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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물고기가 떨어지던 날

화이트보스 2011. 11. 9. 16:29

하늘에서 물고기가 떨어지던 날

남종영 2011. 11. 09
조회수 4282 추천수 0

용오름, 토네이도로 쓸려올라간 동물이 비로 내리는 기상현상

1964년 서울 한강 용오름 때는 사람도 날려가

 

Singapourfish.jpg

▲물고기 비를 묘사한 그림. 사진=위키미디아 커먼스.

 

영화 <매그놀리아>에서 등장 인물의 갈등이 최고조로 치달을 즈음, 하늘에서 갑자기 개구리가 떨어진다. 한 마리 두 마리 떨어지더니, 나중에는 아예 수천 수만 마리의 개구리 사체들이 도시를 물컹물컹 뒤덮는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초자연적인 현상 앞에서 미움, 분노, 슬픔 등 인간사는 하찮을 뿐. 하늘에서 떨어진 개구리는 모든 갈등을 단박에 날려버린다. 

 

개구리나 두꺼비, 물고기 등 동물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기이한 현상은 영화나 해외토픽에서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런 현상을 '동물 비'(animal rain)라고 부르는데,  국내 역사서인 <삼국사기>에서도 나온다.

 

신라 나물이사금 18년(373년) 때였다. <삼국사기>는 "여름 5월에 경주에 물고기가 비에 섞여 떨어졌다"고 전한다. 기상청은 8일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상, 지진, 천문 기록을 모아 <한국 기상기록집 1>을 펴냈다. 

 

초자연적 아닌 기상 현상

 

어떻게 하늘에서 물고기가 떨어질 수 있을까? 초자연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기상학적으로도 가능한 현상이다. 용오름이나 토네이도(두 현상은 같은 것이지만, 해상에서는 용오름, 육상에서는 토네이도라고 쓰는 경향이 있다)가 발생할 경우, 동물 비가 내릴 수 있다. 용오름은 동물 비를 설명해주는 가장 유력한 가설이다. 

 

전영신 국립기상연구소 황사연구과장은 “좁은 지역이 강하게 가열되면 소용돌이가 일면서 강한 상승기류가 생긴다”며 “이렇게 생긴 용오름에 물고기나 개구리가 하늘로 빨려올라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용오름의 상승기류는 주변 적란운과 연결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하늘로 올라간 물고기는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비와 함께 다시 땅으로 되떨어지는 것이다.


pic.jpg  

(1)호수에 용오름이 불면서 물고기가 강한 상승기류에 휘말려 하늘로 날아오른다.

(2)용오름이 휘말린 물고기가 도시로 이동해 떨어진다.

*자료 : <비비시> 온라인

 

2004년 8월18일 오후 2시45분께 영국 포위스의 나이튼 마을에서도 물고기 비가 내렸다. 주변 호수에서 휘몰아친 소용돌이 바람을 타고 물고기가 하늘로 올라갔다가 마을 한복판으로 떨어졌다. 케빈 켈은 이 지역의 라디오에 출연해 그가 본 사실을 증언했다.

 

모임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는데 번개가 치고 소나기가 내렸다고 한다. 모임 장소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포장도로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놀라왔다. 적어도 10여마리의 작은 물고기가 떨어져 있었다. 일부 물고기는 아가미를 뻐끔대며 살아 있었다. <비비시> 온라인 8월20일치 기사는 물고기 비의 원인을 주변에서 발생한 토네이도로 추정했다. 

 

서울 한복판에서도 용오름 발생

용오름이나 토네이도는 평원이 발달한 아메리카나 유럽에서 발생 빈도가 잦다. 그렇다면 물고기 비도 그곳에서만 나타났을까? 항상 그런 것만은 아니다. 극동아시아에서는 오키나와와 일본 동해안에서 용오름이 가끔씩 나타나기 때문에 물고기 비의 가능성이 없다고 말할 순 없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2009년 6월1일 일본 이시카와에서 두꺼비 100마리가 차 창문을 덮는 등 거리에 떨어졌다고 보도했다.


