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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화 반대가 신앙의 眞理인가

화이트보스 2015. 11. 5. 14:22

국정화 반대가 신앙의 眞理인가

입력 : 2015.11.05 03:00

김기철 문화부장 사진
김기철 문화부장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國定化)가 발표됐지만, 나라를 두 쪽 낼 것처럼 들끓었던 찬반(贊反) 양론은 식지 않았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4일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국민 불복종 운동을 선언했다. 대학과 역사학계는 매일같이 국정화 반대와 집필 거부 성명을 내놓고 있다. 정부·여당은 물론 우파 시민단체와 논객들은 좌편향 역사 교과서를 바로잡는 길은 국정화밖에 없다며 밀어붙이고 있다.

'국정화 논란'을 보면서 안타까웠던 것은 찬반 중간쯤에 있을 법한 목소리들의 실종이다. 학계는 약속이라도 한 듯 국정화 반대와 집필 거부 성명에 대거 나섰다. 권력에 맞서 직필(直筆)을 사수한 사관(史官)의 전통을 기억하는 역사학자들은 정부가 역사 교과서 집필을 좌지우지한다는 발상에 거부감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의아한 점이 있다. 교과서 문제에 대한 여론은 대체로 현행 한국사 교과서가 아이들에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균형감 있게 가르치기엔 문제가 많지만 국정화까지 가는 건 지나치지 않으냐 하는 쪽이다. 그러나 반대 성명에는 현행 교과서의 좌편향을 성찰하는 대목은 눈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었다.

지난 주말 열린 '전국역사학대회'에서 나온 성명은 "정부·여당은 역사학계를 모독하는 행태를 즉각 중단하라"며 국정교과서 제작에 불참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뿐이었다. 교과서 편향 논란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은 역사학자들이 화살을 이런 식으로 바깥에만 돌리는 것은 정직하지 않은 태도다.

흥미로운 사실은 국정화 반대 입장인 학자들도 개별적으론 현행 교과서의 문제점을 솔직하게 인정한다는 점이다. 심지연 경남대 명예교수는 본지 인터뷰에서 "1948년 남한에서 먼저 단독정부가 수립되고 한 달 뒤에 북한 정부가 들어섰다는 교과서 기술은 당시 복잡한 정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평면적인 역사 인식"이라고 했다. 한영우 서울대 명예교수도 인터뷰에서 "북한 토지개혁의 부작용에 대해 말하지 않고, 북한에서 마치 자유·비밀선거가 이뤄진 것처럼 오도한다"며 현행 교과서를 비판했다. 국정화 반대에 서명한 수많은 지식인 중에 "교과서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고개를 끄덕일 이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집단을 통해 성명으로 나올 때 이런 성찰의 목소리는 좀처럼 끼어들 틈이 없다.

1980년대에 '운동권 대학생'이었던 장로회신학대의 김철홍 교수는 최근 같은 학교 교수들이 낸 국정화 반대 성명에 대한 반박문을 대학 게시판에 올렸다. 이 대학 교수들의 성명도 다른 대학과 비슷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신앙인으로서' 국정화에 반대한다면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성경 구절로 마무리한 게 달랐다. 김 교수는 "국정화에 찬성하는 나는 신앙도 없 고, 양심의 자유도 없는 교수인 셈"이라며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진리의 문제'이고 정말 어느 한쪽의 입장은 '진리', 반대편의 입장은 '거짓'인가"라고 물었다.

김 교수의 지적대로 국정화는 진리와 거짓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렇게 한쪽을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분위기가 우리 사회의 지적 토양을 황폐화시킨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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