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3.09 03:00 | 수정 : 2015.03.09 07:21
[멈춰 선 '월성 1호기 원전'의 수명 연장 논란… 이은철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
"후쿠시마 원전 사태 책임자는 기술적 전문성 부족한 정치인…
'좀 더 두고 보자'며 여론 의식해 주요 결정을 미뤄 사태 키워"
"올 들어 10시간씩 3번 회의했던 말을 하고 또 했다
마냥 질질 끌고갈 순 없어… 상황을 끝맺을 수단은 투표뿐"
회의는 14시간째 지속되고 있었다. 새벽 2시쯤 이은철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이 "합의가 안 되니 의장 직권으로 투표에 부치겠다"고 선언했다. 야당 추천 위원 2명이 반발해 퇴장했다.
이런 진통 끝에 설계 수명이 다한 '월성 1호기' 가동이 10년 더 연장됐다.
일주일 뒤 이은철(68) 위원장을 만났다. 인터뷰 동안 그는 마치 눕듯이 의자에 상체를 맡겼다. 눈가에는 피로가 묻어 있었다.
"회의가 열 시간을 넘어간다. 한두 번도 아니고.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고 지쳤다. 우리가 전문가인데 정말 위험하다면 왜 계속 돌리도록 하겠나."
―합의가 안 이뤄진다고 표결로 가야 하는 사안인가?
"여태껏 이런 문제가 합의로 된 적이 없다. 올 들어 세 번이나 10시간씩 회의했다. 했던 말을 하고 또 한다. 마냥 질질 끌고 갈 수만은 없지 않나. 매듭을 지으려니 투표밖에 없었다."
―어느 정권도 경제적 부담 때문에 노후 원전을 문 닫는 결정은 쉽지 않을 거다.
"심사 때 경제성 때문에 노후 원전을 끌고 간다는 인상을 줘서는 안 된다고 위원들에게 당부했다. 2013년에 '신월성 1호기'와 '신고리 1호기'를 세웠다. 미심쩍은 부분을 체크하라고 했다. 정부에서는 '여름철 전력난으로 난리인데' 하며 불만스러워했다. 안전의 잣대로만 보는 게 우리의 임무다. 이번에 '월성 1호기' 재가동 결정을 내린 것은 안전에 관해서는 문제없기 때문이다."
이런 진통 끝에 설계 수명이 다한 '월성 1호기' 가동이 10년 더 연장됐다.
일주일 뒤 이은철(68) 위원장을 만났다. 인터뷰 동안 그는 마치 눕듯이 의자에 상체를 맡겼다. 눈가에는 피로가 묻어 있었다.
"회의가 열 시간을 넘어간다. 한두 번도 아니고.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고 지쳤다. 우리가 전문가인데 정말 위험하다면 왜 계속 돌리도록 하겠나."
―합의가 안 이뤄진다고 표결로 가야 하는 사안인가?
"여태껏 이런 문제가 합의로 된 적이 없다. 올 들어 세 번이나 10시간씩 회의했다. 했던 말을 하고 또 한다. 마냥 질질 끌고 갈 수만은 없지 않나. 매듭을 지으려니 투표밖에 없었다."
―어느 정권도 경제적 부담 때문에 노후 원전을 문 닫는 결정은 쉽지 않을 거다.
"심사 때 경제성 때문에 노후 원전을 끌고 간다는 인상을 줘서는 안 된다고 위원들에게 당부했다. 2013년에 '신월성 1호기'와 '신고리 1호기'를 세웠다. 미심쩍은 부분을 체크하라고 했다. 정부에서는 '여름철 전력난으로 난리인데' 하며 불만스러워했다. 안전의 잣대로만 보는 게 우리의 임무다. 이번에 '월성 1호기' 재가동 결정을 내린 것은 안전에 관해서는 문제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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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철 위원장은 “우리가 전문가인데 정말 위험하다면 왜 계속 돌리도록 하겠느냐”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외부 세력이 들어가 지나치게 위험하다는 쪽으로 선동한다. 정말 노후 증상이 나타나면 세워야 한다. 지금 그렇지 않다. 그래도 세우라고 하면 다른 국내 원전들도 다 세워야 한다."
―이렇게 사용 연한을 늘릴 거면 당초 '설계 수명 30년'은 왜 정해뒀나?
