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역사에서 배운다/중국 명산,명소,문화를 찾아서

漢詩 읊는 쑤저우 택시 운전사

화이트보스 2013. 7. 30. 14:59

漢詩 읊는 쑤저우 택시 운전사

  • 김태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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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3.07.30 03:04

    침략·내전·혁명으로 '人文정신' 못챙겼던 中
    국력·경제력 커지며 문화의 깊이 달라져…
    도심엔 마오쩌둥 대신 唐宋문장가 동상 세워
    中과 인문공동체 위해 우리 人文수준 높여야

    
	김태익 논설위원 사진
    김태익 논설위원

    중국 쑤저우(蘇州)의 기온은 40도에 가까웠다. 쑤저우 시내에서 택시를 타고 교외의 한산사(寒山寺)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일행의 화제는 아무래도 당나라 장계(張繼)가 썼다는 '풍교에 배를 매고'(楓橋夜泊)라는 시였다. "달 지자 까마귀 울고 서리 가득한 하늘에/강둑 단풍과 고기잡이 불빛이 마주 보며 졸고 있네." 한산사와 그 앞 운하에 걸린 다리 풍경을 그린 이 시 하나로 한산사와 장계는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일행 중 한 사람이 중국어에 운율을 넣어 시의 첫 구절을 읊자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젊은 택시 운전사가 빙긋 웃더니 시를 끝까지 줄줄 읊는 것이었다.

    장쩌민·후진타오 같은 중국 지도자들이 정상회담을 할 때 한시(漢詩)를 끌어다 쓰는 모습은 심심치 않게 봤다. 중국은 초등학교 교과서에 이백(李白)이나 두보(杜甫) 시를 실어 아이들에게 외우게 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렇다 해도 지방 도시 택시 운전사 입에서 1200년 전 당시(唐詩)를 듣는 느낌은 새로웠다.

    지난 2월 새로 완공된 쑤저우 역(驛) 광장 한가운데 9m 높이 청동 인물 조각이 우뚝 솟아 있다. 예전 같으면 마오쩌둥 동상이 그의 어록과 함께 섰음 직한 자리다. 누구를 세울 것인가를 놓고 논란이 많았다고 한다. 중국인들이 선택한 인물은 송나라 문장가 범중엄(范仲淹)이었다. 세계적 조각가 우웨이산(吳爲山)이 빚어낸 범중엄은 금방 살아 움직일 것 같았다. 동상 밑에는 범중엄이 쓴 명문장 '악양루기(岳陽樓記)'의 한 구절이 새겨져 있다. '먼저 천하의 걱정을 근심하고, 이후 천하의 즐거움을 즐거워하라(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 앞으로 쑤저우 역을 오가는 수많은 사람이 광장의 동상을 보며 범중엄의 삶과 '악양루기'의 향기를 떠올릴 것이다.

    '인문(人文) 정신'이란 앞사람들이 이뤄놓은 역사와 문화의 오랜 축적에 경의를 표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 아닐까. 지난 100여년 중국은 외세 침략과 내전, 혁명으로 인문 정신을 챙길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의 중국은 경제가 달라지고 국력이 달라졌듯이 문화도 달라지고 있다.

    난징(南京)의 공자묘와 그 앞을 흐르는 친화이허(秦淮河)는 중국 육조시대의 학문과 예술, 풍류가 어우러진 곳이다. 20~30년 전만 해도 폐허와 같고 흙탕물이 흐르던 이곳이 옛 모습과 함께 생기를 되찾고 있다. 옛날 중국 강남의 인재들이 모여 실력을 겨루던 과거시험장 공원(貢院)도 대대적인 복원 공사에 들어갔다. 난징과 쑤저우, 양저우(揚州)를 여행하며 시인·묵객들의 이름이 새겨진 기념관, 역사적 인물의 고사(故事)가 얽힌 현장을 무수히 만날 수 있었다. 2008년 중국 정부가 파악한 이런 유적과 기념관이 전국에 7만여 곳이나 된다고 한다.

    우리는 중국 하면 '짝퉁' '부패' '부실(不實)' 같은 말들을 떠올리는 데 익숙하다. 그 사회의 다른 한편을 떠받치고 있는 인문의 두께를 간과했다. 정부 지원과 육성만 갖고는 설명할 수 없는 생활 속 인문의 경지가 중국에는 있다.

    우리 안에는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중국과 인문동맹이든 인문공동체든 쉽게 이룰 것같이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다. 중국과의 인문공동체를 얘기하려면 먼저 그들의 무궁무진한 인문적 자원을 알고 인문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를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는 인문의 깊이와 창조력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런 준비가 돼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