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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도 호주머니도 赤字인 한 해를 보내며

화이트보스 2013. 12. 7. 14:10

마음도 호주머니도 赤字인 한 해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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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3.12.06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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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 5년 농사는 취임 첫해에 절반 짓는다는데
    권력의 엄지와 검지 손볼 날 기다리는 無名指의 울분

    강천석 주필
    강천석 주필
    12월 5일 올해 '무역의 날'은 덤덤하게 지나갔다. '무역의 날'은 우리나라 수출이 처음으로 1억달러를 돌파한 1964년 만들어졌다. 올해 실적이 변변찮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우리 수출이 5600억달러를 넘어선다. 50년 만에 5600배 늘어난 이 놀라운 기록을 '기적'이란 단어 말고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더 뿌듯한 건 중국에 1500억달러를 수출해 일본(1332억달러)을 밀어내고 1위에 올라선 일이다. 무역 흑자도 430억달러로 과거 최대 기록을 갈아치우게 된다.

    그런데도 '무역의 날'의 감격은 그날 하루 행사장 안에 혼자 웅크리다 그림자를 끌고 사라지고 말았다. 세상이 기적이란 단어에 식상(食傷)한 게 아니다. 봉급생활자 실제 소득은 지난 5년간 해마다 줄었다. 봉급 표시액은 늘었다지만 이것저것 따지면 실제 임금이 감소한 거나 한가지다. 이런 현상은 1960년대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소득 대비(對比) 가계 부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가계 저축률은 세계 최저 수준으로 주저앉았다. 반면 기업 저축률은 90년대 12~13%대에서 2010년 19.7%로 올라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일본 다음으로 높다고 한다. 기업의 저축이 투자로 이어지지 않은 탓이라는 게 전문가 설명이다. 엊그제 통계청 조사에서 국민 46.7%가 소득·직업·교육·재산을 두루 고려하면 '나는 하층(下層)에 속한다'고 답했다. 올해 1인당 국민소득이 사상 최고를 기록한다는 말이 우습게 들릴 만하다. 무역의 날 '찻잔 속 감격'에는 다 이유가 있는 셈이다.

    국민 마음은 호주머니 사정보다 더 스산하다. 달력 마지막 장 붉은 숫자 일요일이 달랑 4개 남은 오늘, 지난 한 해가 중국발(發) 미세 먼지에 갇힌 서울의 회색 풍경처럼 뿌옇기만 하다. 국민더러 올해 가슴이 벅차오르던 일 세 가지만 대보라 하면 뭘 꼽을 수 있을까. 대통령 농사는 한 해 5분의 1씩 5년 동안 고루 짓는 농사가 아니다. 취임 첫해 묵은 땅의 절반을 갈아엎어 새 모종을 심고, 다음 해에 나머지 절반을 짓는 두해지기 농사다. 3년차 4년차는 잡초를 뽑고 해충(害蟲)이나 구제하면서 5년차 추수 시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취임 첫 세모(歲暮)에 다가서는 국민 눈앞이 뿌옇게 흐리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나라를 바꾸는 새 대통령의 힘은 취임식 다음 날부터 총알 튕기듯 박차고 나가는 출발의 기세(氣勢)에서 나온다. 그래야 가속도(加速度)도 붙는다. 나라의 고질병(痼疾病)은 출발의 기세와 가속도가 합쳐져야 그 굵은 뿌리를 끊어낼 수 있다. 대통령이 임기 중 반드시 성사(成事)시킬 일, 천천히 여건을 만들어가며 밀고 나갈 일, 빨리 털어버려야 할 일 가운데 이제껏 어설픈 매듭이라도 지은 건 기초연금문제 하나뿐이다. 올 한 해를 체로 쳐보면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파문'과 '국정원 댓글 사건'이라는 자갈만 남을 것 같다. 하나는 정부·여당, 다른 하나는 제1야당이 이판사판으로 달려들었지만 국민 심판은 지지도 동반(同伴) 하락뿐이었다.

    올해 한국·북한·미국·중국·일본의 다섯 나라가 얽히고설킨 동북아 정세는 팽이 돌듯 돌아갔다. 북한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 실각설이 진짜 마지막 뉴스가 될지조차 장담하기 어렵다. 팽이의 회전은 원심력(遠心力)과 구심력(求心力)을 함께 만들어낸다. 예민한 국민은 몇 번이고 팽이 밖으로 튕겨 나갈 듯한 어지럼증을 느꼈을 것이다. '강대국은 하고 싶은 걸 하고, 비(非)강대국은 해야 할 일을 하는 수밖에 없다'는 말의 속뜻도 실감했다. 국익이 걸리면 동맹국과 우방국 사이도 얼마나 냉엄(冷嚴)해지는가를 '체험학습'도 했다. 대통령의 외국어 실력은 흐뭇한 에피소드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국제사회는 '스스로 돕는 나라'만 돕는 살벌한 세계다. 대한민국 위아래가 그거 하나라도 뼈저리게 느꼈다면 올 한 해 아주 공친 건 아니다.

    이제 손바닥을 펴고 나라의 활로(活路)를 생각하자. 손가락 가운데 엄지손가락이 가장 힘이 세다. 다음이 검지손가락이다. 그러나 세상과 세계의 어려운 일 가운데 엄지와 검지 하나로 해결할 수 있는 건 몇 되지 않는다. 엄지와 검지가 서로 맞닿아야 제 힘 이상을 발휘한다. 어느 한 쪽이 고개를 곧추세우고 버티면 두 손가락은 영원히 서로 닿지 못한다. 상대를 향해 조금씩 굽혀야만 엄지와 검지가 만날 수 있다. 그것이 손의 신비(神�)다.

    대통령을 엄지, 제1야당을 검지로 권력을 분배한 제도가 대통령책임제다. 국민 처지는 이름마저 서러운 넷째 손가락 무명지(無名指)나 다름없다. 엄지와 검지는 무명지들의 화가 목젖 아래까지 치밀어 올랐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대한민국 무명지들은 내년 6월 지방선거를 거사(擧事)의 날로 정하기로 마음을 모아가고 있다. 보람없이 흘려보낸 하루만큼 불편한 베개가 없다고 한다. 한 해의 끝에 다다라 불편한 베개를 베고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는 국민이 정당방위권을 행사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