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월전 佛대선 통해 본 한국대선
기사입력 2012-10-16 03:00:00 기사수정 2012-10-16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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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훈 파리 특파원
지난해 10월 야당이던 사회당의 대선후보가 결정되기 전 여당 중진의원의 수석보좌관인 친구에게 물어봤다. “국정 경험이 전무하지만 중도에 가까운 프랑수아 올랑드 후보와 대도시 시장과 장관까지 지낸 강성 좌파 마르틴 오브리 당대표 가운데 누가 후보가 되는 게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에게 유리할까?” 친구는 “당연히 오브리다. 올랑드가 되면 부동층과 중도표를 더 많이 빼앗기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사실 프랑스 대선은 사르코지와 올랑드의 싸움이었다기보다는 사르코지냐, 아니냐의 대결이었다는 분석이 많다. 대다수 선거전문가들이 올랑드의 승리를 점쳤던 이유는 올랑드의 지지율보다는 줄곧 70%에 육박했던 “정권교체를 원한다”는 여론 때문이었다. 선거의 상수는 ‘사르코지’였다. 대선 이후 한 여론조사에서 올랑드를 찍은 응답자의 70%는 “올랑드가 좋아서가 아니라 사르코지가 싫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네거티브 선거 전략이 선진국 선거에서도 유용함을 보여주는 가장 최근의 사례일 것이다.
사르코지가 미운 오리가 된 이유는 뭘까. ‘경제와 돈’ 문제였다. 유로존 재정위기로 먹고살기가 어려워지다 보니 국민은 당장의 고통을 감내하기 어려웠다. 책임질 누군가가 필요했다. 실업률과 국가부채는 계속 늘고 국가신용등급은 처음으로 ‘트리플A’에서 ‘AA+’로 추락했다. 그렇잖아도 독일의 뒤치다꺼리나 하는 처지로 전락했다는 비아냥거림을 들어온 프랑스의 자존심은 처참하게 구겨졌다.
사르코지는 불법 대선자금, 무기 리베이트 스캔들에 연루됐고 부자 친구들에게 둘러싸인 ‘돈에 미친 소아병적인 콤플렉스’를 가진 한 극우 정치인으로 주저앉았다. 하지만 그는 결코 사과하지 않았다. 오히려 재정을 살린다며 연금수령 연령을 늦추고 노동개혁을 밀어붙였다. 그러나 국민은 그런 먼 길을 내다볼 만큼 한가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올랑드 후보는 연소득 100만 유로 이상 슈퍼부자에게 75%의 소득세를 과세하고 최고소득세율도 41%에서 45%로 올리겠다는 포퓰리즘성 공약을 내놓았다.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두 후보 간 지지율 격차는 다시 벌어졌다.
여론조사는 어땠을까. 워낙 정확하기로 정평이 난 프랑스의 여론조사는 조사 기관에 따라 근소한 지지율 차이만 나타날 뿐 후보의 순위가 다른 경우는 없었다. 그러다가 보수층이 막판에 대거 결집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결선투표 전까지 각종 여론조사에서 올랑드는 사르코지를 6∼8%포인트 차로 앞섰다. 하지만 투표 결과는 3.3%포인트 차로 절반이나 줄었다. ‘숨은 3∼4%’가 있었던 것.
사르코지 진영에서 “포퓰리즘 공약을 쏟아놓고 국민에게 과거 스캔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사과했더라면…” “만약 사회당 후보가 오브리였다면…” 등의 얘기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재미있는 건 이렇게 뽑힌 올랑드 대통령의 지지도가 5공화국 사상 집권 이후 가장 빠른 속도로 추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취임 직후 60% 중후반을 오르내리던 지지도는 40%까지 떨어졌다. 최근 “사르코지가 대통령이 됐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여론조사가 2개나 나왔다. 올랑드 대통령은 “지지도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말까지 해야 했다. 흔히 변덕이 죽 끓듯 하는 프랑스인이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이 정도로 쉽게 자신들의 선택을 부정할 수 있을까 싶어 놀라울 뿐이다.
이종훈 파리 특파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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