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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의 이야기가 있는 집 ② 교사 송승훈씨의 ‘잔서완석루’

화이트보스 2011. 5. 10. 18:26

김서령의 이야기가 있는 집 ② 교사 송승훈씨의 ‘잔서완석루’

[중앙일보] 입력 2011.04.11 00:17 / 수정 2011.04.11 00:17
‘잔서완석루’ 대문. 추사체의 조형미와 현대적인 철제 대문이 썩 잘 어울린다.
‘잔서완석루’ 구경은 차라리 감동이었다. 남의 집을 구경하는 것이 그저 방의 개수와 평면, 지붕 재료, 부엌 구조 따위를 보는 것이 아님은 알았지만 잔서완석루처럼 진지하고 뜨거운 현장을 목격하는 것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니다. 집을 짓게 되었을 때 집주인 송승훈(39)은 최근 10여 년간 출판된 건축잡지를 모조리 훑었다. 건축 관련 책을 수십 권 사서 읽었다.

글=김서령 칼럼니스트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책값만 아마 수백만원 들어갔을 겁니다. 그래도 시행착오를 줄이려면 책이 제일 싸게 먹히잖겠어요?”

그렇게 숱한 건축가들과 그들이 지은 집을 샅샅이 살핀 후 마침내 낙점한 건축가가 바로 건축스튜디오 ‘후리’ 이일훈(57) 대표였다.

2층 서재. 책상을 따로 두지 않고 간이 의자를 여기저기 놔뒀다. 손님이 여럿 왔을 땐 이 의자들을 모아 다과상으로도, 술상으로도 쓴다. 천정을 돔형태로 만들면서 생긴 빈 공간은 다락으로 활용하는데, 한번 올라가면 내려오기 싫을 정도로 매력적인 장소다.
자기가 몸담고 살 집을 짓는다는 것은 제 삶의 의미와 방향에 대한 구체적인 점검이 된다. 그런 면에서 이 집의 주인은 확고한 잣대와 지남이 있었다. 그는 집에서 3분 거리에 있는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장현리 광동고의 국어교사다. 그의 수업은 ‘꿈꾸는 수업’이다. 학생들은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읽고 그 책과 관련한 인물을 인터뷰한 후 보고서를 써서 나눠 읽는다. 막연한 독서가 아니고 허튼 글쓰기가 아니다. 그런 방식으로 아이들이 인생을 꿈꾸고 삶과 사회를 고민하도록 이끌면서 송승훈 선생은 책읽기와 글쓰기를 더 잘 가르치기 위한 교사모임도 만들었다.

당연히 그의 집도 책의 집이다. 책 읽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공부하고 토론하고 뒹구는 집이 되길 원했다. 집 이름 잔서완석루(殘書頑石樓)는 ‘낡은 책이 있는 거친 돌집’이란 의미다. 누마루 같은 서재를 짓고 난 후 골동상에서 우연히 발견한 당호다. 글씨만 남은 추사선생 집 현판을 각해서 대문 위에 붙여놓으니 이렇게나 제 자리가 딱 들어맞을 수가 없다. 외벽은 시멘트로 울퉁불퉁하게 마무리했다. 나무무늬가 찍힌 노출 콘크리트와 다양하게 구워낸 시멘트 벽돌을 썼다. 송승훈이 건축가 이일훈을 주목한 첫 번째 이유가 이 ‘불퉁불퉁함’이었다.

“매끄러운 것은 보기엔 좋을지 몰라도 사람을 편치 않게 만들어요. 이일훈 선생의 집이 미장면도 거칠고 녹물도 흐르고 해서 좀 꾸리꾸리한 게 마음에 들더라고요.”

송승훈도 처음엔 당연히 나무와 흙으로 짓는 한옥을 염두에 뒀다. 그러나 이일훈의 『모형 속을 걷다』란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개안을 한다.

앞 마당에서 바라본 잔서완석루 전경. “집 분위기는 이웃에 위세부리지 않고 주변을 비웃지 않으면 좋겠다”는 주인의 바람이 담긴 집이다.
“건축에서 전통계승의 핵심은 외양을 흉내 내는 데 있지 않고, 삶의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공간을 계승하는 데 있다는 내용이었어요. 그걸 읽고 머리가 ‘꽈꽈꽝’ 했죠.”

건축가 이일훈은 전통문법을 계승한 채나눔 건축을 짓는다. 채나눔이란 방과 방이 멀찍이 떨어져 있는 구조다. 방이 서로 겹치지 않는 홑집 형태라 맞창을 낼 수 있고 문만 열면 바로 바깥으로 나갈 수 있다. 바깥 마루가 있어서 실내에서만 살지 않고 집 안이면서 바깥공기를 쐬는 공간이 있다. 잔디를 입히지 않은 맨 흙바닥인 마당이 있어서 식구들이 마루에 앉았다가 마당에 왔다 갔다 하면서 일할 수 있다. 즉 실내와 실외를 완충하는 공간이 있다. 창마다 처마가 나 있어서 뜨거운 여름 수직으로 내리쬐는 햇빛은 차단하고 추운 겨울 낮게 비치는 햇볕은 집 안으로 깊게 받아들인다. 재료가 뭐가 됐건 이런 공간을 가지는 것이 한옥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잔서완석루엔 툇마루만 넷이다. 마당에서 일하다 다리는 햇살에 드러내고 머리는 그늘에 두고 누워있기 딱 좋다. 앞마당은 잔디를 심지 않았다. 그냥 텃밭으로 남겨둬 별의별 남새를 심는다. 뇌출혈로 몸 한쪽이 불편하신 어머니가 거기서 일하며 놀랄만치 건강을 회복하셨다. 우리가 가던 날도 어머니는 소쿠리에 듬뿍 싱그러운 냉이를 캐고 계셨다. “잔서완석루는 시멘트로 지은 한옥”이란 말이 무슨 의미인지 비로소 알 것 같다.

