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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고령화 시달리는 일본일본 정부가 지난 23일 정규직·비정규직의 고용 형태와 관계없이 같은 종류의 업무에 대해서는 같은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는 이른바 ‘동일노동 동일임금’ 제도를 검토하는 전문가 회의를 열고 “올해 안에 가이드라인을 작성하라”는 지침을 밝혔다. 일본의 노동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현실에서 육아 중인 여성 또는 고령자들을 노동시장으로 유입하기 위한 방책으로 풀이된다. 또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임금 차이 등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 대우를 해소하겠다는 의도도 포함돼 있다. 일본 재계에서는 인건비 상승 등을 이유로 이미 이 같은 동일노동 동일임금 제도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또 ‘연공 서열’을 중시하는 일본과 같은 아시아 국가에서 새로운 임금 체계가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 의문이란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만약 아베 신조(安倍晋三·사진) 정권이 동일노동 동일임금 제도를 일본에 확립시킨다면 인접국인 한국의 노동시장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유럽 태생’의 동일임금제=아베 정권이 주창하고 있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제도는 그 기원이 오래된 개념이다. 영국에서는 이미 19세기 말에 남녀 동일임금의 요구라는 형태로 노동조합에서 거론됐고, 1919년에는 국제노동헌장에서 ‘남녀의 동일한 가치를 가지는 노동에 대하여는 동일한 임금을 받아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또 1951년에는 국제노동기구(ILO)가 제100호 협약에서 이 원칙을 채택했다.그러나 기업 등의 고용 현장에서 남녀, 정규·비정규직 등 각종 고용 조건의 차이를 실질적으로 극복하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제도는 1980년대에 들어서야 실현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곳이 유럽의 복지 선진국으로 알려진 네덜란드다. 네덜란드는 2차 석유 파동 이후인 1982년부터 노동정책을 개혁하기 시작했으며 여성의 취업 확대와 서비스 업종 고용 증대로 인해 시간제 일자리가 급격히 증가했다. 또 시간제 일자리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전일제 근로자와 모든 면에서 동일한 권리와 대우가 보장되도록 했다. 특히 1996년 제정된 ‘노동시간에 따른 차별금지법’은 시간제 근로자에게 시간당 임금, 휴가기간의 보상, 상여금, 사회보장보험 등에서 전일제 근로자와 동등한 대우를 제공할 것을 명시적으로 규정했다. 이렇게 네덜란드에서는 사실상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법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셈이다. 또 이런 규정에 따라 근무시간을 줄여 육아 등에 집중하던 여성 시간제 노동자들은 육아가 마무리된 후 정규직 고용으로 복귀하는 것도 가능해지는 등 자신의 생활 여건에 맞춰 고용 형태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됐다. 또 네덜란드와 같은 복지 선진국인 스웨덴에서도 자신의 여건에 맞게 시간제, 전일제의 고용 형태를 선택하면서도 일한 시간에 대해서는 고용 형태와 관계없이 동일한 임금을 받는 제도가 보편화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정권은 왜 동일임금제를 추진하나=아베 정권뿐만 아니라 일본 사회 전체는 저출산 고령화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 특히 전체 인구가 감소 추세여서 산업 현장에서 일할 노동력을 일정 수준 이상 계속 확보할 수 있을지도 우려하다 못해, 최근에는 외국인 노동자까지도 적극 받아들이는 추세다. 이런 가운데 아베 총리는 지난해 ‘1억 총활약 사회’와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란 어젠다를 제시했다. 1억 총활약 사회는 50년 후에도 일본의 인구를 1억 명으로 유지하고, 한 명 한 명의 일본인이 모두 가정, 직장, 지역에서 더욱 활약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그리고 인구가 줄어 육아나 노부모 부양 문제를 안고 있는 노동자들의 고용 유지가 과제인 일본으로서 보다 유연하면서도 임금 차별의 문제도 해소할 수 있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제도가 이상적인 근로 방식이라는 주장이다.아베 정권의 주장에 앞서 이미 일본의 일부 기업들은 동일노동 동일임금 제도를 도입해 왔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에 따르면 가구업체 이케아 재팬(IKEA Japan)은 지난 2014년 시간제 근로자 약 2400명을 단시간 근무의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업무와 지위가 같다면 단시간 근무직이라도 시간당 임금은 정규직과 같도록 했다. 이에 인건비 부담은 수억 엔 단위로 늘었지만, 직원들의 이직률이 제도 도입 전에 비해 거의 절반으로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아베 정권은 이 같은 효과를 경제 현장 전반으로 확산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일본 재계의 저항과 향후 전망=일본 정부는 23일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위한 전문가 회의에서 4월 중에 논점을 정리하고 5월까지 주요 내용을 정리하라는 지침을 밝혔다. 또 연내에 ‘1억 총활약 플랜’에 이를 반영해 동일노동 동일임금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작성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그러나 현재 대부분 일본 기업들의 급여 체계는 일해온 연수에 따라 임금을 올리는 연공형이 주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대우를 새롭게 정비하는 것은 이 같은 일본식 고용·임금체계의 근본을 무너뜨리는 것인 만큼 노동 현장에서 쉽게 수용될지는 미지수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제도에 대해 일본의 대표적인 경제단체인 게이단렌(經團連)의 사카키바라 사다유키(原定征) 회장은 “일본은 같은 직무라도 일하는 방식에 따라 (임금 체계의) 상황이 다르다”며 정부에 신중한 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박준희 기자 vinke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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