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식품 명인 기순도 농㈜고려전통식품 대표 |
입력시간 : 2010. 04.21. 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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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식품 명인인 기순도 농㈜고려전통식품 대표가 지난 동짓달 담근 장을 된장과 간장으로 분리하는 '장 가르는' 작업을 하기 위해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장 가르는 작업은 날씨와 상황에 따라 결정하는 데 날이 좋으면 이달 말쯤 진행하게 된다. 임정옥기자 | |
"장 담그는 것은 1년 농사를 짓는 일"
10대째 내려오는 종가 '진장' 비법에
9번 구운 죽염으로 담근 명품 전통장
국내 유명백화점서 없어서 못팔 정도
찾아가지 않아도 고객이 끊이지 않고
돈 내고 사가며 되레 "고맙다" 인사
어느 해부터인가 된장과 간장이 백화점 명절 선물 목록에 올랐다. 게다가 '명품' 코너에 자리를 잡았다. '기순도 전통장'이라는 이름의 된장과 간장은 적게는 10만원부터 수십만원대의 제품까지 다양하다.
한국의 일반가정에 흔한 된장과 간장이 명품 반열에 오른 과정과 이런 일을 해낸 사람의 내력이 문득 궁금해졌다.
'기순도 전통장'은 담양군 창평면 유천리에 위치한 농㈜고려전통식품의 대표 브랜드다. 창평면에 들어서면 '기순도 전통장'의 위치를 알리는 입간판이 크게 설치돼 있어 찾기가 쉽다.
유천리 마을회관 앞에서 우회전을 해 400m를 들어가니 대나무와 소나무 숲이 빙 둘러진 커다란 가옥이 보이고 중간에 수백개의 전통 항아리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이 곳이 창평 고씨 14대 종가이자 전통장을 생산하는 농㈜고려전통식품의 작업장이다.
청국장을 만들다 나왔는지 젖은 손으로 취재진을 맞는 창평 고씨 14대 종부이자 전통식품 명인인 기순도(62·여) 대표.
기 대표는 조선 선조 때 의병장인 고경명 장군의 14대 종손과 결혼한 뒤 종가에서 10대에 걸쳐 내려오는 진장 제조법을 계승, 발전시켜 왔으며 지난 2008년에는 농림수산식품부로부터 '진장(陳醬)' 분야 명인으로 지정됐다.
전통식품 명인 제35호에 선정된 기 대표가 만드는 진장은 장을 담근 뒤 꼬박 5년동안 숙성시켜야 맛 볼 수 있는 귀한 장으로 값비싼 보양 음식이나 약용 등으로 사용된다.
기 대표는 된장과 간장을 담기에는 조금 일러 요즘에는 청국장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고 했다.
동짓달에 메주를 띄워 큰 항아리에 장을 담근 뒤 4월말쯤에 된장과 간장으로 나누는 데 이 작업을 '장을 가른다'라고 표현한다.
장을 가르는 시기는 딱히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보통 4월쯤이고 날씨에 따라 시기는 조금씩 조정이 된다.
부잣집 막내딸로 손에 물한방울 묻히지 않고 귀하게 자랐던 기 대표가 고된 종부로 살게 된 것을 '운명'이라고 했다.
시어머니로부터 배웠던 가문의 진장 담그는 비법에 남편이 만들었던 죽염을 더해 자신만의 진장과 된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한 해 소금 1천가마를 구입해 죽염을 만들고, 그 죽염으로 간장과 된장을 담았다. 이 장 맛에 대해 입소문이 나면서 지인의 권유로 1996년 처음 상품화 시켰다.
당시에는 된장과 고추장을 담가 먹는 가정이 많아 주위에서 만류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가문 대대로 내려온 데다 죽염과 암반수 등 좋은 재료로 맛을 낸 '전통장'은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가장 먼저 국내 유명 백화점들에서 러브콜이 쇄도했다.
백화점에는 모두 '기순도 전통장'이 입점돼 있고 상품을 팔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이 쇄도하지만 생산에 한계가 있어 모두 수용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심지어 A백화점에는 유명 고추장 회사 제품이 빠지고 '기순도 고추장'이 그 자리를 꿰찼다.
매년 신세계백화점 본점에서 열리는 대한주부클럽 주최 바자회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으며 올해는 예년보다 6천만원어치가 더 팔렸다.
친환경 음식을 선호하는 추세에 맞춰 선보인 '1년 가족장'은 소비자들의 반응이 폭발적이다. 전통항아리에 4인 가족이 1년 동안 먹을 분량의 된장과 간장을 담가 필요할 때 배송해주는 것으로, 현대홈쇼핑이 방송을 내보내는 동안에만 600명이 신청했다.
올해는 농협을 통해 콩 800가마와 무안 유기농 콩 100가마를 구입해 메주를 만들었는데 메주로만 벌써 300가마 분량이 팔려나갔다.
연구용으로 상당량을 구입해 가는 대학이나 연구소에서는 국내 제품의 여타 제품과 비교하고 분석한 결과 '기순도 전통장'을 최고로 꼽는 데 주저함이 없다.