"생물의 수명과 다르다. 기계의 설계 수명은 정해진 기간 별 문제 없이 안전하게 쓸 수 있다는 걸 말한다. 그 기간이 돼도 상태가 좋으면 더 쓸 수가 있다. 미국 원전의 수명은 40년이다. 대부분 원전이 20년 더 연장 승인을 받았다."
―'고리 1호기'가 처음으로 10년 연장을 했는데, 여러 번 사고가 있지 않았나?
"4건이 있었는데 다 사소한 것이었다."
―사소하다고 표현해도 되나?
"감기에 걸려도, 폐암에 걸려도 병원에는 간다. 하지만 똑같이 심각한 정도는 아니지 않은가. 원전에는 부품이 약 2백만개 있다. 거대한 시스템을 움직이다 보면 어떤 부품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러면 부품을 교체하면 된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부품이 바뀌었다. 다만 격납 건물과 핵연료 용기만은 바꿀 수 없다. 그때가 되면 새로 짓는 게 더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일반 정서와 너무 동떨어지는 게 아닌가?
"모든 설계는 사고 확률을 낮추고, 그래도 일어날 경우 그 결과를 최소화하게끔 한다. 아주 드물게 인간의 영역을 벗어나 예상치 못한 큰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 그럴 때도 바깥으로 나가지 않고 원전 안에서 모두 해결되도록 한다. '최종 방어벽'이 괜찮은지를 철저하게 보는 것이다."
―'월성 1호기'는 국제 안전 기준에 미흡하다는 주장이 계속 나오는데.
"판단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비행기가 안전하나? 어떤 이는 '문제가 없다'고 하고, 어떤 이는 '일 년에 몇 번씩 사고 나는데 위험하다'고 한다. 95% 안전하면 안전한가? 아니면 5%나 위험한가? 해석과 판단이 다를 수 있는 것이다."
―원전의 안전이 해석 문제라면 곤란하지 않은가?
"원전 안전의 핵심은 사고가 났을 때 방사능의 외부 유출을 차단하는 것이다. 밸브를 열어 기체를 빼서 감압하는 방법이 있고, 문을 닫아 막는 방법이 있다. 월성 원전 4개의 원자로 중에서 3개는 문 시스템이고, '월성 1호기'는 감압 시스템이다. 어떤 시스템을 쓰든 막으면 된다. 시스템마다 안전 기준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떤 시스템을 안 썼으니 문제가 있다, 왜 다른 시스템 안전 기준에 안 맞추느냐고 따진다. 이런 걸로 계속 회의를 해왔다."
―하지만 노후 원전을 10년 연장하는 데 7000억원이 추가로 들어간다는 걸 알았다면 국민들은 찬성했을까?
"어려웠을 것이다. 서류 적합성 심사에서 탈락했을 것이다."
―원전 사업자인 한수원은 '월성 1호기' 심사를 받기 전에 노후 설비 교체 등으로 7000억원을 투입했다. 국민 세금이 들어간 것이다.
"문제가 있었다. 국민에게 부담을 주는 설비 교체 비용이 예상될 때 반드시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교체는 심사를 받은 뒤에 하도록 권유했다. 규정으로 만들 것이다."
그는 서울대 공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원자력 분야에서 '안전(安全) 해석' 전공자다.
"50년 가까이 했으니 원전에서 어떤 문제가 나면 '어느 정도 위험하겠다'는 경중 판단은 할 수 있다. '월성 1호기'는 10년 정도는 큰 사고는 안 일어날 것이라는 확신은 있다. 실제 대형 사고는 노후 원전보다 시스템 작동이 익숙하지 않은 새 원전에서 터졌다."
"미국의 스리마일 원전 사고(1979년)는 건설 몇 달 만에, 체르노빌 원전(1986년)은 3년 만에 터졌다. 물론 후쿠시마 원전은 30년 됐다. 하지만 이는 노후화 때문은 아니다. 알기 쉽게 '세월호 사고'로 얘기하겠다."
―세월호는 일본에서 선령(船齡)이 오래된 중고 선박을 사들여와 개조했던 게 아닌가?
"선박이 오래돼 밑에 부식이 생겨 바닷물이 들어온 사고가 아니다. 승객을 더 많이 태우기 위해 선상에 객실을 증축해 균형이 안 맞았다. 새 선박이 그렇게 해도 똑같이 사고 난다. 과적을 위해 평형수를 버렸다. 짐을 묶지 않아 한쪽으로 무게가 쏠렸다. 노후화가 사고의 직접 원인이 아니다. 그런데 노후 선박을 새것으로 바꾸면 된다는 식으로는 개선책이 잘못 갈 수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도 당시 언론에서 지적된 노후화와는 관계없다는 뜻인가?
