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과 풍수(上)
서울 여의도 63빌딩 정문 옆에는 커다란 표지석 하나가 서있다. ‘내실을 튼튼히 하여 세계 정상으로 나아가자. 회장 김승연’이라고 써 있는 표지석이다. 이 표지석은 한화그룹에서 신동아그룹을 인수했을 때 한 풍수학자의 권유로 김승연 회장 이름으로 세운 것이다. 63빌딩은 바람이 정면으로 지나는 자리여서 그 기운을 이기려면 표지석을 세워 강한 바람을 잠재워야 한다는 뜻에 따라 세웠다. 신동아 그룹 최순영 회장이 경영권을 상실한 것도 이 바람을 이기지 못했다는 풍설이 있었다. 실제로 여의도에는 큰 기업인이나 정치인의 자택이 없다. 예전에 천대 받던 사람들이 살았던 지역적 특성과 물만 있고 산이 없어 큰 인물이 날 수 없다는 풍수학 때문인지 모른다.
- 서울 여의도 63빌딩 정문 곁에 세운 한화 김승연 회장(오른쪽)의 표지석.
반면 서울 신문로의 금호아시아나 빌딩과 서울역 앞 대우빌딩 근처를 최근 가장 흉지로 풍수학자들은 얘기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 본사 빌딩 정문이 북쪽으로 나있어 기(氣)가 밖으로 빠져나가는 흉터라는 지적이다. 2008년 이 신사옥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있었던 맞은 편 빌딩은 좋은 기가 오는 명당이었는데 그 쪽으로 옮기면서 그룹이 휘청거렸고 현재도 총수 형제가 소송전을 벌이고 있는 등 구설수가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 곁인 태광산업 빌딩 역시 이호진 회장이 구속되는 등 구설수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일설에는 미국의 조각가 조너선 브로브스키가 세운 조각상 ‘헤머링맨’의 저주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주요 그룹 본사의 정문을 북쪽으로 둔 곳은 별로 없다. 서울 서린동 SK 본사 사옥은 빌딩 위치상 북쪽인 종로쪽이 정문으로 맞지만 그 반대편인 남쪽으로 정문을 두었다. 테헤란로의 포스코 빌딩도 큰 길가인 북쪽이 아닌 그 반대편에 정문을 두어 액운을 피해 갔다는 풍수학자들의 주장이 있다. 북쪽이 정문인 서울 서소문 옛 조양상선 빌딩과 유원빌딩은 오래전부터 흉터로 소문나 있다. 이 빌딩을 인수한 기업들이 속속 망했기 때문이다. 서울역 맞은 편 부지들도 풍수학자들은 흉지라고 얘기한다. 대우빌딩 터 역시 대우그룹이 망했고, 그 근처에 있는 STX그룹이 부도처리 됐고, CJ그룹은 총수가 구속되는 등 악운을 맞고 있다.
롯데그룹이 짓고 있는 서울 잠실 제2롯데 월드 터 역시 명당과는 거리가 먼곳이라고 풍수학자들은 주장한다. 이곳은 원래 누에를 치던 자리로 풍수학상 반궁수(反弓水)라고 하여 물길과 기운이 쌓이는 곳이 아니라 깎이는 자리라고 한다. 따라서 제2롯데월드를 둘러싼 구설수가 끊이지 않는 것도 풍수지리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원래 우리나라는 산이 많아 양기가 충만한데 높은 건물 또한 양기이므로 조화가 깨진다고 풍수학자들은 주장한다. 한국에선 높은 건축물이 안맞다는 얘기다.
예부터 재벌총수들은 풍수지리에 상당한 관심을 가졌다. 재벌총수들이 사업상 만나는 사람 말고 가장 많이 만나는 일반인은 풍수학자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서울대 교수에서 풍수학자로 변신한 최창조 박사는 한국의 웬만한 재벌 총수는 다 만나 봤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힌 적이 있다. 창업총수들은 더할나위 없고 2~3세 경영인들도 사옥을 짓거나 공장터를 고를 때 반드시 풍수학자들의 자문을 얻어 실행에 옮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이 충남 당진 한보철강(현 현대제철) 터를 고를 때 풍수학자와 함께 헬기를 타고 전국을 10번 이상 다닌 끝에 정했다고 필자에게 설명한 적이 있다. 실제 한보철강 자리는 누가 봐도 명당자리임을 알 수 있다. 당시만 해도 서해안 고속도로는 상상도 못할 때였다. 태안반도를 돌아 경운기나 다닐 정도의 소로 밖에 없을 정도로 외진 바닷가였다. 그러나 정 회장은 땅의 기운을 보고 이곳을 선택 한보철강을 만들어 냈으나 결국 기업은 남의 손에 넘어가고 말았다.
-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왼쪽)과 최종현 SK그룹 회장.
풍수학자들은 명당은 마음속에 있다고 주장한다. 땅으로 부와 권력을 욕심부려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천하의 명당에 자리를 잡았다고 해도 그것을 다룰 능력이 안된다면 그것은 허상이나 다름없다. 명당이라고 소문난 곳에 살았던 재벌총수들도 패망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계속>
재벌과 풍수(下)
풍수의 교과서인 ‘금남경’에는 청룡(동쪽)엔 뱀이 꿈틀거리며 나아가는 모양의 원만한 산이, 백호(서쪽)엔 호랑이가 사납지 않게 비굴하리만큼 납작하게 엎드린 정도의 산이 있는 것이 명당 형세라고 했다. 또 땅의 기(氣)에 따라 사람의 성향이 달라지며 기가 센 땅에선 권력지향적인 사람이 태어나고 온화한 땅에선 문화쪽 인재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가설일 뿐이다.
