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10.25 11:17 | 수정 : 2013.10.27 09:09
시진핑이 두 번이나 이곳을 찾은 이유
- 지난 10월 17일(현지시각) 미국 디모인의 아이오와주의회 의사당에서 2013년 세계식량상 시상식이 열렸다 .
미국 시카고에서 자동차로 5시간 떨어진 아이오와주의 주도(州都) 디모인. 디모인에서 다시 차를 40분간 달려 찾아간 프레리시티의 옥수수밭에는 수확을 앞둔 누런 옥수수가 끝없이 펼쳐졌다. 프레리(Prairie)는 미시시피강에서 로키산맥 사이에 펼쳐진 대초원을 뜻하는 말. 윌 캐넌(33)씨는 프레리시티에서 동생과 함께 500에이커(약 61만2000평) 규모의 농사를 짓는 30대 청년 농부다. 아이오와주립대에서 농경학과 농공학을 전공하고 2개 학위를 받은 그는 수년 전부터 유전자재조합(GM) 기술을 적용한 종자를 이용해 옥수수, 대두(콩), 알팔파 농사를 짓는다.
그는 매년 농사 시작 전 노트북컴퓨터와 위성항법장치(GPS)를 이용해 어디에 파종하고, 비료와 농약을 얼마나 뿌릴지를 계산한다. 소형항공기로 농약을 살포할 수도 있지만 정확한 살포를 위해 그는 지상장비를 선호한다. 지역에서 그는 중소농에 불과하지만 농사를 짓는 와중에 스마트폰을 이용해 날씨를 체크하고, 세계 최대 곡물 시장인 시카고 상업거래소의 곡물가도 실시간 점검한다. 윌 캐넌씨는 “농민들이 10년 전만 해도 불가능했던 스마트 기술을 이용해 자원을 적게 사용하면서도 많은 수확을 올려 인류를 더 잘 먹일 수 있게 됐다”며 “요즘은 농업에 과학기술이 도입되면서 젊은 사람들도 다시 농업으로 돌아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아이오와 옥수수촉진위원회의 대외업무를 담당하는 민디 윌리엄슨씨에 따르면, 아이오와에서는 지금 옥수수 수확이 한창이다. 3~5월에 뿌린 종자를 6개월간 정성껏 키워 9~11월 3개월에 걸쳐 수확한다. 윌 캐넌씨가 키우는 옥수수처럼 이곳에서 자라는 옥수수는 90% 이상이 GM기술을 적용한 종자들이다. 어른 팔뚝만 한 굵기의 GM옥수수는 일반 옥수수에 비해 가뭄과 해충에도 잘 견딘다고 했다. 언뜻 봐도 노란 GM옥수수 알갱이는 벌레가 파먹은 데 없이 더 탱글탱글하고 알차 보였다.
아들과 함께 700에이커(약 85만6000평) 규모의 옥수수 농사를 짓는 로저 자일스트라(62)씨는 “인공위성 GPS와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기술의 혜택을 알게 됐다”며 “종자에서도 최신 GM기술을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일스트라씨는 아이오와 옥수수재배자협회장도 맡고 있다. 그는 “협회에는 약 7000명의 농부가 회원으로 있다”며 “대부분의 회원들이 GM기술을 적용한 GM옥수수와 GM대두를 재배하고 있다”고 말했다.
캐넌씨와 자일스트라씨가 수확한 옥수수는 트럭에 실려 인근 곡물 엘리베이터(사일로)로 옮겨진다. 농장과 차로 5분 정도 떨어진 곳에는 아파트 10층쯤 돼보이는 약 40m 높이의 원형의 콘크리트 곡물 엘리베이터가 위용을 드러냈다. 인근에는 곡물을 실을 준비를 마친 50량의 초장대 화물열차도 열차 선로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옥수수와 대두를 가득 적재한 대형 곡물수송트럭은 쉴 새 없이 밀려왔다. 곡물 엘리베이터로 들어온 곡물수송트럭들은 엘리베이터 옆에서 곡물 무게를 자동으로 측정하게 된다. 무게를 측정하는 사이 로봇팔이 알곡 일부를 자동으로 채취해 수분 함유 등 곡물의 상태를 점검했다. 수분 검사에 걸리는 시간은 단 5초. 이후 옥수수는 콘크리트로 된 곡물 엘리베이터로 들어가 최장 1년 반까지 보관된다.
