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7.16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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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정 사회부 법조팀 기자
검사들은 인사철만 되면 일손을 놓습니다. 장관이나 총장, 또는 정치권에 이리저리 줄을 대는 '인사 운동'을 하느라 바쁘기도 하지만, 인사 운동을 하지 않는 점잖은 검사들도 전화 등을 하며 인사 동향 파악에 바쁩니다. 이번에 어느 지방, 어느 보직을 가느냐에 따라 자신의 그 다음 보직도 달라질 수 있고 이렇게 형성된 인사 경로가 검사장 승진 코스냐 아니냐를 가르기 때문입니다.
차관급 직위인 검사장은 '검찰의 꽃'으로 불리는데 한 기수당 10명 안팎만 오를 수 있는, 모든 검사들이 꿈꾸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인사에 목매는 검사들은 정작 1년에 2번 있는 인사평정(評定) 결과를 평생 모르고 삽니다. 일반 사기업 직원들은 정기적으로 평가받고, 평가 결과를 눈으로 확인합니다. 그 결과에 따라 자신감 또는 좌절감을 맛보죠. 하지만 검사들은 평가 점수에 따라 매년 1등부터 꼴등까지 순위가 매겨지는데도 결과를 전혀 알지 못합니다.
- 채동욱 검찰총장.
매년 2차례 자신의 ‘인사평정’ 결과 모른 채 근무하는 검사들
‘검찰 인사’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매년 두차례 나오는 검사들의 평정 결과를 아는 검사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는 것입니다. 법무 장관과 검찰총장을 제외하면, 검찰 인사를 담당하는 법무부의 ‘검찰과(課)’ 소속 검사들, 검찰과를 지휘하는 검찰국장 정도 될까요?
이 때문에 법무부 ‘검찰과’는 검사들 사이에서 최고 권력 부서로 꼽힙니다. 검찰 인사권은 원칙적으로 법무부 장관이 쥐고 있지만, 장관이 모든 검사들을 다 알지 못하는 만큼 '검찰과 검사'들이 평검사나 중간간부 인사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검찰과'는 검찰국 내에서도 가장 중요한 부서로 꼽혀 과거엔 검찰1과로 불렸는데, 이때문에 검찰과의 수석검사는 '1-1'이라는 말로 표현한다고 합니다. 수석 검사 아래 검사는 자연스레 '1-2'입니다. 자신들을 표현하는 방법에서도 자부심이 묻어납니다. '검찰과'를 거친 검사들은 거의 대부분 검찰 내 엘리트 코스를 밟습니다.
검찰과 검사들에겐 '전관예우'도 있다고 합니다. 이들은 검찰과를 거쳐간 선배들이 추천하는 인사를 어느 정도 배려해준 답니다. 한 검찰과장 출신 간부는 "인사 전문가로서 숨어있는 인재들을 객관적으로 발굴해 추천하는 과정은 꼭 필요한 것"이라며 "개인 친분에 따른 인사 압력이란 오해는 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습니다.
법무부 검찰과장을 마친 부장검사들의 다음 보직은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이라는 '인사 방정식'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서울지검 형사1부도 '준(準)권력부서'가 되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서울지검 검사들은 특수부ㆍ금융조세조사부ㆍ공안부 같은 인지부서 외에도 형사1부에 가고 싶어한다고 합니다.
이유는 검찰과장 출신인 상사의 눈에 들면, 훗날 그가 검찰국장이 됐을 때 인사상 이익을 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섭니다. 서울지검 다른 부장검사들은 형사1부장을 찾아와 은근 슬쩍 자신의 인사 고과에 대해 묻기도 합니다.
"검찰에 계속 남았을 때, 내가 검사장이 될 수 있겠는지 솔직하게 얘기해 달라"는 식입니다. 이들은 검사장 승진 가능성이 없다면, 서울지검 부장검사를 마치고 곧바로 변호사 개업을 하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합니다. 서울지검 부장검사를 지낸 직후 개업하면, 사건 의뢰가 넘치고 단기간에 거액을 벌 수 있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검사의 최고 덕목은 '정의감(正義感)'?!
그럼 검사들을 평가하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일반 사기업 직원들은 '업무 성과'가 가장 중요할테지만, 검사들은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사건처리건수나 무죄율, 미제율 등과 같은 업무 성과를 보여주는 항목도 물론 평가 대상이지만, 검사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은 바로 '정의감'이라고 합니다.
옳고 그름을 가리고,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수사하고, 억울한 사람의 피해를 밝혀주는 일이 검사의 본분인만큼 '정의감'이 강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밖에 청렴도나 애국심, 조직에 대한 충성도 같은 것이 우선시되는 평가 항목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인격적인 요소도 사건 수사 결과라는 성과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검사 인사 평가에서 업무 성과를 등한시한다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검사들의 인사 평가 결과는 5~6개 등급으로 나뉩니다. 예를 들면 A부터 E까지의 등급을 상대 평가로 매긴다는 겁니다. 또 각 검사들을 평가한 종합점수가 정확히 기록돼 1등부터 꼴등까지 등수가 매겨진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결과는 검사들에게 절대 공개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등수가 매겨진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검사들도 많습니다.
