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4.0] [1] 다같이 행복한 성장
10대그룹 작년 매출 874兆 - 우리나라 GDP의 84% 차지, 수출이 80% 넘어 국부 창출
외국 대기업은 시장 키우는데 - 국내 대기업은 저가 경쟁… 영세 사업자들 생업 빼앗아
시장 독점은 결국 부메랑돼 - 소득감소로 내수시장 위축 결국 대기업 매출까지 줄어
재생타이어 사업을 하는 김덕수 동구타이어유류 사장은 요즘 사업 생각만 하면 잠을 못 이룬다. 2008년 대기업인 한국타이어와 금호타이어가 재생타이어 시장에 진출하면서 연간 3만5000개씩 팔던 재생타이어 판매숫자가 1년 새 2만2000개로 줄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올해 연말이면 전체 재생타이어 물량(연간 약 45만개)의 10%로 제한했던 대기업 쿼터마저 폐지돼 대기업이 연간 900억원도 안 되는 재생타이어 시장을 싹쓸이할 전망이다.재생타이어 업계도 처음엔 대기업 진출을 환영했다. 대기업이 품질개선으로 재생타이어 이미지를 향상시키고 시장도 키울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대기업은 정반대로 갔다. 김 사장은 "대기업이 시장을 키우기는커녕 가격 후려치기로 영세 사업자들의 생업을 빼앗았다"고 말했다.
지난 26일 오후 서너 평짜리 건축자재상들이 모여 있는 서울 종로구 관수동. 이곳에서 만난 전모(56) 사장은 "대기업이 베어링 같은 소모성 부품 유통에 뛰어들면서 매출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3년 전만 해도 청계천에 가게가 있었는데, 한 달에 90만원 하는 월세를 감당 못해 40만원 하는 이곳으로 옮겼다고 했다. 전 사장은 "대기업이 뛰어들면서 월 3000만원 정도 되던 매출이 700만원 안팎으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독과점으로 산업생태계 흔들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부품에서 완제품까지 모두 생산하는 수직계열화를 통해 비약적인 성장을 하며 국가 경제를 견인해왔다. 10대 그룹의 작년 매출액은 874조원으로 우리나라 작년 GDP(국내총생산)의 84.1%에 이른다. 이들 그룹의 주요 업종이 전자·반도체·자동차·중공업 등으로 수출 비중이 80%가 넘는다. 그만큼 해외에서 많은 돈을 벌어 국부(國富)창출에 기여했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대기업의 성장과 함께 내수 시장의 대기업 독과점 구조도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자동차의 경우 현대·기아차의 작년 내수 점유율이 무려 80.5%에 달했다. 삼성전자·LG전자 두 회사가 국내 TV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7%이며, 세탁기(86%)·냉장고(82%)·에어컨(90%) 등 다른 가전시장에서도 절대적이다.
대기업 계열 대형마트는 골목상권을 대부분 잠식했고, 심지어 영세업종인 자판기 시장에서도 대기업 계열의 점유율이 50%를 넘어섰다. 우리 기업의 생태계가 강자만 살아남고 강자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정글 생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의 시장 독과점은 소비자 서비스 개선과 품질 향상 등 긍정적인 효과보다는 경쟁을 저해하고 창의적 중소기업의 성장을 막는 장벽으로 작용한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는 이병철·정주영과 같은 창업 신화를 찾아보기 힘들다. 1980년 이후 설립된 기업 중 자산 5조원 이상의 대기업으로 성장한 곳은 KT·KT&G·STX그룹 세 군데이며, 그나마 KT·KT&G는 민영화된 공기업이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대학원장은 이에 대해 "한국의 중소업체들은 태어나자마자 삼성·LG·SK라는 대기업 동물원에 갇히게 되고 결국 죽어야만 빠져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 독과점 구조가 대기업에 부메랑될 수도"
대표적인 3D 업종으로 분류되는 인천의 경인주물공단에서 만난 최모(53) 대표는 "주물단지의 경기는 전적으로 대기업에 달렸다"고 말했다. 갑(甲)인 대기업이 원자재 가격 인상분을 납품단가에 어느 정도 반영해줄지, 주문 물량을 얼마나 늘릴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승자독식, 약육강식의 정글 생태계에서는 이런 상황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울창한 숲은 지표에 붙어 생존하는 이끼류도 있고, 풀과 키 작은 나무, 하늘 높이 솟은 나무가 모두 어우러져 공생하는 공간이다. 키 큰 나무라고 햇빛을 독차지하지도, 빗물을 혼자 받지도 않는다. 우리 기업 생태계도 정글이 아닌 '숲의 생태계'를 이뤄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대기업이 적정한 납품 단가를 보장하고, 중소기업의 독창적인 기술에 제값을 치러줘야 한다.
중소기업중앙회 조유현 정책본부장은 "대기업이 더 많은 이익을 내기 위해 납품단가를 깎지만 중소기업의 이익감소가 장기적으로 내수시장 위축으로 연결돼 대기업 제품의 구매 자체가 줄어드는 절약의 역설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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