대부분의 재벌 총수들은 풍수에 아주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LG그룹 구본무 회장이 파주 LCD공장을 지을 때 자주 사고가 일어나자 풍수학자를 대동, 길흉을 봤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여의도 쌍둥이 빌딩을 지을 때도 여의도의 센 기운을 막기 위해 63빌딩을 배경으로 삼았다는 얘기도 있다.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은 건물을 살 때나 지을 때 공장 부지를 고를 때 반드시 풍수학자를 대동했었다. 서울 태평로 옛 삼성그룹 본사 일대를 최고의 길지로 보고 근처의 부지만 나오면 매입했다는 일화도 있고, 이태원 자택(현 승지원) 역시 최고의 명당자리를 골랐다는 얘기도 전해 온다.
대부분의 재벌 총수들은 풍수에 아주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LG그룹 구본무 회장이 파주 LCD공장을 지을 때 자주 사고가 일어나자 풍수학자를 대동, 길흉을 봤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여의도 쌍둥이 빌딩을 지을 때도 여의도의 센 기운을 막기 위해 63빌딩을 배경으로 삼았다는 얘기도 있다.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은 건물을 살 때나 지을 때 공장 부지를 고를 때 반드시 풍수학자를 대동했었다. 서울 태평로 옛 삼성그룹 본사 일대를 최고의 길지로 보고 근처의 부지만 나오면 매입했다는 일화도 있고, 이태원 자택(현 승지원) 역시 최고의 명당자리를 골랐다는 얘기도 전해 온다.
- 구본무 LG그룹회장과 여의도 LG트윈타워./구글지도 캡처
- 이건희 삼성회장과 삼성전자 서초사옥./구글지도 캡처
LS그룹에서 용산 국제센터 빌딩을 매입할 때도 그룹 차원에서 심도있는 토의를 한 것으로 소문나 있다. 원래 이 빌딩은 국제그룹이 지었지만 공중분해 됐고,그 뒤 한일그룹으로 넘어갔으나 IMF때 부도를 맞았기 때문이다. 풍수학자들의 괜찮다는 의견을 듣고 매입했다고 LS그룹의 한 인사는 밝혔다.
지난해 신축한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 빌딩 입주가 한동안 지연된 적이 있다. 회장실 위치가 안 좋다는 한 풍수학자의 지적에 따라 위치를 바꾸는 공사를 다시 했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역대 전경련 회장들이 구설수에 시달린 전력이 있어 허창수 회장이 각별히 신경을 썼다는 후문이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가 살았던 서울 청운동 저택은 소가 누워서 음식을 먹는 ‘와우형(臥牛形)명당’으로 소문나 있다. 이 터는 나라를 경영할 큰 인물을 낳고 자손대대로 재산을 누릴 큰 부자가 태어날 땅이라고 풍수학자들은 해석했다. 반면 일부 풍수학자들은 정 회장이 영면해 있는 경기도 하남시 창우동 선영은 명당의 혈을 정확히 짚지 못해 명당 반열에 못든다고 주장한다. 검단산은 예부터 명당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회장의 묏자리는 명당의 혈을 타지 못해 득보다 실이 많다는 것이다.
서울 강변역에 위치한 테크노마트를 보유했던 프라임그룹의 백종현 회장이 살았던 서울 방배동 빌라는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곳으로 또 다른 유명세를 탔다. 원래 이 빌라는 삼미그룹 김현철 회장이 분양받아 살다가 그룹이 망하면서 경매시장에 나온 것을 백 회장이 구입해 살았으나 프라임그룹이 망하면서 다시 경매에 처해진 ‘비운의 빌라’로 소문나 있다.
- 백종현 전프라임그룹 회장.
잘 알려진대로 현재 재벌 총수들이 많이 사는 곳은 서울 한남동과 성북동이다. 한남동은 남산과 한강을 배산임수로 두고 있고, 성북동은 북악산과 청계천을 배산임수로 둬 권력(산)과 재물(물)을 동시에 품을 수 있는 곳이라고 평하고 있다. 재벌 총수들이 이 곳에 많이 사는 이유도 이런 명당자리이기 때문이라고 풍수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그렇다고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다 흥하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 그룹을 이끌던 다수의 총수들이 성북동에 살았으나 그룹이 패망한 총수들도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한때 재계 랭킹 7위에 올랐던 국제그룹 양정모 창업주의 저택이다. 성북동에서도 최고의 가치를 자랑하던 양 회장의 저택은 장남인 양희원씨가 물려받았으나 올 초 제2금융권 부채를 갚지못해 경매에 부쳐졌다. 두산그룹 박용오 전 회장의 성북동 자택도 경매시장에서 처분 됐고,노태우 대통령의 사돈으로 유명했던 신동방그룹의 신명수 회장 저택도 성북동에 있지만 그룹도 망했고 그 집은 경매시장에 나왔었다,
- 양정모 국제그룹 회장.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