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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가치동맹' 논란

화이트보스 2012. 10. 2. 21:46

'한미 가치동맹' 논란

  • 이하원 정치부 차장

  • 입력 : 2012.10.01 22:01

    이하원 정치부 차장

    18대 대통령 선거가 국민의 눈길을 끄는 요즘 외교·안보 분야에선 흥미로운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노무현 전(前) 정부와 이명박 현 정부 간에 '한미 가치동맹'을 둘러싼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 논쟁은 외교부의 현직 장·차관과 노무현 정부의 장관급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관심이 쏠린다.

    1라운드는 지난 6월 시작됐다. 김성환 외교부 장관은 미국국제문제협의회(WAC) 연설에서 "한미동맹은 안보동맹과 경제동맹을 넘어 이제는 가치동맹의 시대를 맞았다"며 "냉철하게 국익 계산에 입각한 동맹보다는 공유하는 가치에 기반을 둔 동맹이 보다 호혜적이고 영속적"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노무현 정부의 외교·안보 분야 실세였던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이를 비판하고 나섰다. 그는 한중 관계의 중요성을 거론하며 "(한미) '가치동맹'은 번지수를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은 발상"이라며 "세상의 변화를 읽지 못하는 철부지 주장"이라고 했다.

    최근 벌어진 2라운드엔 노무현 정부에서 동북아시대위원장(장관급)을 역임한 문정인 연세대 교수와 김성한 외교부 2차관이 나섰다. 문 교수가 먼저 한 칼럼에서 "중세 십자군을 연상케 하는 그러한 (가치동맹) 외교가 과연 한국의 국익에 부합하는가"라고 비판했다. 그러자 김 차관이 기고문을 통해 "가치동맹은 다른 나라로 가치를 적극 확대한다는 '정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고 반론을 펼쳤다.

    '한미 가치동맹' 논란은 전·현 정부 고위 관계자들 사이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얼마 전 한중 전문가 공동연구위원회가 개최한 세미나가 열렸을 때다. 가치동맹과 관련된 질문이 나오자 나란히 앉아 있던 패널들의 입장이 마치 잘 익은 수박이 갈라지듯 두 편으로 나뉘었다. 중국 전문가 A씨는 "중국이 불편해하니 한미동맹을 그만둘 것인지 아니면 한미동맹을 계속해서 중국을 희생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미국 전문가 B씨는 "헌법에 명시된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을 공유하는 미국과의 가치동맹을 왜 폐기해야 하느냐"며 반박했다.

    가치동맹은 원래 노무현 정부에서 손상된 한미동맹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2008년 4월 워싱턴DC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가치동맹을 추구하겠다"고 한 것이 시발점이다.

    가치동맹 논란은 골고루 잘 발달한 '근육'을 이젠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중국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문제와 관련돼 있다. 이미 한국 사회에는 옳든 그르든 간에 '한미동맹이 한중 관계에 부담이 돼서는 안 된다'는 관념이 깔리고 있다. 외교부 장·차관이 한미 가치동맹을 옹호하는 것과 달리 일부 외교관이 이에 부정적 입장을 가진 것은 비밀도 아니다.

    하영선 동아시아연구원(EAI) 이사장은 최근 상황을 "미국과 중국이 동아시아 신질서를 재건축하는 중"이라고 규정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취할 입장에 대해서는 좌와 우, 보수와 진보, 친미(親美)와 친중(親中) 인사들 간에 더 많은 논쟁이 필요하다. 12월 19일의 대선(大選) 고지를 향해 각축(角逐)하는 박근혜·문재인·안철수 후보 역시 예외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