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발 경제위기로 지방정부 부채에 초비상
누리꾼들도 지방정부 감시에 '선봉장' 역할
(베이징=연합뉴스) 홍제성 특파원 = 중국 일부 지방정부 지도부의 비리나 예산 낭비는 우리나라보다 심하면 심했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중국 지방정부는 운동장 같은 대지 위에 초호화판 청사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심지어 일부 지방정부가 운영하는 교도소는 5성급 호텔을 능가한다.
특히 지방정부 일부 간부들은 몇 십 채의 아파트를 소유하고 10대 소녀들을 여자친구로 거느릴 정도로 비리와 부정부패가 만연한 것으로 유명하다.
중국 최고지도부와 중앙정부는 최근 지방정부나 간부들의 흥청망청 씀씀이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하고 뒤늦게 감시와 감독의 칼날을 빼들고 나섰다.
중국은 우선 올해부터 지방정부 예산의 일괄 공개를 추진키로 했다.
재정부는 전국 지방정부의 재정 당국에 '지방 재정예산 정보의 공개에 관한 통지문'을 하달, 각급 지방 재정 당국이 공개할 예산의 내용과 방식, 범위 등을 통일해 적극적으로 재정의 예·결산 내역과 집행 및 이전 내용을 공개할 것을 주문했다.
또 공공기관의 호화판 청사 건립 관행에도 제동을 걸었다.
중국 국토자원부와 국가발전개혁위원회가 지난해 말부터 관공서 건립을 엄격히 규제하는 새로운 규정을 마련해 시행키로 한 것이다.
이 규정에 따르면 사업비 7천만위안(118억원) 이상이 소요되는 지방과 중앙의 모든 관공서는 신축 전 반드시 국무원 승인을 받아야 하며 국유기업을 포함한 당정기관의 교육센터와 영빈관, 컨벤션센터 등 부대시설은 신축은 물론, 재건축이나 시설확장도 금지된다.
중국 정부는 또 공산당과 함께 2008년 이후 중앙 또는 지방 정부가 발주한 모든 건설공사의 감사에 착수했고 지방재정 악화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지방공기업에 대한 자금 관리도 한층 강화하고 나섰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최근 국무원 상무회의를 열고 지방정부 공기업들이 경제발전에 기여해 왔으나 최근 위험관리를 제대로 못 하고 있다며 채무관리를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국무원은 이에 따라 ▲지방공기업의 조속한 채무상환과 진행중인 사업에 대한 후속 자금조달 방안 수립 등을 통한 채무문제의 적절한 해결 ▲은행의 지방공기업 대출금 관리 강화 ▲규정을 위반한 지방공기업 대출 제한 등의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 유럽발 경제위기 계기로 감시 대폭 강화
특히 유럽발 금융위기가 정부 재정의 방만한 운영이 원인인 것으로 드러나자 중국은 지방정부의 부실한 재정 상태를 수시로 점검하는가 하면 자금조달 규제책을 시행하는 등 각종 대책을 마련하고 나섰다.
실제로 중국 내 31개 성·시·자치구 중 10곳의 부채율이 100%를 넘을 정도로 중국 지방정부는 엄청난 규모의 부채에 시달리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일부 지방정부는 초호화판 청사를 신축해 시민과 누리꾼들로부터 강한 질타를 받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중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체 31개 지방정부 가운데 채무규모의 합을 지역총생산으로 나눈 개념인 부채율이 60% 이하인 곳은 7곳에 불과하며 10곳은 100%를 넘었다.
일부 지방정부는 부채율이 150%를 초과했고 현급 중소도시 일부는 400%를 넘어 사실상 파산 수준에 도달할 정도로 부채 규모는 위험수위를 훌쩍 넘어선지 오래다.
중국 지방정부의 부채는 지난해 기준으로 7조8천억위안(143조5천억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23%에 달하고 있으며 이들 대부분이 지방공기업 대출금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처럼 지방정부 부채가 늘어난 것은 중국이 지난해 금융위기 대응을 위해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지방 정부의 개발과 투자를 권장하면서 상업은행들로부터 무분별하게 대출을 받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지방정부가 제대로 된 감시와 감독을 받지 못한 채 방만하게 예산을 운영한 데에도 상당한 원인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일부 지방 정부는 경제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호화판 청사를 신축해 공공의 분을 자아냈다.
