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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화이트보스 2016. 4. 26. 13:29



절대적 절망은 없다”

입력 : 2016.04.25 14:12

[월간조선-부자들의 생각(1부 산업화의 주역):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上)]
 

편집자 注

박태준(1927~2011) 포스코 명예회장의 삶은 ‘조국에 대한 봉사’로 요약할 수 있다. 군대의 힘이 필요한 때는 군인으로, 경제발전이 지상과제였을 때는 경제인으로, 국정운영에 동참할 때는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제철보국(製鐵報國)을 통한 국가경제발전을 논할 때 그의 공로를 빼놓을 수 없다.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의 지시로 포항제철을 만든 박태준은 포스코의 신화(神話)를 썼다.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비즈니스스쿨은 포스코의 성공요인으로 “박정희의 강력한 의지와 박태준의 탁월한 리더십”을 꼽았다. 생전(生前) 그는 주요 언론에 자신의 생각을 글로 틈틈이 밝혔고, 인생 황혼기에는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진취적 기상(氣像)을 강조했다. 아래 글은 박 회장이 작고하기 1년 전인 2010년 1월 19일 베트남 하노이국립대학교에서 베트남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특별강연과 주요 언론사 기고·연설문의 일부분이다. 《대한민국의 위대한 만남 박정희와 박태준》(이대환 著), 《각하! 이제 마쳤습니다-청암 박태준 글 모음》(조용경 엮음)에서 부분발췌했다.

지난 2004년 12월, 포항공대 체육관에서 열린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출판기념회. /사진=이재우 기자

역사에는 시대적 고난 있어
한국과 베트남의 차이가 그것

베트남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젊은 엘리트 여러분, 오늘 하노이국립대학에서 여러분과 만나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젊음의 열기 속에서 10년은 젊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인간의 큰 미덕은 인생과 공동체의 행복에 대해 사색하고 고뇌하며, 실천의 길을 모색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 자리에 선 이유는, 한국의 경제개발 경험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파란만장한 격동을 헤치고 나온 경험을 바탕으로, 젊은 엘리트 여러분과 더불어 다시 한 번 인생과 역사를 성찰해 보는 것입니다.

역사에는 특정한 세대가 감당하는 시대적 고난이 있습니다. 그것은 개인의 인생에도 심대한 영향을 끼치고, 그 세대의 운명이 되기도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국과 베트남의 20세기를 비교하면서 특정한 세대의 운명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나는 1927년에 태어났습니다. 한국에서 나의 세대는 일본 식민지에서 유년시절과 학창시절을 보내고, 청년시절에 해방을 맞았습니다. 그러나 한반도는 불행했습니다. 세계적 냉전체제의 희생양으로, 남북분단이 확정된 것이었습니다. 분단은 곧 엄청난 전쟁으로 이어지고, 그 전쟁이 다시 휴전선이라는, 지구상에서 가장 살벌한 대결의 철책을 만들었습니다. 그 때 한반도에 남은 것은 민족 간의 적개심과 국토의 폐허, 국가의 빈곤과 인민의 굶주림, 그리고 부패의 창궐이었습니다. 한국전쟁에 청년장교로 참전하여 ‘우연히 운이 좋아서’ 살아남은 나는 인생과 조국의 미래를 숙고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폐허의 국토를 어떻게 재건할 것인가? 우리 민족을 천형(天刑)처럼 억눌러온 절대빈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미국과 서구가 자랑하는 근대화를 어떻게 이룩할 것인가? 이 시대를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질문들 중에 맨 먼저 좌우명을 결정했습니다. 그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짧은 인생을 영원 조국에!’
‘절대적 절망은 없다.’

돌이켜보면, 그 좌우명은 필생의 나침반이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것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 걸어온 내 삶의 여정(旅程)에 대해 어떤 후회도 없습니다.

지난 1970년 4월 거행된 포철1기 공사 착공식. 김학렬 당시 부총리(오른쪽부터), 박정희 대통령, 박태준 사장. /월간조선

한국이 세계로 뻗어나가기 위한
디딤돌을 만들어야 해

조국 근대화는 성공했지만
남북통일은 후세로 넘겨

우리 세대는 순교자처럼 희생하는 세대

한국 정부가 경제개발의 깃발을 올린 1961년,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 70달러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당시 경제개발계획에 참여했던 나는 1968년부터 종합제철소 건설과 경영의 책임을 맡았습니다. 자본과 자원이 없고, 경험과 기술이 없는 전무(全無)의 상태에서 포스코라는 종합제철소를 시작하여, 5년쯤 지나서 어느 정도 기반을 잡은 다음, 나는 동지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세대는 순교자처럼 희생하는 세대다. 우리 세대의 순교자적인 희생 위에서 다음 세대가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다. 포스코는 다음 세대의 행복과 21세기 조국의 번영을 위해 존재하는 회사다.”

