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의 ‘변방 DNA’
기사입력 2013-06-03 03:00:00 기사수정 2013-06-03 08:43:24

퇴임 인터뷰에선 “법무부 장관이 되고 싶다”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핵심 법안을 모두 처리해 준 그를 모른 체했다. 홍준표는 “대한민국을 세탁기에 넣고 돌리고 싶다”고 했지만 ‘정권을 넣고 돌릴 수도 있는 사람’이란 걸 MB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홍준표 스스로도 “내가 MB 손아귀에 잡힐 사람인가. 내가 대통령이라도 나 같은 사람 안 쓴다”고 했다.
2011년 재·보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당 대표에서 물러난 뒤 지난해 4월 총선에서 낙선하면서 그는 다시 변방으로 밀렸다. 그러다 지난해 12월 보궐선거로 경남지사가 됐다. 대표실에 걸었던 ‘척당불기(倜儻不羈)’ 액자는 도지사실로 가져왔다. 기개가 있고 뜻이 커 남에게 눌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그의 좌우명이다. 독불장군으로 불리는 이유가 반쯤은 드러나는 글귀였다.
그는 진주의료원이 매년 50억 원의 적자를 낸다는 이유로 폐쇄를 결정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서민을 위한 배려를 경제 논리로만 판단할 수 없다’며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가 모두 말렸지만 그는 귀를 열지 않았다. 의료원 직원 71명에게 해고 통보를 하면서도 정작 의료원엔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대화와 설득 노력도 없이 사안을 옳고 그름의 문제로 보고 밀어붙였다.
경남도청은 지금도 경찰버스가 24시간 울타리를 치고 있다. 문은 모두 봉쇄됐고, 신분 확인을 거쳐야 출입이 가능하다. 신관 건물은 철조망과 자물쇠로 둘러쳐져 있다. 공무원들은 몇 달째 계속되는 시위에 지쳐가고 있다. “군사독재 때 보다 더하다”는 비판에도 홍준표는 꿈쩍 안 했다. 급기야 93세 할머니를 포함한 환자 3명에게 “퇴원하지 않으면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으름장까지 놨다.
야당은 이참에 홍준표 ‘다리 하나’는 부러뜨리겠다는 기세로 덤비고 있다. 여당에서조차 “지방 정치인으로 잊혀지는 게 두려워 무리수를 뒀다”는 말이 나왔다.
내 생각이 옳으면 누가 뭐래도 밀어붙이는 게 홍준표다. 어떤 정치인보다 피아 구분이 분명하다. 소신이 지나치면 내 뜻이 정의(正義)이고, 그걸 반대하면 악(惡)으로 여기게 된다. 현실 정치에선 ‘나도 옳지만 너도 옳다’고 해야 지분도 늘고 우군도 생긴다. 그에게 우호적인 정치인들도 “홍준표에겐 주인의식이 없다”고 지적한다. 눈에 쌍심지 켜고 핏대를 세우는 건 주인공이 아니라 조연의 역할이다. ‘변방(邊方)’이란 제목의 자서전까지 내고도 ‘변방 DNA’를 극복하는 건 쉽지 않은 모양이다.
홍준표의 최종 목표는 대통령이다. 그는 사석에서 “정치인의 최종 목표는 국가경영”이라며 대망을 숨기지 않았다. 특권을 거부하며 ‘따뜻한 보수’를 지향하는 그에게 기대를 거는 국민도 있다. 마침 박근혜 대통령이 빠진 뒤 당은 권력 진공 상태다.
진주의료원 사태로 홍준표는 ‘권력으로 약자를 누른 사람’이란 굴레를 쓰게 됐다. 나만 옳다는 함정에 빠진 대가다. 지금 누가 그의 편에 서 있는가. 정치인 홍준표는 당분간 변방의 한기(寒氣)를 홀로 감당해야 한다. 민심을 얻지 못하는 변방의 장수에게 용포(龍袍)는 허락되지 않는다.
박정훈 사회부 차장 sunshade@donga.com
'경제,사회문화 > 사회 , 경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전기술(원전부품 승인기관) 출신들이 부품검증社도 소유… 原電 비리 주도 (0) | 2013.06.04 |
---|---|
"나만의 성공定義 지녀라, 부모님께 자주 전화하라" (0) | 2013.06.04 |
알고보면 놀라운 김일성의 ‘태극기 사랑’ (0) | 2013.06.04 |
이후락 “김일성 만나고 왔다” (0) | 2013.06.04 |
바닷물로 절인 배추 '아시나요' (0) | 2013.06.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