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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치료제 개발의 꿈, 남한서 완성할래요"

화이트보스 2010. 10. 13. 13:59

암치료제 개발의 꿈, 남한서 완성할래요"

입력 : 2010.10.13 03:02

연구의 자유 찾아 탈북한 '버섯 박사' 김진철씨
돈벌이 명령받고 中파견 중 월드컵 거리응원 모습 보고 남한으로 망명하겠다 결심
차가버섯 항암효과 연구… 입국 4년 만에 특허 따내

지난 7일 오후 충남 금산군 부리면 소나무 숲 속 1만㎡(약 3000평) 부지에서 건물 신축 공사가 한창이었다. 공사를 지휘하던 김진철(가명·62) 박사가 "이제야 건물 모습을 갖춰 가네요. 차가버섯을 통한 암치료제 개발의 꿈을 이룰 곳"이라고 말했다. 이곳은 김 박사가 국내 투자자로부터 투자를 받아 지난달 1일 착공한 차가버섯 연구센터 공사현장이다. 차가버섯은 면역력을 높이는 성분인 베타글루칸의 함량이 높아 암세포 증식을 억제하고 혈당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암과 당뇨병 치료제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하얀 가운을 입은 김 박사는 "이 숲은 평균습도 15%가 유지되기 때문에 차가버섯과 다른 버섯의 균사체를 배양해서 항암(抗癌)물질을 추출하기 좋은 환경"이라며 축구공 크기의 차가버섯을 들어 보이며 환하게 웃었다.

7일 오후 충남 금산군 차가버섯 연구센터 부지에서 김진철 박사가 차가버섯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 박사는 자유롭게 차가버섯을 연구하기 위해 북한을 탈출했다. /신현종 기자 shin69@chosun.com

김 박사는 차가버섯을 상황버섯과 함께 배양하면 베타글루칸 함량이 매우 높은 약용식품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해 지난해 10월 국내에서 특허를 받았다. 김 박사는 "차가버섯으로 건강식품과 항암치료제를 만들어 우리 민족의 건강을 돌보고 싶다"고 했다.

김 박사는 북한 평양경공업대학을 졸업하고 국가과학원의 미생물연구소에서 근무한 북한의 엘리트 과학자였다. 차가버섯의 암 예방 효과에 관심을 갖고 있던 김 박사는 1985년부터 시베리아 노브스미르스키에 있는 차가버섯 연구소에 파견돼 현지 과학자들과 공동연구를 했다. 하지만 1990년대 동유럽 붕괴 이후 북한 경제사정이 악화돼 연구를 지속하기 어렵게 됐다. 이즈음 아내마저 암으로 숨졌다. 그는 "아내를 위해 차가버섯 연구를 서두르고 싶었지만, 북한 상황은 버섯 연구에 전념할 수 없게 했다"고 했다.

경제위기를 맞은 북한당국은 "과학자가 앞장서서 외화를 벌어오라"며 '과학자 돌격대'를 조직했고 김 박사는 평남 안주의 '13호 연구소'에 배치됐다. 그는 이곳에서 북한 기아(飢餓)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옥수수에 솔잎을 넣어 만든 대용(代用)식량을 개발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는 "당 간부 가족들이 식품원료를 모두 빼돌려 주민들에게 나눠줄 게 하나도 없었다"며 "과학자로서 국민을 위해 일하고 싶었는데 연구도, 생산도 못하는 현실에 자괴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1999년 "차가버섯 기술로 외화벌이 할 방법을 연구하라"는 당 명령으로 중국 연변의 농과학원에 가서 공동 연구를 하게 됐다. 김 박사는 "중국 과학자와 한국 사업가를 만나면서 돈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북한과 달리 중국과 한국에선 과학자를 존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결정적 계기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이었다. 돈밖에 모르고 조국도 민족도 모른다고 배웠던 남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거리에 나와 조국을 열광적으로 응원하는 모습이 TV에 나오자 충격받았다고 했다. 처벌이 두려워 행사에 동원돼야 했던 북한 사람들을 떠올린 그는 망명을 결심했다고 한다. 한국행을 결심한 그는 중국 상하이 사범대학 미생물연구소에서 차가버섯 배양에 대한 연구를 마무리 짓고 2005년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러나 그의 한국 생활은 쉽지 않았다. 중국과 북한에서 한 연구결과를 한국에서 인정받기 위해 처음부터 연구를 다시 해야 했다. 각종 실험을 통해 연구성과를 인정받았고 입국 4년 만에 특허를 땄다. 국립암센터 전경희(39) 박사는 "김 박사의 차가버섯 배양물이 항암효과가 높은 것으로 나왔다"며 "공동연구를 통해 약품으로 개발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 "환갑이 넘은 나이에 신약 개발에 집중하는 김 박사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연구센터 부지 한쪽에 지어지는 주거시설을 꼼꼼히 살폈다. 탈북자 출신 근로자들이 생활할 곳이다. 연구센터에 채용된 전용철(가명·44)씨는 "한국에 와서 일자리도 못 구해 마음고생이 컸는데 이곳에서 열심히 일하며 남한 사회에 잘 적응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전씨 아내도 이곳에 채용됐다. 김 박사는 "탈북자 부부들을 연구센터 직원으로 우선 채용할 계획"이라며 "탈북자들이 이곳에서 일도 하며 차가버섯 재배기술도 배워 통일되면 북한 사회를 발전시키는 일꾼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