"처음 그쪽에 지진이 났다. 충분히 견뎠다. 원전이 멈췄고 냉각수도 정상적이었다. 한 시간 뒤 쓰나미가 덮쳤다. 몇 분 만에 바닷물은 빠져나갔으나 전원이 나갔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비상 발전기를 준비해 놓는다. 하지만 그게 지하에 있었다. 이는 설계에서 잘못됐다. 비상 발전기는 지상에 두고, 이처럼 물이 들어오면 방수막을 치면 된다."
―'월성 1호기'의 수명 연장 심사 때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졌다.
"공포심 확산으로 원전 심사를 진행하는 게 힘들었다. 후쿠시마의 특수 사례를 일반화하니까 원전에 대한 인식 오류가 생겼다. 심사를 5년이나 끌게 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후쿠시마 사례를 통해 원전의 위험이 우리 가까이 있다는 걸 실감했다.
"국내 원전의 안전 대책을 보완하는 계기는 됐다. 원전에서 가장 위험한 경우는 냉각이 안 돼 핵연료가 녹는 것이다. 금방 녹는 게 아니라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 그 기간에 전원을 회복하고 냉각 기능을 되살리면 최악의 상황을 막을 수 있다."
―후쿠시마 원전은 어느 단계의 상황까지 갔나?
"하루쯤 지나 핵연료가 녹기 시작하고 기체가 쏟아지니 격납 용기의 압력이 높아졌다. 인위적으로 차단 밸브를 열어 기체를 뽑아주려고 했지만 열면 닫혔다. 그래서 천장으로 수소가 '뻥' 터져 나왔다. 최악의 원전 사고가 된 것이다."
―복기(複棋)를 해보면, 당시 다른 방도가 있었다고 보나?
"격납 용기를 냉각하는 게 우선이었다. 원자로 안에는 물이 다 증발한 상태였다. 급한 김에 바닷물을 끌어들여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바닷물을 사용하면 사고가 수습된 뒤 염분 때문에 원자로를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한다. 당시 발전소 소장은 바닷물을 집어넣으려고 했다. 경영진에서 바닷물 사용을 둘러싼 토론이 한동안 벌어졌고 결국 타이밍을 놓쳤다."
―이런 비상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한다는 정답이 있을까?
"정확하게 사고 진행 과정을 예측하고 상황 악화를 막아야 한다. 막을 수 없다면 차선책으로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격납 건물에 구멍이라도 뚫어 기체 일부를 바깥으로 빼내 내부 압력 증가를 막았다면…. 쉬운 결정이 아닐 것이다."
―왜 그런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가?
"수습이 잘되고 나면 방사능의 외부 배출 책임을 지라고 했을지 모른다. 그걸 놓치니 결국 건물 천장이 뚫려 비가 와도 막을 수가 없었다. 바닷물이 더 오염됐다. 방사능에 오염된 물탱크가 1000개가 넘었다. 전문성이 부족하고 여론을 의식해 '괜찮지 않을까, 아직 좀 더 두고 보자'하며 중요한 결정을 미뤄 사태를 키웠다. 당시 총리가 컨트롤타워 책임자였다. 그런 조치는 기술자나 전문가에게 맡겨야 했었다."
국내 전력 생산에서 석탄 비중(40%)이 가장 높고, 이어 원자력(29%)이다. 현재 24기의 원전이 있다. '월성 1호기'는 2012년 11월 설계 수명이 만료됐다. 그때부터 2년 3개월간 멈춰 있었다. 이번 '수명 연장' 결정에 지역 주민들은 반발하고, 야당과 관련 환경단체는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낼 태세다.
―위원장이 '월성 1호기에 만약 사고가 나면 내가 책임지겠다'고 말할 수 있겠나?
"그런 각오로 했지만 내가 어떻게 책임질 방법이 있겠나. 책임진다는 말 자체가 허언(虛言)이 되지 않겠나. 정말 제대로 알고 비판하면 괜찮다. 잘못된 정보에 의해 안전 기준을 안 지켰다고 오해하니 참 난감하다. 기술 문제에 정치가 개입하니까…."
'전투'는 여기서 끝날 것 같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