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과학자들이 엄마 세포의 모든 유전체(지놈) 정보를 해독했다고 밝혔을 때 가족들은 울분을 삼켰다. 엄마에게서 물려받은 가족들의 유전적 약점까지 덩달아 밝혀지게 돼서다. 하지만 그 후 넉 달, 가족들은 마음을 고쳐 먹었다. 엄마 세포의 지놈 정보를 이용한 연구를 계속 허락해주기로. 그게 인류를 위한 길이고, ‘불멸의 삶’을 살게 된 엄마를 위한 길이라고 믿어서였다.
첫 인간 세포주, 헬라(HeLa)세포를 남긴 헨리에타 랙스. 그가 또 다른 ‘불멸의 삶’을 살게 됐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8일 세계적 학술지 네이처를 통해 랙스의 가족들이 헬라세포 지놈 데이터 활용을 허용했다고 밝혔다. 접근이 제한된 NIH데이터베이스에 지놈 정보를 저장하고, 연구를 원하는 학자는 가족 대표 두 명이 포함된 패널의 사전 승인을 받는 조건이었다.
헨리에타 랙스는 1920년 가난한 흑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결혼해 아이 다섯을 뒀지만, 31세에 자궁경부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암 진단을 받은 지 불과 4개월 만이었다. 그의 암세포는 의사가 깜짝 놀랄 만큼 빠르게 전이됐고, 의사는 랙스나 가족의 동의를 받지 않은 채 그의 난소에서 암세포를 채취해 배양했다. 랙스의 세포는 배양액 속에서 끝없이 증식됐고, 의료진은 그의 이름을 따 헬라(HeLa)로 명명한 이 세포를 연구용으로 무료 배포했다.
전 세계에 퍼진 헬라세포는 의학계에 혁명을 일으켰다. 그간 동물실험만 해오던 과학자들이 인간의 세포를 이용해 의학 연구를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지금껏 5000만t이 넘는 헬라세포가 배양됐다. 관련 연구 논문만 현재까지 7만 건 넘게 나왔다. 1952년 소아마비 백신이 개발된 것도, 2008·2009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탄 연구도 헬라세포 덕분이었다.
하지만 랙스의 덕을 톡톡히 본 인류와 달리 그의 아이들은 고통과 가난에 시달렸다. 큰딸 엘시는 정신병원에서 죽었고, 막내아들 제카리아는 돈을 벌러 말라리아 인체실험에 자원하기도 했다.
2010년 논픽션 작가 레베카 스클루트가 쓴 책(원제 『The Immortal Life of Henrietta Lacks)』, 국내에선 2012년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으로 출간)을 통해 이런 가족사가 알려지면서 미국 사회에선 큰 논란이 일었다. ‘과학의 진보’와 ‘연구 참여자에 대한 존중’이란 두 가치가 충돌한 것이다.
헬라세포를 둘러싼 과학 윤리 논란은 올해 3월 독일 연구자들이 이 세포의 전체 지놈 정보를 해석해 공개하면서 또 한번 불거졌다.
NIH는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랙스 가족에게 셋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제안했다. 헬라세포 지놈 연구의 무제한 허용, 사전 승인을 받는 조건부 허용, 그리고 무조건 이용 금지. 의외로 가족의 선택은 두 번째였다.
가족의 대변인인 손녀딸 제리 랙스 와이는 “헬라지놈은 할머니의 불멸의 이야기(never ending story)의 또 다른 장”이라며 “세상 모든 이를 이롭게 할 중요한 결정을 하게 돼 영광”이라고 말했다. 헬라세포는 현재 세계 각국에서 암과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등 질병 연구에 가장 활발히 이용되는 샘플세포다. 전문가들은 이 세포의 지놈 정보가 공개돼 널리 활용되면, 난치병 치료제의 개발을 앞당길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프랜시스 콜린스 NIH 원장은 “우리는 너그럽고 사려 깊은 랙스 가족에게 큰 빚을 졌다”며 NIH가 후원하는 과학자들에게 헬라지놈 연구 결과를 발표할 때 랙스 가족에 대한 감사 표시를 하도록 했다.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을 번역한 한림대강남성심병원 혈액종양내과 김정한 교수는 NIH와 랙스 가족의 결정에 대해 “소외돼 온 환자와 가족의 프라이버시 보호 측면에서 바람직한 결정”이라며 “다른 나라에서도 새 연구윤리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