 183건 가운데 67건만을 폴란드 정부에 제공하겠다고 밝혔을 뿐 116건은 기밀을 이유로 공개를 꺼렸다. 덧붙여 이미 공소시효가 지난 사안이라 관련자 처벌은 불가능하다고 밝혀 왔다.

하지만 폴란드는 대량학살이 인류에 반한 범죄인 만큼 기소하는 데 시효가 있을 수 없으며 살해 주동자를 색출해 법정에 세우겠다며 국가기념연구소(NPI)에서 진상조사까지 벌이고 있었다.

그러다 7일 화해 모색 차원에서 이례적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가 카틴 숲에서 열린 추모식에 참석한 것. 그러나 푸틴 총리는 자신이 총리라는 이유로 폴란드 측의 도날트 투스크 총리만 초대했고 평소 러시아를 강력히 비판해 온 카친스키 대통령은 초대하지 않았다.

이에 카친스키 대통령은 “폴란드의 최고 대표자는 대통령”이라며 러시아의 초대가 없더라도 카틴을 방문할 것이라면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고 결국 이날 희생자 가족들과 함께 별도로 추모식을 열기 위해 러시아를 찾았다가 참변을 당했다.

사고 조사 결과 러시아의 안전조치가 소홀한 것으로 확인될 경우 그렇지 않아도 과거사 문제로 러시아에 반감이 있는 폴란드 국민의 대()러시아 정서가 급격히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바르샤바=송평인 특파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