“콘크리트는 철보다 온도 변화가 덜해 곡물을 더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다”고 옥수수재배자협회 소속 고든 와세나르(77)씨는 설명했다. 1500에이커(약 183만6000평)의 농장을 경영하는 고든 와세나르씨에 따르면, 곡물 엘리베이터에 비축된 곡물은 카길, ADM, 번기 등 미국의 3대 곡물유통업체가 시카고 상업거래소에서 결정되는 곡가에 따라 수매해 간다. 카길 같은 곡물메이저들은 트럭과 철로를 통해 곡물을 미시시피강가로 옮긴 뒤, 미시시피강을 따라 가까운 항만으로 다시 옮기고 이후 한국과 일본 등지로 향하는 벌크선에 선적한다.
미국의 농업 경쟁력은 ‘군사’와 함께 세계 최고 실력을 자랑한다. 지난 10월 13일 기자가 아이오와를 찾았을 때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는 ‘셧다운(정부폐쇄)’에 이어 ‘디폴트(국가부도)’ 직전까지 몰렸지만 농업만큼은 끄떡없어 보였다. 세계 최대 종자기업인 몬산토를 비롯 듀폰, 다우가 미국 국적 기업이다. 세계 곡물유통을 장악한 카길, ADM, 번기도 미국이 본사다. 농업은 ‘노(老)제국’ 미국을 지탱하는 힘의 원천인 셈이다.
‘아메리카의 심장부(American Heartland)’란 별명을 가진 아이오와는 미국 농업의 수도다. 국내적으로는 미국 대선의 초반 판세를 결정하는 ‘아이오와코커스(당원대회)’가 열리는 곳으로 유명하지만, 세계적으로는 동쪽으로 미시시피강, 서쪽으로 미주리강을 낀 미국 최대 곡창으로 더 중요하다. 미·소 냉전(冷戰) 와중인 1959년 소련공산당 서기장 니키타 흐루시초프가 아이오와 주도 디모인으로 농업시찰을 왔을 정도다.
1985년에는 당시 중국 허베이성 정딩현(正定顯) 현서기로 있던 32세의 시진핑(習近平)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옥수수 시찰단을 이끌고 아이오와를 찾았다. 시진핑 총서기는 지난해 2월 이곳을 다시 찾아 대두 862만t, 금액으로 43억달러(약 4조5600억원)의 ‘통 큰’ 선물을 안겼다. 짐승들을 사람보다 훨씬 많이 볼 수 있는 전형적 시골이지만, 옛 소련과 중국의 최고지도자가 각각 친히 발걸음할 만큼 중요성을 지닌 셈이다.
아이오와를 대표하는 작물은 옥수수다. 미국에서 연간 생산하는 약 107억부셀의 옥수수 중 20억부셀이 아이오와에서 나온다. “일개 주(州)에 불과하지만 옥수수 생산량은 멕시코에서 생산하는 양의 3배에 달한다”며 “GM기술을 도입함으로써 1930년대에 비해서 약 20% 적은 농토를 사용해 1930년대 생산량의 약 5배를 생산해 낸다”는 것이 아이오와 옥수수재배자협회의 설명이다.
최근에는 한국 농업 관계자들이 아이오와를 찾는 발걸음도 부쩍 늘었다. 농업개발컨설팅사인 셰르파360의 그레첸 플랜리씨는 “한국은 아이오와에서 생산하는 곡물의 주요 수입국 중 하나”라며 “최근에는 한국에서 양돈업자와 맥주업자들도 농업시찰차 아이오와를 많이 찾아온다”고 했다. “돼지사료로 쓰거나 맥주호프의 원료로 옥수수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란 것이 그의 설명이다.
특히 매년 10월 16일을 전후로 인구 20만명의 소도시 디모인에는 전 세계 농업학자, 농업기업, 농정관료, 농민단체가 운집한다. 10월 16일은 1945년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창설을 기념하는 ‘세계 식량의 날’이다. 이날 세계 최대 농업학회인 ‘볼라그 다이얼로그’도 디모인에서 열리는데, 기자가 디모인을 찾은 날에도 70개국 1200여명이 디모인 시내 호텔들을 가득 메웠다.
