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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세동기'? 그게 뭐야?

화이트보스 2010. 8. 3. 11:06

'제세동기'? 그게 뭐야?

입력 : 2010.08.02 23:11

공항·철도역 등에서 발생하는 '길거리 심장마비'를 대비해 응급현장에서 즉시 쓸 수 있는 '자동 제세동기'가 도처에 깔리는데, 일반인들은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도 몰라서 활용도가 떨어질 우려가 있다는 기사를 얼마 전에 냈다. 그랬더니 '자동 제세동기'라는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는 반응이 많았다. '자동'(自動)은 알겠는데, '제세동'은 도통 모르겠다는 것이다. 제세동기(除細動器)는 '세동'을 제거하는 기계란 뜻이다. '세동'은 심장마비 직전에 발생하는 부정맥 중 하나를 말한다.

하지만 이렇게 하나하나 설명해도 의료인이 아닌 일반 대중은 그 개념이 여전히 와 닿지 않을 것이다. 심장 박동을 되살리는 '전기 충격기' 정도로 했으면 더 쉽게 다가갔을 듯싶다. 차라리 영어 표현에 익숙한 요즘 세태를 감안, 사람이건 기계건 심장을 구하는 일이면, 미국식으로 '하트 세이버'(saver)라는 별칭을 썼어도 좋을 뻔했다. '제세동기'는 너무 어렵다.

이처럼 의학용어 중에는 대중과 동떨어진 것이 많다. 전문지식을 가진 의료인끼리만 쓰는 용어를 대중에게도 그대로 강요하는 식이다. 팔뼈가 부러진 환자에게 의사들이 종종 쓰는 말이 있다. "도수정복술을 해야겠습니다." '도수정복술'이라…, 난데없이 무슨 수학 과목 하나를 정복해야 한다는 식으로 들린다. 하지만 이말은 손으로 어긋난 뼈를 제 위치로 돌아가도록 맞춰보겠다는 뜻이다. 손을 이용한 뼈 맞추기라도 하면 될 것을, 참으로 불친절하다.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의학용어는 현대의학이 들어온 경로대로 영어를 그대로 옮겼거나, 일본에서 쓴 말이 넘어온 것들이다. '제세동기'도 'defibrillator'를 직역한 것이고, '도수정복술(徒手整復術)'은 일본식 한자 표현이다. 그러다 보니 한참 설명을 들어야 알아듣게 되는 용어들이 많다. 언어가 되레 소통을 방해하는 꼴이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의학용어를 순수 우리말로 바꾸려는 시도가 일고 있다. 하지만 이것도 혼란을 일으키기는 마찬가지다. 퀴즈를 몇 가지 내보겠다. ①막창자꼬리염 ②깔때기콩팥염 ③관상동맥 덧대 ④구슬 알 균이 무슨 말인지 아시겠는가. 정답은 이렇다. ①맹장염 또는 충수돌기염 ②신우신염 ③관상동맥 스텐트 ④연쇄상구균이다. 현재 상당수 의대생들은 '민족주의' 분위기 속에서 이런 식으로 의학용어를 배우고 있다. 기존 의료인도 알고, 대중도 이해할 만한 의학용어마저 굳이 생뚱맞은 우리말로 바꾸다 보니 또 다른 불통(不通)을 자초하고 있다.

의학용어의 대중화는 국민 건강과 의학 발전에 매우 중요하다. 과학의 발달이 대중의 관심과 과학 지식의 확산을 통해 이뤄지고, 정보통신기술(IT)이 전문 용어를 공유하는 사람이 늘면서 급속히 뻗어나갔듯이, 의학 지식의 일반화는 국민 건강 증진과 올바른 의료 행태로 이어진다. 쉬운 의학용어가 그 발전의 촉매 역할을 할 것이다.

기상용어 중에 '꽃샘추위'라는 말이 있다. 3~4월에 발생하는 일시적인 저온(低溫)현상을 날씨가 봄을 시샘한다고 하여 붙인 이름인데 가슴에 와 닿는다. 이 얼마나 근사한 공중(公衆) 친화적인 과학 언어인가. 의학용어는 일반 대중이 꼭 알아야 할 말들이다. 왜 딱딱하고 어려워야 하는가. 제발 친절한 용어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