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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병원 설립 정신 되살려 국민연금 정착을

화이트보스 2016. 3. 29. 11:32



아산병원 설립 정신 되살려 국민연금 정착을

입력 : 2016.03.29 05:58 | 수정 : 2016.03.29 10:37

김동섭 보건복지전문기자
국민연금의 탄생 과정을 돌이켜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4년 1월 국민연금(당시 국민복지연금) 시행을 무기 연기하지 않았더라면 한국인의 노후가 지금처럼 불안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안타까움이다. 박 전 대통령은 1973년 국민연금 도입을 결정했다. 연금에 돈이 쌓이면 그 돈으로 중화학공업 발전을 위한 자금을 조달할 요량이었다.
그러나 오일 쇼크가 터지면서 1974년 1월 14일, 국민연금 시행 14일 만에 박 전 대통령은 긴급조치를 발동해 이를 전격적으로 연기했다. 유가 인상으로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기업들이 직원의 연금 보험료 절반을 내줄 형편이 안 됐기 때문이었다.
정주영 前현대그룹 명예회장. /조선일보 DB

국민연금 도입한 朴 前 대통령
오일쇼크 터지자 시행 연기
그대신 정부는 건강보험 시행

"치료 못받고 죽는 사회는 안돼"
정주영 회장은 병원 설립

그나마 국민연금 시행 연기는 건강보험(당시 의료보험)을 도입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당시 보건사회부는 연금 시행을 위해 복지연금국(3개과)을 신설했으나 무기 연기되면서 개점휴업 상태에 들어갔다. 이들은 대신 건강보험 시행을 주장했다. 보사부 장관으로 부임한 신현확씨는 경제기획원의 '시기상조'라는 반대를 무릅쓰고 결국 박 전 대통령의 재가를 받았다. 당시 보사부 예산이 국가 총예산의 2%도 안 될 정도여서 복지란 말을 꺼낼 엄두도 내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가장 큰 변수는 재계였다. 보험료의 절반을 기업주가 부담해야 했기 때문이다. 전경련은 오히려 "가난해 치료도 못 받고 죽는 사회가 돼서는 안 된다"며 건강보험을 추진할 협의회 사무실까지 전경련 회관에 내줄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1977년 7월 1일 건강보험이 시행되던 날 당시 전경련 회장이던 정주영 현대 회장은 "무의촌 해소를 위해 병원을 세우겠다"고 발표했다. 정 회장은 1978년 전북 정읍과 전남 보성, 1979년에 충남 보령과 경북 영덕에 아산병원을 잇달아 개원했다. 그래서 오늘날 서울의 아산병원과 지방 7곳에 아산병원을 만들었다. 건강보험 도입을 정부가 아니라 재계가 '사회적 의무'로 인식해 앞장섰던 것이다.

국민연금은 우여곡절 끝에 노태우 대통령 시절인 1988년에 뒤늦게 시행됐다. 역사가 28년밖에 안 돼 현재 61세 이상 중 국민연금 수령자가 겨우 38%밖에 안 된다. 국민연금 수령자가 전체의 70~80%에 달해 노후를 연금에 의존하는 유럽 국가들과 대비된다. 한국 국민연금이 이처럼 초라한 것은 일부 소규모 기업들이 비정규직·계약직·일용직 직원들에게 연금 보험료 절반을 대주는 것에 고개를 젓기 때문이다. 인건비가 많이 든다는 이유다.
서울시 풍납동에 위치한 서울아산병원. /조선일보 DB
OECD 최악인 노후 빈곤율은 정부가 '돈 비'처럼 뿌려주는 기초연금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600만명인 기초연금 대상자가 불과 10여년 뒤면 1200만명으로 늘어난다. 더욱이 액수마저 올리면 빠듯한 정부 재원으로는 감당할 길이 없는 처지에 빠진다. 결국 노후 빈곤 해소는 국민연금 정착 여부에 달렸다. 국민의 노후를 보장하려면 기업가와 자영업자의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 건강보험 같은 4대 보험 도입에 정주영 회장과 재계가 큰 역할을 했다면, 국민연금 정착을 위해선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이 직원과 상생(相生)하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 국민연금을 국민과 나눠야 한다는 생각이 앞설 때 국민의 노후가 보장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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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