내가 집보다 먼저 접한 것은 블로그에 올린 송 선생의 글이었다. 송 선생의 글은 군더더기와 허세가 전혀 없다. 문장이 깨끗해서 읽는 사람을 청량하게 만든다. 그의 음성과 말하는 방식도 글과 다를 바 없어서 나는 내심 놀랐다. 그런데 그의 집인 잔서완석루가 바로 그랬다. 군더더기와 허세가 전혀 없는 집이었다. 과잉 편리하지도 과잉 화려하지도 과잉 정갈하지도 않았다. 그저 담담하고 편안한 공간이 여기저기 펼쳐졌다. 아래층은 거실이고 거실의 한 벽은 위가 트인 서재로 이곳은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기도 하다. 거기서부터 책의 길이 시작된다. 집의 동서를 가로지르며 비스듬히 걷게 되는 복도는 ‘책의 길’이다. 양쪽으로 서가를 짜 넣어 오가면서 맘에 드는 책을 골라잡을 수 있다. 햇볕을 가려 어둑하고 편안하다. 덜렁 들린 누마루에 알맞게 경사가 져 여름 한낮 누워서 책읽기에 제격인 공간이다. 모서리를 꺾어 돌면 본격적인 서재가 나온다. 위는 돔형으로 검은 벽돌이 천체처럼 덮였고 양 벽면 가득 책이 꽂혔다. 이곳은 책이 워낙 많아 개인서재라기보다 공공 도서관 분위기다. 하긴 책읽기를 원하는 학생과 선생님들에게 개방도 한다니 공공 도서관이래도 과언은 아니겠다. 집 내부는 달팽이처럼 나선형으로 휘돈다. 서재를 지나 직각으로 돌아가면 집주인의 방이다. 이 집에서 가장 깊숙한 지점이다. 맞은편으로 방금 지나온 책의 길이 보이고 안마당 위로는 사각 하늘이 뚫려있고 자그만 앞뜰에는 마가목이 심겨 있다.

4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왼쪽에 나무 손잡이를 달았다. 연로하신 어머니를 위한 배려다. 5 2층 침실 뒷문을 열면 옥상으로 연결된다. 간이침대에 누워 받는 햇살이 눈부시다. 6 잔서완석루엔 툇마루가 모두 네 개다. 동서남북 각 방향 모두에 한 개씩 뒀다. 송승훈씨가 남쪽 마루에 앉아 텃밭을 내다보고 있다. 7 2층 침실. 누워 창을 보니 바로 하늘이 보였다. 밤에는 달도 보인다고 한다. 8 2층 화장실. “손님들이 계속 와주어야 사는 보람이 있다”는 집주인은 손님들을 위해 ‘공중화장실’처럼 꾸몄다.


“이 방에 누워봐야 해요.”

선생이 먼저 눕고 우리 일행도 즐비하게 그 곁에 눕는다.

“잠이 잘 오는 방이에요. 여긴 침실이라 머리맡과 발치에 황토를 듬뿍 넣었어요.”

방 한 켠에 뚫린 문을 나서면 1층 거실과 아래위로 맞뚫린 2층 거실이 나온다. 역시 한쪽 벽은 서가와 책상이다. 아래층 거실부터 따지면 여기는 네 번째 서재가 된다. 이 방 뒷문을 열고 나서면 옥상인데 옥상은 하나가 아니라 다섯쯤 된다. 방향과 높이에 따라 기능은 제각각이다. 비 올 때 노트북 콘센트를 꽂아두고 글 쓰거나 영화 보는 곳도 있고 샤워 후 맨몸으로 대기를 쐬는 곳도 있고 햇볕을 듬뿍 받으며 낮잠 자는 곳도 있다. 짧은 지면에 잔서완석루의 매력을 어찌 다 말하랴. 한 가지 빠뜨릴 수 없는 건 그가 지난해 전국국어교사 모임의 후배와 혼인을 했다는 소식이다. 그러니까 송승훈은 총각 시절에 이미 대지 990㎡(300평)에 아래층 99㎡, 위층 89㎡의 집을 지을 수 있었던 몹시도 운 좋은 사람이었다. 그 운을 혼자 차지하지 않기 위해 잔서완석루는 공부하는 교사들에게 늘 활짝 열려 있다. 방문을 원하시면 그의 블로그(http://blog.naver.com/wintertree91)로 찾아가 안부게시판에 글을 남기기만 하면 된다.
 