이 같은 인기를 얻는 '기순도 전통장' 맛의 비결을 물어봤다. 기 대표는 '조화'라고 했다. 재료부터 자연환경, 물, 공기, 정성까지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재배한 엄선된 콩을 구입하고 소금은 대나무 통에 넣어 9번 구운 '죽염'을 이용해 메주를 쓴다. 메주를 제대로 발효시키기 위해 적절한 공기와 온도가 필요하다. 장을 담글 때는 지하 150m에서 끌어올린 암반수를 넣는다.
여기에 집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대나무의 기운과 소나무에서 날리는 송화가루도 맛을 높이는 데 한 몫 한다.
기 대표는 "장을 담그는 일은 1년 농사를 짓는 일"이라고 했다. 장 맛에 따라 그 해 식탁 위에 놓일 음식 맛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혹시나 부정이 타지 않을까 싶어 일하는 사람들도 가린다.
메주를 만드는 기간에는 많은 일손이 필요한 데 상을 당하거나 초상집을 다녀온 사람은 쓰지 않는다. 장을 담글때는 음식을 차려놓고 제를 지낸다.
기 대표는 "옛말에 간장 맛이 변하면 우환이 끊이지 않는다고 했다"며 "그 만큼 장 담그는 일은 중요하고 정성이 들어가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항상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장을 담근다.
"해마다 고객이 늘고 찾아나서지 않아도 고객이 찾아오고 돈 내고 물건을 사가면서 오히려 고맙다고 인사합니다."
기순도 전통장에 대한 명성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말이다.
처음에는 추천이나 권유에 의해 구입했던 고객들도 두번째는 맛을 보고 다시 찾는다.
일반 된장은 1㎏에 1만7천원, 토판염으로 만든 죽염과 유기농 콩 등을 사용한 시제용 된장은 1㎏에 17만원이나 하는 데도 없어서 못판다.
기 대표가 만들어내는 제품은 해마다 재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바꾸기 때문에 그 수를 정확히 헤아릴 수는 없지만 대략 수십가지다.
기 대표는 제품 개발에 있어 편리성과 입맛, 그리고 우리 것을 쉽게 접할 수 있는 방안 등을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현재 된장, 간장, 고추장을 비롯해 청국장, 우거지 된장, 분말청국장을 생산하고 죽염으로 만든 염장죽순은 신라호텔에 1톤이상 납품하고 있다.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 최근 개발한 '딸기고추장'은 일반 고추장보다 덜 매워 외국인들이 선호한다.
바쁜 현대인들이 간편하게 해 먹을 수 있도록 한 '우거지 된장국'은 우거지를 삶아서 된장으로 버무려 놔 고객들이 물을 붓고 끓이기만 하면 된다.
분말 청국장도 여름에도 가정에서 쉽게 청국장을 맛볼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개발한 것이다.
기 대표는 "무얼 먹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성격이 바뀌고 건강이 좌우된다"면서 "그 만큼 중요한 먹을거리를 만들어내는 일인지라 어느 과정 하나 소홀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창평이 슬로우시티로 지정되면서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는데 광주에서 창평행 직행버스가 없어 늘 아쉽다"는 기 대표는 "외지인들이 편리하게 찾아올 수 있는 교통편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기순도 명인이 알려주는
장으로 맛 내는 법
요리를 하면서 간을 맞추는 데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이 소금이다.
주부들이나 일반인들에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로 여겨지지만 예전에는 소금이 아닌 장으로 간을 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집에서 장을 담가 먹었던 시절에는 당연한 일이었고 음식에 따라 사용하는 장의 종류도 다양했다.
그랬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장 대신 소금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기순도 대표는 "소금으로 간을 한 것과 간장으로 간을 한 음식의 맛은 비교가 안될 만큼 다르다"고 말했다.
소금은 간을 맞출 수는 있지만 맛을 내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특히 소금의 경우 과다 섭취하면 고혈압 등 성인병에 걸릴 염려가 높지만 간장은 발효식품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아토피 등 현대병이나 성격도 음식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통방식의 요리법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간장으로 간을 하면 간, 맛, 건강을 챙길 수 있다.
물론 잘못 담근 장을 사용할 때는 소금으로 간한 것만도 못한 맛이 나온다.
기순도 대표는 일반 가정에 진장, 중간장, 맑은장 세 가지를 갖춰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주부들이 맑은 국의 간을 맞출 때 소금을 많이 사용하는 데 빛깔이 탁해지는 것이 우려된다면 '맑은장'을 사용하면 된다.
'맑은 장'은 도라지 나물이나 콩나물국 등 맑은 국이나 흰색 종류의 음식에 사용하는 데 음식 색깔에 변화를 주지 않으면서 간이 된다.
고사리 나물이나 진한 색의 음식에는 '중간장'을 사용하고 진장은 장조림 등에 넣으면 된다.
조선시대에는 김치를 담글 때도 간장을 사용했다고 한다.
오늘부터라도 가족의 건강을 위해 장으로 맛을 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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