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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포스코·현대차는 '한국 기업' 아니다

화이트보스 2010. 8. 3. 11:05

삼성전자·포스코·현대차는 '한국 기업' 아니다

입력 : 2010.08.02 20:55 / 수정 : 2010.08.02 22:00

'재벌'. 참 오랜만에 들은 말이다. 한국 대기업 오너들의 '황제 경영', '방만 경영' 행태를 꼬집는 이 말은 IMF 외환위기 때 많이 들었다. 노무현 정부 때까지도 '대기업=재벌'이란 등식(等式)이 통용됐다. 하지만 현 정부 출범 이후 어느덧 '재벌'은 듣기 어려운 말이 됐다.

그 '재벌'이 얼마 전 공교롭게도, 재벌 아래서 샐러리맨의 성공신화를 만들고 청와대에 입성해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먼저 앞세웠던 이명박 대통령의 입에서 나왔다. 이 대통령은 7·28 재·보선을 6일 앞두고 "큰 재벌에서 이자를 일수(日收) 받듯이 하는 것은 사회정의상 맞지 않다. 대기업은 몇천억 이익 났다고 하는데 없는 사람들은 죽겠다고 하니까 심리적 부담이 된다"고 했다.

이 발언이 신호탄이 된 듯, 여권과 정부에서 싸잡아 '대기업'이란 표적을 세워놓고 공세를 퍼부었다. 그리고 "서민과 중소기업을 위하여"를 외쳤다.

'대기업은 나쁘고, 중소기업은 약자'라는 구호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과거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때도 여당이나 야당이나 모두 선거를 앞두면 이 구호를 선점하려 했다. 우리나라에서 대기업은 3000개 안팎이고, 중소기업은 300만개가 넘는다. 대기업에서 일하는 사람은 160만명,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사람은 1150만명가량 된다. 표(票)로 따지면 대기업은 '빈약하기 짝이 없는 소수'에 불과한 것이다.

정부가 진정 중소기업을 돕겠다면, 대기업-중소기업 편가르기를 하는 것보다, 시장(市場)을 혼탁하게 만들어 건강한 중소기업에 부실을 감염시키는 '병든 중소기업'들을 먼저 솎아내는 정화작업부터 해야 한다. 그와 함께 대기업이 법을 어기고 중소기업을 쥐어짜는 것을 철저히 막는 시장의 감시자로서의 평소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지금 한국의 간판 대기업들은 속을 들여다보면 순수 한국 기업이라고 하기 어렵다. 삼성전자는 49% 이상 지분을 외국인이 갖고 있다. 포스코도 절반가량이 외국인 주주의 것이고, 현대차도 외국인이 40% 가까운 주식을 갖고 있다. 한국의 최대 금융그룹인 KB금융과 3위의 신한금융은 60% 안팎 지분이 외국인에게 가 있다. SK텔레콤신세계도, 믿고 싶지 않겠지만, 외국인이 절반 또는 절반 이상의 지분을 갖고 있다. 세계무대에서 바짝 쫓아오고 있는 중국 기업과 싸우고, 선진국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는 '글로벌 기업'인 셈이다.

정부가 이런 대기업들에 호통치고, 막무가내로 이자를 낮추라고 하고, 중소기업과 거래해서 얻은 이익을 다시 토해내라고 압박하는 것을 지금 외국인 주주들이 지켜보고 있다.

세계는 급변하고 있다. 이미 절반 또는 그 이상이 외국계가 돼버린 대기업들이 "한국에선 강성 노조뿐 아니라 정부까지도 못살게 군다"며 본사와 공장을 해외로 옮기겠다고 하면 정부가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막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미국 정부는 얼마 전 2억8000만달러를 지원해 LG화학 공장을 자기 나라로 가져갔다. 공장 기공식에 찾아온 오바마 대통령은 "일자리가 한국에서 왔다"고 기뻐했다. 한국 정부가 세상 변한 줄 모르고 중소기업의 표심(票心)을 사려고 대기업을 치는 구태를 되풀이하면 대기업들이 언제나 글로벌 경쟁에서 앞서 갈 수는 없는 일이다. 대기업이 약해지면, 대기업과 협력해온 건강한 중소기업마저 사라지고 만다. 일자리도 증발하고, 대한민국 젊은이의 미래도 어두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