비공개 이유는 다양합니다. 자존심이 센 검사들에게 평가 등급이나 등수를 공개하면 그 부작용이 만만찮을 수 있습니다. 인사 평정 때마다 엄청난 불만과 민원이 쏟아질 수 있죠. 또 검찰 인사는 평정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정치적 상황이나 출신지역, 학교 같은 요소들이 복합 작용합니다. 이 때문에 평가 등급을 공개할 필요성이 크지 않다는 겁니다.
인사의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한 방법으로 '인사 추천'이라는 일종의 다면평가제도를 활용하기도 합니다. 검사장, 부장검사 등 간부들에게 후배들을 10여명씩 추천해달라고 하는 한편, 각 기수 검사들에게 훌륭한 동기들을 추천해보라고 합니다. 이런 방식을 쓰면 대다수 우수한 인재들은 중복 추천되고, 이들을 좋은 보직에 등용해도 군소리가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
지역·학교 안배 철저한 검찰의 '인사 공학'… '특수통', '공안통' 외에 '형사통'도 나와야
검찰 인사는 무조건 성적이나 능력, 특기대로만 이뤄지지 않습니다. 검사들의 출신지역이나 학교까지 고려하다보니 뒷말 나오지 않는 인사안을 만드는 것이 너무 복잡해집니다. 인사에서 고려하는 요소가 너무 많다보니 '인사 공학(人事 工學)'이라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입니다.
이 때문에 출신 지역 때문에 자기가 갈 자리에 못갔다고 생각하는 검사들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이번 인사에서 검사장 승진자가 7명인데, 승진대상 기수에서 호남 출신 검사들 중 유독 인재가 많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역 안배 때문에 이들 중 2명 이상 검사장 승진이 되기가 쉽지 않다는 겁니다.
올해 초 검찰 인사에서 서울지검 1,2,3차장검사 역시 적절한 지역 안배가 이뤄졌다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윤갑근 1차장은 충북, 이진한 2차장은 경기, 박정식 3차장은 경북 출신입니다. 올 4월 초 1차장 자리에 윤갑근 검사장이 보임됐을 때, 이후 단행될 2·3차장 인사에서는 충청 출신이 가지 못할 것이란 얘기가 나왔습니다. 실제 충청 출신의 2·3차장 후보들은 지방으로 발령나는 고배(苦杯)를 마셨습니다.
요즘 검사들이 선호하는 부서는 역시 특별수사부나 공안부, 금융조세조사부 같은 인지부서입니다. '귀족 검사' '엘리트 검사'로 불리는 법무부나 대검의 기획 부서 검사들도 인기입니다. 최근에는 금융 범죄가 극성을 부리고, 신종 범죄 기법이 늘어나면서 금융조세수사부에서 전문성을 쌓고 싶어하는 젊은 검사들이 매우 많다고 합니다. 나중에 변호사 개업을 했을 때, 재력 있는 의뢰인들의 사건을 많이 맡을 수 있다는 점도 인기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검사들에겐 특수부에 대한 '로망' 같은 것이 있습니다. 대형 권력형 비리를 파헤쳐 살아있는 권력을 구속하고, 방만한 기업인들의 부패를 단죄하는 것이야말로 검사의 최고 덕목인 '정의감'을 가장 극적으로 실현하는 길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얘기를 하다보니 아쉬운 점이 몇개 있습니다. 검찰 인사도 투명해지고 선진화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정권에 따라 특정 출신지역이나 학교가 우대받거나 불이익을 당하는 관행이 지속되오면서, 검찰은 스스로 정치화되어 왔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한 검찰과 출신 간부는 "범죄 기법이 날로 진화되는 만큼 검찰 수사력 강화를 위해 이제 지역이나 학교 안배, 기수 서열이라는 틀에 구애 받지 않고, 능력과 전문성 위주의 인사를 할 때가 됐다"고 말합니다. 인사 평정 시스템에 대한 외부 전문가의 컨설팅도 받고 평정 결과를 일부 공개함으로써 인사의 객관성을 담보할 필요성도 있습니다.
검찰의 가장 중요한 업무인 각종 고소·고발 사건을 처리하는 형사부에 대한 대우도 미흡합니다. 대검 기획부서와 일선 형사부 검사를 모두 거친 한 여검사는 "언론에 나오는 대형 사건을 수사하는 검사들은 극소수이고, 대다수 검사들은 매일 서류더미에 파묻혀 이해당사자들의 갖가지 거짓말과 싸우며 일한다"고 말했습니다.
‘특수통’ ‘기획통’ ‘공안통’ 외에 서민들의 억울함을 속 시원하게 풀어주는 ‘형사통’ 스타 검사도 나오고, 이런 ‘형사통’ 검사들이 조직에서 탄탄대로를 걷는 검찰의 모습을 봤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