‘볼라그 다이얼로그’는 ‘녹색혁명의 아버지’로 불리는 노먼 볼라그(1914~2009) 박사에서 비롯된 행사다. 아이오와 농장주의 아들로 태어난 노먼 볼라그 박사는 1950년대 다수확품종 밀과 옥수수 육종으로 멕시코, 남미, 인도, 파키스탄 등지의 농업환경을 혁신한 미국의 농업학자다. ‘수십억의 생명을 구한 남자’란 찬사를 받으며 1970년에는 농업학자로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볼라그 박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고향인 아이오와에서는 1986년부터 ‘세계 식량의 날’을 맞아 식량증산에 기여한 사람을 대상으로 큰 상을 준다. 특히 올해 ‘볼라그 다이얼로그’는 노먼 볼라그 박사 탄생 100주년 되는 해와 맞물려 농업계에서는 더욱 관심을 끌었다.
- 2013년 세계식량상 공동수상자인 마크 반 몬태규, 매리-델 칠튼, 로버트 프랠리(오른쪽부터).
올해 세계식량상을 수상한 사람은 마크 반 몬태규 식물생명공학연구소(IPBO) 창립자 겸 소장(벨기에), 매리-델 칠튼 신젠타 생명공학부문 창립자(미국), 로버트 프랠리 몬산토 최고기술책임자(CTO) 겸 부회장(미국) 세 명의 농업학자들. “유전자재조합(GM) 기술로 식량생산을 증대시킨 공을 인정받아 ‘농업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세계식량상을 수상하게 됐다”고 재단 측은 밝혔다. 재단 측은 “올해는 1953년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DNA(유전자)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한 지 60주년 되는 해라 더 의미가 크다”란 말도 덧붙였다. 이에 10월 17일 저녁 아이오와 주의회 의사당을 가득 메운 전 세계에서 모인 800여명의 농업 관계자들은 이들을 향해 기립박수를 보냈다.
시상식 전날 세계식량상 후원자인 루안가(家) 소유 루안센터빌딩에서 만난 노먼 볼라그 박사의 손녀딸 줄리 볼라그는 수상자들을 소개하며 “할아버지는 GM작물이 기아를 퇴치하는 데 있어 평생의 지지자였다”며 “할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GM작물에 관한 논의를 전선으로 끌어낸 데 감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GM기술이 자원부족에 시달리는 농업에 답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세계식량상 시상식이 열린 아이오와 주의회 의사당 앞에서는 시상식을 전후해 ‘반(反)GM’과 ‘반몬산토’를 외치는 환경운동가들이 피켓 등을 들고 나타나 주최 측을 긴장케 했다. 이에 10월 16일부터 18일까지 ‘볼라그 다이얼로그’가 열린 디모인 시내 매리어트호텔 일대와 세계식량상 시상식이 열린 아이오와 주의회 의사당 일원에는 경찰차와 폭발물 탐지차가 배치됐다. 일부 중요한 토론행사의 경우에는 매리어트호텔 내 각 행사장 문 앞에까지 정복경찰과 경찰견이 배치되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공교롭게도 올해는 세계식량상 수상자들이 GM기술을 주도하는 세계 1위 종자기업 몬산토의 최고기술책임자(CTO) 겸 부회장인 로버트 프랠리 박사와 역시 종자 시장의 ‘빅3’ 중 하나인 신젠타의 창립멤버인 매리-델 칠튼 박사가 공동선정됐다는 점 때문에 환경단체의 공격이 더 심했다. 특히 환경운동가들은 몬산토의 최고기술책임자이자 부회장인 로버트 프랠리 박사가 수상자로 선정된 것을 겨냥해 “몬산토는 식량시스템을 통제하려는 시도를 그만두라”고 항의했다.
환경운동가들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GM기술과 GM종자의 전 세계적 확산속도는 무서울 정도다. 미국과 브라질을 비롯한 북미와 남미 대부분 국가와 중국, 인도, 호주 등지의 1730만명의 농부가 GM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로버트 프랠리 박사는 “GM기술이 전 세계에서 급속히 받아들여지는 것은 산출증가와 함께 농사를 더욱 쉽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라며 “농부는 스마트한 비즈니스맨”이라고 했다.