동물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서울 한복판에서도 용오름이 발생해 막대한 피해를 입힌 적이 있었다. 김성삼 서울대 교수(천문대기학) 등이 '1964년 9월13일 서울 근교를 통과한 토네이도에 관하여'라는 논문에서 모은 주민들의 목격담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9월13일 새벽 2시. 용오름은 신사동 주변에서 시작됐다. “갑자기 시계가 악화되면서 강풍이 휘몰아치고 흙덩어리와 먼지가 하늘로 치솟았다”(신양동 주민). 한강에도 큰 물결이 일었다. “시커먼 물기둥이 한강 수면에서 솟아오르는 것 같았”(뚝섬유원지 주민)고, “직립한 구름 같은 것이 남서쪽에 보였고 폭음이 들렸다”(압구정동 박수덕씨).


피해는 끔찍했다. 고무신이 날아가고 배추가 뿌리 채 뽑힌 것은 약과였다. 압구정동 과수원의 배나무 50그루가 뿌리만 남겨두고 몽땅 부러져서 넘어졌다. 가옥 약 30채가 반파됐으며 바람에 날린 기왓장이 약 30m 떨어진 곳에 산재해 있었다. 길 위에 놓아뒀던 육중한 마차가 동쪽으로 약 30m 날아가 논 위에 처박혔다. 뚝섬유원지에서는 포플러 거목 100여 그루가 뿌리채 쓰러지고 지름 69㎝ 가량 되는 나무가 부러졌다.


seoul tornado.JPG

▲서울 신사동에서 발생한 용오름의 이동 경로. 왼쪽 신사동과 압구정 사이에서 시작해 한강을 건너 뚝섬유원지, 신양동에 갔다가 다시 강을 건너 풍납동, 성내동을 거쳐 팔당에 이르러 소멸됐다. 용오름은 뚝섬유원지 아래쪽의 큰 모래섬은 지금은 사라진 잠실섬이다. 


사람도 날아갔다. 도로시처럼 하늘 저편 '오즈의 나라'로 올라가진 못했지만, 신양동에 사는 안용자씨는 "비바람에 부서진 대문을 고치려고 그의 장남 안영춘과 함께 앞마다에 나갔다"가 변을 당했다. 안씨는 "별안간 휘몰아친 폭풍 때문에 집 앞 논두렁에 틀어박혔다가 또다시 강풍에 휘말려 200m씩이나 날아갔다". 

 

이날 용오름은 중국 산둥반도에 있던 저기압이 한반도 중부지방에 상륙했다가 갑자기 동해로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대기가 극도로 불안정해지면서 일어났다. 서울 한강 남쪽 신사동에서 시작한 소용돌이 바람은 팔당 창우리까지 약 20㎞를 이동하면서 지상의 것들을 쓸어갔다.

 

용오름이 지나간 자취에는 평균 200m 폭으로 쑥대밭이 됐다고 한다. 김 교수 등은 논문에서 이날 용오름이 기압 배치나 기류의 흐름 등에서 미국, 캐나다에서 자주 발생하는 토네이도의 전형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울릉도에서 발생한 용오름. 동영상=국립환경과학원 최광희 박사.


지난달 11일에는 울릉도 주변 해상에서 용오름이 관찰됐다. 울릉도는 한반도에서 가장 용오름이 자주 관찰되는 지역이다. 매년 10~11월이면, 비교적 따뜻한 수온 21~22도의 바다 위 약 1.5㎞ 상층에 7~8도의 찬 공기가 유입되면서 대기가 극심하게 불안정해지기 때문이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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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영 한겨레신문 기자
2001년부터 한겨레신문사에서 일하고 있다. 《한겨레》와 《한겨레21》에서 환경 기사를 주로 썼고, 북극과 적도, 남극을 오가며 기후변화 문제를 취재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지구 종단 환경 에세이인 『북극곰은 걷고 싶다』를 지었고 『탄소다이어트-30일 만에 탄소를 2톤 줄이는 24가지 방법』을 번역했다. 북극곰과 고래 등 동물에 관심이 많고 여행도 좋아한다. 여행책 『어디에도 없는 그곳 노웨어』와 『Esc 일상 탈출을 위한 이색 제안』을 함께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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