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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는 ‘홍재’에서 격동의 19세기를 통찰했죠”

화이트보스 2015. 1. 29. 15:35

정조는 ‘홍재’에서 격동의 19세기를 통찰했죠”

박철상 광주은행 영업지원부장 ‘서재에 살다’ 펴내

2015년 01월 29일(목)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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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큰 서재’라는 의미를 담은 ‘홍재’(弘齋). 군왕이자 정치가, 학자였던 정조가 자신의 서재에 붙인 이름이다. 밖으로는 나라를 지키고 안으로는 백성을 돌봐야했던 정조는 서재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밝혔다. 삶과 죽음, 나라 안위를 고민했던 조선의 지식인들, 이들이 고뇌했던 서재를 살펴보며 인물과 시대를 통찰하고자 했던 ‘서재에 살다’ 조선 지식인 24인의 서재 이야기(문학동네)가 최근 출간됐다.

아스라이 희미해진 과거를 차분하게 되짚어 기록으로 묶어낸 광주은행 박철상(47) 영업지원부장. 그는 지난 1991년부터 은행에 몸을 담고 있지만 주말이면 고문헌 연구자로 변신한다. 한학자였던 부친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책을 접한 그는 은행원이 된 이후로도 역사연구에 매진했고 지금까지 3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지난해엔 계명대에서 ‘조선시대 금석학 연구’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20여 년간 모은 책만 1만여 권. 지난 2010년 ‘세한도’(문학동네)에 이어 세 번째로 책을 출간한 그는 “책을 보는 사람들이 밥을 먹을 때처럼 편안하게 19세기를 접하고 이해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19세기 지식인 서재를 통해 우리 사회의 뿌리를 찾고자 했습니다. 19세기 조선사회는 안정적인 시기가 아니었습니다. 정치적으로 혼란스럽고 일제 지배를 받기 직전이기 때문에 암흑기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그 속에는 치열하게 내일을 준비하는 지식인들이 있었습니다. 서재란 단순히 책을 놔두는 공간이 아니라 자신과 나라의 미래를 고민하던 공간이었습니다.”

‘정조의 홍재’로 시작하는 서재이야기는 ‘박지원의 연암산방’, ‘박제가의 정유각’, ‘정약용의 여유당’, ‘김정희의 보담재와 완당’ 등 지식인 24명의 서재를 통해 당시 시대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박 부장은 당시 지식인들이 붙인 서재 이름에는 다양한 의미가 함축돼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인들이 자동차나 반려견에 이름을 붙여주고 아끼는 것처럼 조선시대 지식인들 서재가 그런 의미였다는 것.

대표적인 사례가 정약용의 여유당이다. 촉망받던 인재에서 천주학을 접했다는 이유로 긴 세월을 유배지에서 보내야 했던 정약용은 서재 이름을 여유당(與猶堂)으로 지었다. 노자에서 유래한 이 단어는 코끼리처럼 커다란 동물 여(與)가 겨울에 살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의심 많고 왜소한 유(猶)가 사방을 돌아보며 경계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정약용은 젊은 혈기를 다스리지 못한 젊은 날 자신을 후회하며 평생을 조심스레 살겠다는 의지를 담아 서재에 여유당이란 이름을 붙인 것이다.

책은 지식인 24명의 삶을 통해 조선이 처한 시대상황도 오롯이 드러낸다. 당시 조선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던 명나라가 청나라에 의해 쇠퇴해가는 시점. 조선 지식인들은 일개 주변국으로 여겼던 청나라가 명나라를 뒤흔드는 것을 보고 큰 혼란에 빠졌다.

박 부장은 정조가 시대적인 변화를 빠르게 인지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더 이상 청나라가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배워야 할 목표가 됐다는 것이다. 저자는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달라진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한 당시 인물들을 높이 평가했다. 과거를 논하던 그는 과연 지금은 어떤 모습인지 반성해 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예향의 도시 광주에서 ‘예’와 ‘향’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말하는 예향은 도대체 어떤 것인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들어선다고 하지만 그 속에 무엇을 채워나갈지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입니다. 달라진 상황을 끊임없이 고민했던 조선의 지식인들, 우리가 과거를 과거에만 둘 것이 아니라 끝없이 공부해야 할 이유입니다.”

그는 19세기에 천착할수록 역사교육 중요성을 절감한다고 역설했다. “1392년 고려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조선이 건국된다고 하루아침에 사람이 바뀌지 않습니다. 국명은 달라져도 고려인으로 살았던 이들은 고려의 문화, 생각을 가진 채 살기 마련입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양세열기자 hot@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