사실 GM기술로 대표되는 생명공학(BT)기술은 전통적 육종과도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생명공학작물협회인 크롭라이프에 따르면, 사실 인류는 1만년 전 농경사회가 시작된 직후부터 적응을 가장 잘하는 동식물 개체들을 선별하는 과정을 거듭 반복해 왔다. 이를 통해 지난 수천 년간 작물과 가축을 지속적으로 개량해 온 것. 농민들도 모르는 사이 일종의 유전자 재조합이 이뤄졌던 셈이다.
대표적인 것이 옥수수다. 지난 10월 14일 아이오와주립대에서 만난 패트릭 슈나블 교수(생명공학)는 “1만년 전 야생옥수수의 일종인 티오신테(Teosinte)는 지금 우리가 먹는 옥수수와 절반 이상 달랐다”고 말했다. 슈나블 교수에 따르면, 줄기가 하나로 곧게 뻗은 옥수수와 달리 티오신테의 줄기는 여러 갈래로 뻗쳤다. “알갱이는 이가 망가질 정도로 딱딱해 갈아먹는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1만년 전부터 인류는 이 같은 고전적 유전법칙을 적용한 전통 육종 방식을 통해 식물과 동물의 품종을 개량해 왔다. 하지만 부모의 유전형질이 각각 절반씩 자식에게 전달되는 전통 교배 방식은 바람직한 형질과 함께 원치 않는 형질까지 자손에게 전달되는 문제점이 있었다. 이런 경우에는 반복적 육종 과정을 거쳐 원하지 않는 형질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당연히 오랜 시간과 많은 비용이 필요한 문제점이 있었다.
유전자재조합(GM) 기술은 필요한 유전자만을 추출해 재조합함으로써 전통 육종 방법을 더욱 빠르고 효과적으로 바꿀 수 있다. 가뭄, 홍수, 해충, 농약 등에 견뎌내는 특성을 부여하기 위해 유용한 유전자를 유전자총으로 원하는 작물에 넣어줌으로써 유전자를 재조합하는 것. 환경운동가들은 유전자재조합의 안전성 문제를 제기하지만, “지금까지 단 한 건의 안전성 문제도 없었다”는 것이 로버트 프랠리 박사의 설명이다.
실제 식품 내 유전자는 모두 인체 내에서 분해된다. 예컨대 사과 한 알에는 수십억 개의 유전자가 있다. 거의 모든 사람이 매일 유전자를 섭취하고 있는 것. 특히 GM작물에 이용되는 단백질과 유전자는 위와 장을 거치며 소화액에 의해 분해된다. 인체 세포나 장내 미생물 등으로 흡수 또는 전이될 가능성도 거의 없다. 밥을 먹을 때 쌀유전자가 인체 내 세포에 전이돼 쌀이 그대로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패트릭 슈나블 교수는 “GM작물을 먹으면 엉덩이에서 뿔이 난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미국인들은 GM기술로 재배된 작물을 거의 매일 먹는다”며 “GM작물이 위험하다는 것은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고, 단지 어떤 사람들은 유기농을 주장하면서 대기업과 기술이 성공을 거두는 것을 원치 않을 뿐”이라고 말했다.
제프 울트 아이오와주립대 교수(농경학)는 “잘 조직되고 직업적으로 반대하는 운동가들은 전 세계 어딜 가나 다 있다”며 “하지만 정작 그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식품안전성 문제가 아닌 정치적, 사회적, 철학적 이슈들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인공위성을 우주로 쏘아올려 GPS를 농업에 적용한 것처럼 GM기술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 로버트 프랠리 박사의 말이다. 로버트 프랠리 박사는 “볼라그 박사는 생전에 GM기술에 대해서는 언제나 반대가 있고, 이들과 싸울 준비를 해야 한다고 했다”며 “농업에 대한 낭만적 환상이 아닌 우수한 종자와 비료만이 인류를 구할 수 있다고 한 것이 노먼 볼라그 박사가 남긴 말”이라고 했다. - 더 많은 기사는 2013년 10월 28일 발매할 주간조선 2279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