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회문화/사회 , 경제

성역’ 허물고 중국·멕시코 당국 굴복시킨 NYT기자들의 死鬪

화이트보스 2013. 9. 9. 13:48

성역’ 허물고 중국·멕시코 당국 굴복시킨 NYT기자들의 死鬪

  • 이지혜·사회정책부 기자
  • 입력 : 2013.09.09 03:05

    
	이지혜·사회정책부 기자
    이지혜·사회정책부 기자
    신문을 읽다가 “야, 어떻게 이걸 다 취재했을까”라는 생각을 혹시 해보셨는지요? 누구도 말해 주지않을 비리를 끝까지 파고들어 세상에 드러내는 참신한 특종 기사.

    기자라면 누구나 꿈 꾸는 일이지만, 취재 방법은 제각각입니다. 책에 나온 메뉴얼을 그대로 따라해서는 절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미국 연수 기간 중 퓰리처상을 세번 받은 기자를 만나 취재 노하우를 육성으로 들었습니다. 올 6월 21~23일 미국 텍사스주 샌 안토니오에서 열린 ‘탐사보도 컨퍼런스’에서였습니다.

    
	퓰리처상 세 번 받은 데이비드 바스토우 기자
    퓰리처상 세 번 받은 데이비드 바스토우 기자

    ◇“멕시코 관청 매일 찾아가 서류 뒤졌더니 나중엔 나를 식구로 여겼다”

    주인공은 2013년 퓰리처상을 받은 뉴욕타임스(NYT)의 데이비드 바스토우(Barstow) 기자인데, 그는 ‘월마트(Walmart)가 멕시코에 진출하면서 점포 확장을 위해 조직적으로 멕시코 정부에 뇌물을 먹여왔다’는 사실을 폭로하는 기사를 썼습니다. ‘월마트 멕시코’는 월마트의 최대 해외 법인인 동시에 멕시코에서 제일 많은 직원(20만9000명)을 고용한 민간 기업입니다.

    월마트는 “최단시간 내 수백개 점포를 동시다발적으로 열어 경쟁사들이 미처 대응할 시간조차 갖지 못 하게 한다”는 전략으로 멕시코 시장 공략에 나섰는데, 바스토우 기자는 무서운 확장의 비결이 ‘검은 돈’이었다는 사실을 규명해 냈습니다.

    월마트가 고용한 멕시코 현지 변호사 두 명을 통해 멕시코 정부 말단부터 최고 권력자까지 층층이 매수했으며 확인된 뇌물 액수만 2400만달러(약 264억원)가 넘는 점을 밝혀낸 것이죠.

    바스토우 기자는 기사에서 “월마트 멕시코 법인이 이 두 변호사에게 돈을 건넨 시점으로부터 몇 주일, 심지어 며칠만에 새 점포 개설 허가가 나왔다”고 했습니다. 환경 보전 분담금이 깎이는가 하면, 개발 제한 규제가 풀리는 식이죠. 이런 조직적인 뇌물 공세에는 월마트 멕시코 법인의 최고 경영진이 관여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에선 해외부패방지법(Foreign Corrupt Practices Act)에 따라 다른 나라 정부에 뇌물을 주더라도 범법 행위이지만, 월마트 미국 본사는 멕시코 지사의 부정행위를 알면서도 별 제재 없이 흐지부지 덮고 있었다고 합니다.

    
	해당 NYT 온라인 기사 캡쳐
    해당 NYT 온라인 기사 캡쳐

    바스토우 기자는 어떻게 특종기사를 냈을까요? 그의 취재 비결은 이렇습니다.

    “또 제보 서류 뭉치가 배달됐다. 마치 보잉 747기가 지나가다 내 책상 위에 서류 한 무더기를 툭 던져 놓은 것처럼. 처음엔 바로 쓰레기통으로 직행해야 마땅한 자료처럼 보였다. 대부분의 제보가 그렇듯이. 멕시코에서 부정부패라니. 늘 있는 일 아닌가. 근데 그냥 버리기엔 찜찜한 세가지 이유가 있었다. ①제보자가 월마트의 전직 임원이었다. 즉 비리 과정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다 ②제보 내용이 디테일로 가득했다. 뇌물 액수와 건넨 날짜가 빠짐없이 기록돼 있었다 ③월마트의 최고 경영진까지 보고가 올라간 것으로 돼 있었다. 사실일 가능성이 높은 중요한 일이라는 감이 왔다.”

    “취재는 엄청난 인내와 지구력을 필요로 했다. 제보 서류를 보며 하나하나 확인해 보는 수 밖에 없었다. 월마트 멕시코 각 지점이 새로 문을 연 날짜, 뇌물을 건넨 시각, 정부 허가가 나온 일정을 일일이 대조해 봤다. 멕시코 관청이 자료를 내놓지 않을 때는 정보공개법를 활용해 공개를 요구했다. 관청을 찾아가 서류를 직접 뒤지기도 했다. 거의 매일 찾아가 종일 죽치고 앉아 있으니, 나중에는 관청 직원들이 나를 식구로 여길 정도였다. 결국 수천건의 정부 문서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첫 2분’이 최종 확인의 승패 가른다접근은 최대한 ‘어리숙하게’,마지막엔 ‘강하게’”

    “끊임없이 사람들을 만났다. 집집마다 문 두드리고 다니는 식이었다. 한 조각의 정보라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월마트 전직 직원, 공무원 할 것 없이 누구든 찾아갔다. 대신 월마트 본사가 눈치채지 않도록 조용히 일했다. 제보자인 전직 임원과는 15시간 넘게 인터뷰했다. 취재가 쌓이고 결정적인 정보가 모인 후 최종 확인을 위해 내부 감사를 조기 종료하고 덮어버린 월마트 본사 최고 경영진까지 만나야 하는 순간이 왔다.

