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회문화/정치, 외교.

고소득 자녀 둔 노인까지 지원 땐 5조원 더 들어

화이트보스 2012. 10. 16. 10:41

고소득 자녀 둔 노인까지 지원 땐 5조원 더 들어

  • 김민철 기자
  • 입력 : 2012.10.16 03:04

    안철수 발언 계기로… 정치권에 기초수급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론 등장
    자녀에게 생활비 받아도 기초생활수급자 될 수 있어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되면 대상자 117만명 더 늘어나 "또 다른 복지 포퓰리즘" 지적도

    무소속 안철수 대선 후보가 지난 7일 정책 비전 발표에서 "거제에 사는 한 할머니가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에서 탈락해 자살했다"고 말했다. 이후 정치권에서 부양의무자 조항 폐지론이 슬슬 고개를 들고 있다.

    현행 기초생활보장제도는 ①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여야 하고 ②부양의무자가 없거나 부양받지 못하는 경우 등 2개의 조건을 동시에 충족해야 지원대상이 된다. 만약 둘째 조건을 폐지하면, 예컨대 수백억~수천억원대 재산가도 자식에게 재산을 미리 물려주고 생활비를 충분히 받더라도 기초생활급여 등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또 하나의 복지 포퓰리즘

    안 후보는 정책 비전문에서 "부양의무자인 사위의 취직으로 (자살한) 할머니가 기초생활수급 대상에서 제외됐다"며 "하지만 사위는 할머니를 돌볼 수 없었고 결국 할머니는 지난 8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말했다. 이어 "복지부가 기계적으로 자격을 박탈한 결과"라며 "이런 일 앞에서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안 후보는 그러면서 "노인 빈곤을 제로로 만드는 시대를 열 수 있다고 믿는다. 최소한 10년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에 대해 일부에선 "부양의무자 조건을 폐지하자는 것 아니냐"고 해석했다. 실제로 안 후보 발언 이후 빈곤 단체들은 "안 후보는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혀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안 후보 캠프 관계자는 15일 "부양의무 기준 폐지나 완화에 대해 결정한 바 없다. 여러 가지 검토해보고 있다"고 말했다.

    야당 일부와 진보 진영에서는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민주통합당 이낙연·남윤인순, 진보정의당 강동원 의원 3명은 각각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이 법안들에 서명한 의원만 47명이다.

    민주당은 지난 4월 총선에서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를, 통합진보당은 부양의무자 기준 단계적 폐지를 각각 공약으로 내놓았다. 새누리당은 이 부분에 대한 공약을 내놓은 적이 없다.

    서병수 빈곤문제연구소장은 "부양의무자가 있더라도 실제로는 부양을 받지 못하는 노인이 늘고 있는 것이 세태 아니냐"며 "부양의무자 조항은 국가가 마땅히 보호해야 할 노인 빈곤층을 방치하는 것으로, 폐지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사회적 합의와 막대한 예산 필요

    보건사회연구원은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기초생활보장을 받지 못하는 사람을 117만명으로 추산했다. 올 8월 현재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140만명 정도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2009년 말 157만명에 이르렀다. 2010년부터 사회복지통합관리망을 본격 가동한 후에는 그동안 드러나지 않은 자식 등의 소득이 드러나면서 탈락자가 속출했다. 거제 할머니 사건도 이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려면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하는 데다 엄청난 예산이 든다. 복지부 관계자는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해) 117만명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끌어들일 경우 5조7000억원의 추가예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기초생활보장 예산은 8조원이다. 기초수급자 1명당 약 540만원의 예산이 든다.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나 대폭 완화를 주장하는 것은 또 다른 포퓰리즘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보건사회연구원 김미곤 연구기획조정실장은 "부양의무자 기준을 당장 폐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다"며 "그러나 비수급 빈곤층이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만큼 부양의무자의 부양 능력 판정과 재산 기준을 합리적인 수준으로 완화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말했다.

    ☞부양의무자

    기초생활보장법상 부양의무자는 수급자의 직계혈족과 그 배우자다. 기초생활보장 수급 신청자는 소득 인정액이 최저생계비 이하이고, 자식 등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있더라도 부양 능력이 없다는 점을 인정받아야 지원받을 수 있다. 부양 능력이 있는 경우에도 자식이 부모에게 도움을 주지 않는 등 관계가 단절됐을 경우 지원받을 수 있다. 반대로 자식 등에게 부양 능력(소득)이 생긴 것이 확인되면 지원이 끊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