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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억 인구 本土는 철통 통제하는 중국… 조그만 홍콩은 왜 못하나

화이트보스 2014. 6. 4. 16:40

13억 인구 本土는 철통 통제하는 중국… 조그만 홍콩은 왜 못하나

  • 양모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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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4.06.04 03:00

    톈안먼(天安門) 사건 25주년을 앞두고 중국 본토는 최근 계엄 수준의 비상 경계 태세에 돌입했다. 하지만 홍콩의 분위기는 다르다. 홍콩 빅토리아 공원에서는 25주년 당일인 4일 시민 수만명이 모여 희생자를 추모하고 중국의 민주화를 요구할 예정이다. 지난달 시내에 톈안먼 사태를 기념하는 '6·4 기념관'이 개관하기도 했다. 중국 본토인 13억명을 통제하는 막강한 중국 공안은 왜 인구 700만명에 불과한 홍콩을 통제하지 못할까.

    홍콩인들의 '시위권'이 홍콩의 법률뿐 아니라, 중국과 영국이 맺은 조약을 통해 보장돼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1997년 홍콩을 돌려받는 대신 향후 50년간 홍콩의 자본주의 체제와 인권 등을 보장하기로 1984년 영국과 협정을 맺었다. '일국양제(一國兩制·한 나라 안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체제의 공존)'는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협정에 따라 홍콩은 외교와 국방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고도의 자치권을 누리며, 대륙의 법이 아닌 특구법의 적용을 받는다.

    중국과 영국이 맺은 반환협정 3조 5항은 홍콩에서 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언론의 자유 등을 보장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협정에 따라 제정된 홍콩의 최고법 '기본법'도 해당 권리 등을 모두 보장한다. 일부 국제법 전문가들은 중국이 홍콩을 제재하면 조약 불이행으로 영국이 개입할 명분이 생긴다고 본다.

    그렇다고 중국이 고분고분했던 것만은 아니다. 중국은 홍콩 정부에 압력을 가해 2002년 반중 시위 등을 제한하는 '기본법 23조' 도입을 시도한 일이 있다. 하지만 영국 통치 당시 높아질 대로 높아진 시민 의식의 벽을 넘지 못했다. 2003년에는 홍콩인 50만여명이 시위를 벌였고, 법안을 무산시켰다. 당시 시위는 톈안먼 사건 이래 중국에서 벌어진 최대 규모의 시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