    이런 취재에서는 첫 2분이 제일 중요하다. 문을 열고 첫 대면을 하는 순간 취재원은 얘기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한다. 심리전이다. 마치 양끝에서 쌓아올린 아치의 정중앙에서 마지막 돌을 얹는 것 같은 심정이 된다.

    이 2분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월마트가 나를 찾아오지 않을 수 없게 만들기로 했다. ‘당신들이 말 안 해도 나는 다 알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 가장 불안한 것은 확인이나 해명 기회조차 없이 기사가 나가 버리는 일이다. 결국 월마트 홍보실에서 연락이 왔다. 홍보 전문가, 변호사를 대거 이끌고 온 월마트 최고 경영진을 만나게 됐다.”

    “‘결정적 2분’의 순간이 왔다. 최고급 수트를 차려 입고 나오는 기업 임원진을 만날 때 나는 최대한 허수룩하게 입고(dress down) 나간다. 꾀죄죄한 차림에 양팔에는 서류 뭉치를 잔뜩 끼고 간다. 어리숙한 외모에 그들이 방심하도록 한다. 그리곤 서류 뭉치를 최대한 큰 소리가 나도록 쾅 던져 놓는다. 기선 제압! 그들이 서류를 직접 확인하게 한다. 만약 그들이 재빨리 서류를 돌려보면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라는 뜻이고 열심히 메모하느라 바쁘면 진짜 몰랐던 사실이라는 뜻이다. 결국 8시간이나 이어진 미팅에서 월마트측은 변변한 변명 한마디 못 했다. 기사가 나간 후에도 월마트측의 공격을 받지 않았다. 그들도 공정한 기사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었고, 해명 기회도 충분히 주었던 덕분이다.”

    바스토우 기자는 “누구도 경계심을 갖지 않도록 처음에는 최대한 어리숙하게 접근해 ‘과소평가’를 받고, 일단 기사가 나가고 나면 대단한 기자라고 ‘과대평가’ 받도록 하라”고 힘줘 말했습니다. ‘취재가 끝나는 시점이 언제인가’라고 제가 묻자, 그는 “관련 자료와 서류를 읽고 또 읽어서 자신이 서류에 푹 절었다는 심정이 될 때”라고 답했습니다. ‘형사 콜롬보’를 연상시키는 취재 스타일인 셈이지요.

    
	IRE 탐사보도 컨퍼런스
    IRE 탐사보도 컨퍼런스

    ◇“수많은 정부 기관 및 민간 투자회사에 공개 자료 요청해 1년간 꼬박 확인 취재”

    NYT는 올해 퓰리처상(제97회)에서도 분석보도·국제보도·탐사보도·기획보도 등 4개 부문에서 수상자를 냈는데, 지난해 10월 26일자에 원자바오(溫家寶) 당시 중국 총리 일가족의 3조원 규모 부정축재 의혹을 보도한 데이비드 바보자(Barboza) 상하이(上海)지국장도 그 중 한 명입니다.

    바보자 기자의 특종기사는 5년 만에 중국 공산당 지도부를 교체하는 제18차 전국대표대회와 제18기 중앙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를 2주 정도 앞둔 시점에 보도돼 엄청난 충격을 던졌습니다. 청렴한 이미지를 무기로 정치개혁을 주창해온 원자바오 전 총리의 숨은 면모가 만천하에 드러났고, 원 전 총리를 견제해온 상하이방(상하이 관료 출신 그룹)과 태자당 세력에게 권력의 힘이 실려졌기 때문입니다.

    당시 주요 언론 매체들은 “민감한 시기에 이 보도가 나온 것은 태자당 등이 의도적으로 흘렸을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했지만, 바보자 기자는 퓰리처상 수상소감에서 “기사를 보도할 때까지 꼬박 1년이 걸렸는데 공개된 자료만을 갖고 썼다”고 일축했습니다.

    ‘중국 고위층에 숨겨진 재산이 많다’는 소문을 취재하기 위해 그는 중국의 수많은 정부 기관에 공개자료를 요청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상무부 역할을 하는 중국 국가공상행정관리총국으로부터 받은 기업등록 자료의 주주명부에서 원 전 총리의 친척 이름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이어 원 전 총리의 친척들과 관련있는 수십개의 민간 투자회사에 비용을 지불하고 자료를 받았고, 이를 바탕으로 수십개의 투자 기구에 숨겨진 친척들의 이름까지 찾아냈습니다.

    원 전총리의 친척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가 모두 거절당한 그는 확보한 문서를 수차례 읽고 변호사와 회계사 및 금융전문가들에게 기록이 의미하는 바를 묻고 또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합니다.

    바보자 기자는 NYT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한달로 예상했던 취재는 수천 장의 자료를 찾고 해석하느라 1년이 걸렸다. 쉽게 구할 수 있는 공개자료가 의외로 어마어마했다는 사실에 나 스스로 놀랐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취재 과정에서 어떤 부정이나 부패도 없었다. 다만 남보다 앞서 문서를 철저히 검증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형사 콜롬보’ 식의 바스토우 기자와 ‘퍼즐 맞추기’식으로 공략한 바보자 기자가 각각 쓴 특종 보도에 대해 멕시코와 중국 당국은 한 마디의 반론도 제기하지 못했습니다. 자유언론, 진실 추구 언론이 강고한 취재 성역(聖域)의 벽을 허물어 버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