저장(浙江)성 창싱(長興)현 행정당국은 4개 청사와 부속시설에 20억위안을 투입해 화려한 야간 조명과 분수, 인공호수를 조성해 누리꾼드로부터 '여기가 두바이냐'란 비아냥거림을 받아야 했다.
광둥성 잔장(湛江)시도 20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빈민구호소의 건물을 짓는데 1천100만위안을 들여 지방 정부의 도덕적 해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드러냈다.
감시와 감독에 앞장서야 할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역시 지난해 7월 회의센터 내 3곳의 화장실을 보수하는데 149만위안(2억7천700만원)을 들여 누리꾼들의 거센 비난을 샀다.
지난해에는 쓰촨(四川)대지진의 최대 피해지역인 몐양(綿陽)시 베이촨(北川)현에 건립되는 지진유적박물관의 건립 비용이 23억위안(4천600억원)이란 소식이 인터넷에 퍼지면서 호화 기념관 논란이 빚어졌다.
이같은 문제에는 중국의 정치풍토상 지방의회 격인 인민대표대회(인대)가 제대로 된 감시와 감독을 못한 채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진 중앙정부의 감시과 감독 기능에만 의존한 데도 원인이 있어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런 당국의 조치가 때늦은 감이 있지만, 지방 재정의 건전성을 확보하고 부실 논란을 잠재우려면 관리와 감독이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판강(樊綱) 중국국민경제연구소 소장은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의 과도한 부채와 부동산 투자로 인한 과열 현상 등에 대해 감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면서 "장기적으로는 체계적인 제도개혁을 통해 중앙과 지방의 관계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中 누리꾼들 "우리가 앞장서서 감시한다"
흥청망청 혈세를 낭비하고 부정부패를 일삼는 중국의 지방정부 간부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는 바로 누리꾼들이다.
중국 누리꾼들은 유언비어를 퍼 나르고 근거 없는 인신모독을 일삼는 외국의 누리꾼들과는 달리 부패 관료를 감시하는 '사이버 포청천'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 광시(廣西)장족자치구 연초전매국 한(韓)모 과장은 지난 2월28일 사이버 공간에서 한 누리꾼이 공개한 지방정부 간부의 '섹스 일기'로 인해 패가망신했다.
이 누리꾼은 인터넷을 통해 "한 과장이 라이빈(來賓)시 연초전매국장으로 재직하던 2007년부터 2년에 걸쳐 '섹스 일기'를 직접 작성했다"고 폭로했다.
한 과장은 일기에서 그동안 5명의 부하 여직원들과 벌여온 부적절한 관계를 묘사한 것은 물론 금품 수뢰나 접대받은 사례를 꼼꼼히 기록했었다.
그는 결국 각종 공사를 발주하는 과정에서 시공업체의 편의를 봐준 대가로 7천900만원의 금품과 4천960만원 상당의 주택을 수뢰한 혐의로 구속됐다.
중국에서 막강한 권력자로 행세해온 광둥(廣東)성 롄장(廉江)시의 천시자오(陳錫照) 공안 부국장도 누리꾼들의 질타로 정치생활에 종지부를 찍어야 했다.
천 부국장은 지난해 12월24일 롄장시 최고급 호텔 4, 5층을 통째로 빌려 1천여명의 하객들이 참석한 가운데 호화판 집들이를 했다가 누리꾼들에게 발각됐다.
누리꾼들은 "공무원 월급만으로는 평생을 모아도 살 수 없는 5층짜리 고급 빌라를 장만한 것도 모자라 호화판 집들이에 촌지까지 챙기느냐?"고 공격했다.
중국에서 최근 문제가 된 지방정부의 도덕적 해이 현상은 대부분 누리꾼이 폭로해 알려졌을 뿐 지방의회를 통해 적발된 사례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jsa@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0/06/03 07:3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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