김서령(55)씨는 경북대 국문과를 나와 교사, 신문·잡지사 기자로 활동했다. 인터뷰 칼럼을 오랫동안 쓰면서 ‘그 사람을 알려면 집에 가봐야 한다’는 소신이 생겼고, 그 덕에 남의 집 구경을 즐기게 됐다. 2003~2004년 중앙일보 연재를 모아 낸 『김서령의 가(家)』와 『삶은 천천히 태어난다』 『안동 장씨 400년 명가를 만들다』 등의 저서가 있다.


집 짓기까지 건축가와 주고받은 e-메일, A4 용지 200쪽

2005년 8월 23일. ‘잔서완석루’의 주인 송승훈씨가 건축가 이일훈씨에게 첫 e-메일을 보낸 날이다. 그리고 2007년 5월 1일, 집 공사를 시작하기까지 두 사람은 A4 용지 200쪽 분량(글자 크기‘10’)의 e-메일을 주고받았다. 집에 대한 철학을 나누고 다지면서 집의 구조와 재료를 정하는 과정이었다. 중견 건축가 이씨가 “사실 건축주와 이리 긴 소통을 하는 경우는 처음”이라고 했을 정도로 이들의 대화는 길고 깊었다.


“안방은 없어도 되겠습니다. 큰 가족 규모에서 가부장이 자리 잡던 방인데, 지금은 집안사람들의 위계관계도 예전 같지 않아 그냥 보통 방과 별 다를 바가 없어진 듯합니다. 방들은 모두 평등해도 좋습니다. 평등한 상태에서 각자 자기 빛깔을 지니면 되겠지요.”(송승훈)

 “어떤 사람이 돈을 벌자마자 집을 지었는데 화장실이 안방만큼 넓었답니다. 그이는 셋방살이 내내 줄 서는 공동화장실이 너무 끔찍해 대궐만 한 화장실을 평생 꿈꾸었다지요. 이렇게 아주 특별한 해석이 주택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이일훈)

 “집이 병원 분위기가 안 나면 좋겠습니다. 어머니가 오랫동안 병원에 계실 때 저는 병원의 하얀 색을 보기만 해도 피로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새하얀 벽을 보면 힘이 빠집니다. 하얀 형광등도 불편합니다.”(송)

 “집이 얼마만큼 불편해도 될까요. 불편하게 사는 것을 어디까지 참을 수 있으신가요.”(이)

 “아마 제가 불편함을 견디지 못한다면 이런 것일 듯싶어요. 봄비가 오는 소리가 참 좋아서 잠에 빠지면서도 듣고 싶은데 창을 열 수 없을 때, 아아 신음하겠고요. 여름에 비가 와서 후텁지근할 때 창을 열어 바람을 통하게 하고 싶은데 비가 들이쳐서 답답할 때, 아아아 신음할 듯싶어요. 또 시간에 따라 변하는 자연 빛에 따라 책을 읽고 싶은데 빛이 얼마 없어 전깃불을 켜놓아야 하면 아쉽겠지요.”(송)

 집 한 채 짓다 보면 건축주와 건축가가 ‘원수’되기 쉽다는데, 두 사람은 삶의 상처와 비밀까지 나누는 사이가 됐다.‘잔서완석루’는 그 소통의 결과로 만들어진 집이다. “가장 중요하고 자주 발 딛는 곳을 맨 나중 자리에 만들어두면 다른 곳곳이 소외되지 않는다”는 건축가의 제안에 부부침실이 2층 제일 구석에 자리 잡게 됐고, “남의 집 화장실을 이용하다 보면 남의 살이 닿는 곳에 내 살이 닿을 수밖에 없어 신경이 쓰였다”는 건축주의 경험이 화장실에 쪼그려앉아 이용하는 변기를 놓게 했다. 또 비 오는 날 창을 열고 싶어하는 집주인의 소원은 긴 처마로 풀었고, ‘병원처럼 환한 집’을 피하기 위해 커다란 천장등 대신 노란 벽등을 달았다. 책을 볼 때는 스탠드를 켜 부분 조명을 한다. 마당에 잔디를 깔지 않은 건 “잔디가 팰까 봐 줄넘기도 못하는 마당을 어디에다 쓰겠냐”(송), “잔디엔 해충과 뱀이 꾄다”(이)며 두 사람 생각이 딱 맞아 두 번 생각도 안 한 일이었다.

 2007년 5월 첫날 시작한 공사는 꼭 8개월 만인 그해 마지막 날 마무리됐다. 집 구석구석을 예술작품처럼 고민하며 다듬어간 과정이었다. 설계·공사비는 애초 예산 2억5000만원을 훌쩍 넘겨 3억6000만원이 나왔다. 2005년 산 땅값 2억4000만원까지 더해 총 6억원이 ‘잔서완석루’에 들어간 셈이다. 30대 교사에게 만만한 비용이 아니었을 터. 그래도 송씨는 “지상 2층, 연면적 188㎡(57평) 크기의 살림집치고 정말 오래 걸린 공사였으니, 건축가에겐 손해였을 것”이라며 이씨 편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