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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이벤트는 잘하는데…

화이트보스 2014. 5. 14. 11:33

박 대통령, 이벤트는 잘하는데…

기사입력 2014-05-14 03:00:00 기사수정 2014-05-14 03:00:00

신연수 논설위원
장장 7시간의 규제개혁 대토론회를 열 때부터 불안했다. 규제에는 좋은 면과 나쁜 면, 양면성이 있다. 그런데 대통령이 “규제는 쳐부숴야 할 원수, 암 덩어리”라는 거친 표현까지 쓰면서 규제완화를 외쳤을 때 앞에서 박수 친 사람들이 뒤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어차피 잘 안 되겠지만 정치적 이벤트로는 최고다”라고.

신년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 직접 들고 나온 공공기관 개혁도 그렇다. 공공개혁은 관련자들만 제외하고 국민 모두에게 인기 있는 주제다. 일자리 없는 시대에 ‘철밥통’에다 강성 노조까지 겸한 공공기관은 분노의 표적이다. 공공기관은 항상 어느 정도 방만하기 마련이고 개혁의 여지가 많다.

공공개혁의 목적이 뭔가. 500조 원에 이르는 공공기관의 빚을 줄이는 것이다. 대통령은 방만 경영과 과도한 복리후생을 빚의 원흉으로 꼽았다. 그러나 공기업 직원들은 “해외자원 개발, 4대강 같은 정책 실패로 빚이 늘어났는데 왜 우리를 희생양으로 삼느냐”고 반발했다. “직원들을 어떻게 설득할지 난감하다”고 고백했던 공기업 사장이 여럿이다. ‘자녀 학자금 지원’ 같은 과도한(?) 복리후생을 줄여 절약할 수 있는 돈은, 빚을 갚는 것은 고사하고 연간 이자의 100분의 1도 안 된다. 공공개혁의 이유와 목적, 수단이 제각각인 셈이다. 그러니 개혁 자체보다 국민을 위한 ‘쇼쇼쇼’란 얘기를 듣는다.

대선 당시 경제민주화 공약부터 올해 초 ‘통일 대박’까지 대통령은 그때그때 이슈를 선점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집권 1년 반이 돼가는 지금 무엇을 했는지 떠오르는 것이 없다. 통일의 중요성과 필요성은 알겠는데 흡수통일을 하겠다는 건가, 남북교류를 하겠다는 건가. ‘드레스덴 선언’은 그동안 나온 대북 정책들의 재탕이고 남북관계는 꼬여간다. ‘선거의 여왕’과 ‘국가운영의 달인’은 다르고 이슈 선점과 정책 집행은 다르다는 것을 실감한다.

대통령이 열심히 일하는 건 알겠다. 국민을 위하는 진심도 인정한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다”라고 말하기 힘든 것은 국정에 중심이 없고 시류(時流)에 따라 정책이 오락가락하기 때문이다. 대선 때는 공기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는데 집권 후에는 공기업의 복리후생 축소를 들고 나왔다. 경제성장보다 국민행복에 높은 가치를 두겠다더니 올해는 성장을 위한 규제개혁에만 목소리를 높였다. 국정의 우선순위가 뭔지 모르겠다.

세월호 참사는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안전을 최우선에 두라고 요구한다. 기계만 새것으로 바꾼다고 안전 사회가 되지 않는다.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 아웃소싱을 하고 비정규직 인력을 썼던 일들을 정규직으로 바꿔야 할지 모른다. 단기적으론 공기업의 경영 효율성은 더 떨어지고 민간 기업들은 비용부담 때문에 투자를 꺼릴 것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오락가락하지 말고 안전 쪽에 서야 정부의 안전대책이 일시적인 이벤트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정책의 우선순위와 함께 방법도 중요하다. “대안을 마련해 대(對)국민 사과를 하겠다”는 대통령의 책임감은 감탄스럽다. 그러나 왜 정부가 다 하려고 하나. 세월호의 진상 규명부터 대책 마련까지 국회와 시민사회에 폭넓게 개방해 함께 만들어 가면 좋을 것이다.

21세기 민주주의 국가의 정책은 1970년대 소수 엘리트 관료들이 주도하던 방식과는 달라야 한다. 청와대에 전문가들을 불러 의견을 들은 정도로 민간을 참여시켰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공무원들의 셀프 개혁이 한계가 있음은 국가정보원 개혁이 지지부진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대통령의 내공으로 볼 때 조만간 극적인 반전(反轉) 카드를 내놓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새누리당 의원이 많다. 대통령의 인기는 다시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당시의 인기로 평가하지 않고 업적으로 평가한다.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기자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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