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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市民인가

화이트보스 2011. 11. 10. 11:24

우리는 어떤 市民인가

입력 : 2011.11.09 22:04

주용중 정치부 정당팀장

요즘 야권이 신주(神主) 모시듯 하는 단어가 있다. '시민'이다. 친노(親盧)·야권 성향 단체들이 주축인 '혁신과 통합'이 지난 6일 내놓은 '혁신적 통합정당을 위한 제안서'에는 시민이 58차례 나온다. '변화와 혁신의 중심은 시민이다' '이제 시민이 정치질서를 바꿔야 할 시대다' '혁신적 통합정당은 시민이 당원이고 당원이 시민인 정당이다'…. 18세기 말 프랑스에서 있었던 시민혁명이라도 다시 준비하려는 듯한 기세다.

지난달 26일 밤 박원순 서울시장이 당선 확정 뒤 읽은 연설문 제목은 '시민이 권력을 이겼습니다'였다. 이달 초부터 서점에는 '박원순과 시민혁명'이란 책이 나왔다. '혁신과 통합'은 오는 19일 '시민주도의 온+오프 통합정당 건설을 위한 시민토론회', 일명 '렛츠 파티!'를 개최한다. 문재인씨 등이 오프라인 원탁에 모이고 온라인 생중계방엔 1만명 이상의 시민이 동참할 것이란 예고다.

민주당도 질세라 시민을 떠받들고 있다. 지난 7일 민주당 인사들은 다른 야당들과 함께 '시민사회·정당 가치연합 발표회'를 가졌고 손학규 대표는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을 만나 "그동안 정치를 안 한 시민세력과 노동세력이 (정치를) 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달 말 이인영 최고위원은 "이제 시민혁명으로 인해서 정당혁명의 활시위도 당겨졌다"고 했다.

'시민후보'를 자처한 박 시장의 승리는 분명 서울시민의 다수가 기성 여·야 정당을 비토했음을 뜻한다. 이 시민들을 앞세워 내년 총선·대선을 이겨보려는 야권의 발상이 이해는 간다. 그러나 요즘 야권의 '시민 추켜세우기'는 도를 넘어섰다. 시민을 자신들이 원하는 틀로 몰아가거나, 그 틀에 박힌 시민엔 완장을 채워주려는 것 같다.

박원순 서울시장을 지지한 53.4%는 시민(市民)이고,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를 찍은 46.2%는 '반민(反民)'인가. 트위터 등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활용할 줄 알면 시민이고, 거기에 까막눈이면 '구민(舊民)'인가. 20~40대는 시민이고, 50대 이상은 '역민(逆民)'이라도 되는가.

야권은 혁신적 통합정당의 5대 운영원리가 시민소통형, 시민개방형, 시민참여형, 시민통합형, 시민자치형 정당이라고 한다. 좋은 얘기다. 하지만 무엇이 시민의 총의(總意)인가. 서울시장 선거운동 기간 동안 3763명이 트위터 선거 관련 글의 60%(55만5000여건)를 올리거나 퍼날랐다. 이들의 의견이 시민의 의견으로 포장된 것이다. SNS는 순식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소통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토막정보에 여론이 감성적으로 휘둘리기 쉬운 단점도 있다. 지금도 SNS에선 한·미 FTA와 관련해 편파적인 정보들이 수도 없이 떠돌아다닌다. 이럴 경우 소수의 선전·선동가들이 시민을 우중(愚衆)으로 만들기 십상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민으로 인정받길 원한다면 공동체 운영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 시민은 4·19와 6·29의 민주화를 일군 경험을 갖고 있다. 앞으로도 사회와 정치에 관심을 갖고 헌신하는 시민이 더 많아져야 한다. 하지만 시민이 바로 서려면 시민에 아부하는 사람부터 경계해야 한다. 교육학자 레니 존스톤은 현대 글로벌 시민사회에선 포용적, 다원적, 반성적, 행동적 등 네 가지 시민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런 덕목을 시민이 갖췄는지 쓴소리 할 줄 아는 사람이 정말 시민을 위하는 사람이다. 플라톤의 말처럼 시민은 빛이 비치는 모든 것을 영혼의 눈으로 응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