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민 중 78.6%가 서울을 고향으로 생각한다는 서울시의 설문 조사 결과가 얼마 전 신문에 보도됐다. 기사를 읽다가 아버지를 떠올렸다. 기자의 아버지는 김상진의 '고향이 좋아'와 나훈아의 '고향역'처럼 고향을 소재로 한 노래를 좋아했다. 명절이 되어도 너무 바빠 고향에 갈 수 없으면, '타향도 정이 들면/ 정이 들면 고향이라고/ 그 누가 말했던가~' 하거나, '코스모스 피어 있는/ 정든 고향 역~' 하는 노래를 불렀다.
아버지는 열심히 일해 허름한 한옥을 사더니 기자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집을 허물고 양옥을 지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거의 맨몸으로 서울에 올라와 집 사고 자식 셋 대학 보내고 결혼시키기까지 아버지의 서울살이가 얼마나 고단했을까 싶다. 그러니 아버지의 '고향 노래'들은 타향살이를 힘들게 버텨야 했던 자신의 인생에게 불러주는 위로곡이었을 것이다.
'고향이 좋아'가 발표된 1972년의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 1700달러인 가난한 나라였다. 입에 밥을 넣고 아이들을 공부시키기 위해 수많은 청춘이 고향을 등지고 서울로 향했다. 윤흥길의 '아홉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1977),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78) 등의 소설은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던 1970년대 서울과 주변 위성도시로 흘러든 가난한 청년들이 겪어내야 했던 쓰라리고 힘든 일상을 기록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2만달러에 육박하고 있지만 타향살이 하는 사람은 여전히 넘쳐난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고향을 떠나서 사는 국민이 전체 인구의 40%를 넘나든다. "서울을 고향으로 느낀다"는 대답이 좋은 의미로만 읽히지 않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타향살이를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진취적인 결의로 읽을 수 있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떠나온 고향의 현실이 평생을 걸고 살기에는 녹록지 않다는 방증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8년 여름, 전북 임실에서 38년간의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마치는 김용택 시인을 인터뷰하러 가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갈수록 공동화(空洞化)되어 가는 농촌에 대해 걱정부터 했다. "요즘 사람들은 나를 '섬진강 시인'이라 하며 20여년 전에 내가 쓴 '섬진강' 연작을 강변에서 노닥거리는 낭만적인 시로 착각들 하는데, 천만의 말씀"이라며 혀를 찼다. 섬진강 연작에 농촌의 고단한 풍경을 담던 시절 가르쳤던 제자들이 자라서 도시로 나갔다. 그런데 배운 것 적고 변변한 직장도 구하지 못해 고생만 하다가 가정마저 깨지면 아이들을 고향의 노부모에게 맡긴다는 것이다. 시인은 "내가 선생 노릇하며 제일 가슴 아팠던 것이 도시로 나간 제자들이 고향에 맡긴 아이들을 가르쳐야 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그 안타까운 심사를 시로도 썼다. '오늘은 밤에 학예회를 했다./ 그런데,/ 할머니도 아빠도 안 왔다/(…)/ 선생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다가/ 눈물을 닦으며 선생님을 봤더니,/ 선생님도 운다'(김용택 시 '선생님도 울었다')
서울이 정말 좋으려면 고향의 아이들과 그들의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선생님들의 눈에 눈물이 나지 않아야 한다. 그 눈물을 기록하고 위로하는 것이 문학만의 몫은 아닐 것이다.
'서울이 고향'의 뒷면
입력 : 2010.05.14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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