나의 동지들과 나의 세대가 설정한 시대적 목표는 ‘조국 근대화’였습니다. 그것은 나의 세대가 짊어진 폐허와 빈곤, 부패와 혼란을 극복하기 위한 시대적 좌표였고, 마침내 우리는 근대화에 성공했습니다. 시련의 시대를 영광의 시대로 창조한 것이었다고 자부합니다.

그러나 나의 세대는 후세에 엄청난 과제도 넘겨야 했습니다. 바로 남북분단입니다. 화해와 평화의 통일, 이 짐을 다음 세대에 넘겨주게 되어 참으로 가슴 아픕니다. 베트남의 보배인 젊은 여러분. 지난 100여 년 동안, 베트남에도 각 세대가 감당한 시대적 고난이 있었습니다. 편의상 여러분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세대, 아버지와 어머니 세대, 그리고 여러분 세대, 이렇게 삼대로 나누어 봅시다.

박태준 명예회장이 포항제철 직원들에게 교육을 하고 있는 모습. /포항제철 제공

북한과 베트남의 차이는
개방의 有無

“자유와 독립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이것은 호지명 선생의 말씀이십니다. 여러분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세대는 그 말씀을 실현한 세대입니다. 헤아릴 수 없는 희생과 고통을 넘어서야 했지만, 당신들의 운명이었던 자유와 독립을 쟁취했습니다. 그러나 1954년 7월에 베트남은 북위 17도선에서 분단되었습니다. 그때 어린아이였을 여러분의 아버지와 어머니들은, 통일로 가는 기나긴 전쟁이 자기 세대의 운명이 될 줄은 몰랐을 것입니다. 그분들은 자기 세대의 참혹한 운명을 감당했으며, 드디어 1975년 4월에 종전과 통일을 선언할 수 있었습니다.

그분들 세대는 휴식을 누릴 여가도 없었습니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는 조국 재건의 새로운 책무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등소평의 중국이 개방의 길을 선도하고, 베트남은 1986년에 개방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것은 일대 혁신이었습니다. 모든 혁신에는 다소간 혼란과 시행착오가 동반되기 마련이지만, 나는 베트남 지도부가 현명한 선택을 했다고 판단합니다. 이 자리에서 언급하자니 슬픈 일입니다만, 개방을 거부한 북한의 오늘이 그것을 방증해 줍니다. <下편에 계속>

발전하는 국가에 부패한 지도층과 엘리트가 서 있을 자리는 없어

입력 : 2016.04.25 14:13

[월간조선-부자들의 생각(1부 산업화의 주역):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下)]
 

<上편에서 계속>

베트남은 통일국가, 한국은 분단국가

베트남은 한국보다 종전이 늦어진 그만큼 경제 재건의 출발이 늦어졌습니다. 그러나 베트남은 통일국가고, 한국은 분단국가입니다. 이 자리의 ‘여러분 세대’는 선배 세대로부터 ‘자유와 독립의 통일국가’라는 위대한 기반을 물려받았습니다. 그 기반 위에서 ‘여러분 세대’의 시대적 목표가 설정되어야 합니다. 현재 한국의 젊은 세대에게 ‘평화통일과 일류국가 완성’이라는 시대적 목표가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주어져 있다면, 베트남의 젊은 세대에게는 ‘경제부흥과 일류국가 완성’이라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주어져 있습니다. 통일 문제를 고려할 경우에는, 베트남의 젊은 세대보다 한국의 젊은 세대가 더 무거운 시대적 과제를 짊어졌다고 하겠습니다.

경제부흥과 일류국가 완성, 물론 이것은 분리할 수 없습니다. 인민의 행복, 찬란한 문화, 평화 애호라는 일류국가의 기본조건은 물적 토대 위에서 성립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부흥을 별개로 내세운 것은 물적 토대 구축을 중시해야 한다는 강조인 동시에, 베트남의 젊은 세대에게는 경제부흥의 길이 활짝 열려 있다는 강조입니다. 여러분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세대는 특히 세계와의 소통에서 곤혹스러웠습니다. 1910년 6월에 스무 살의 청년이었던 호지명 선생이 프랑스 기선의 주방보조로 취직하여 사이공에서 프랑스로 갈 때, 얼마나 걸렸습니까? 정확한 날짜는 없어도 최소한 몇 주는 걸렸다고 합니다. 그 후 그분은 비슷한 방식으로 약 2년간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혁명적 인생의 초석을 놓았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포항제철 시찰. /조선일보 DB

세대마다 다른 시대적목표 있어
한국은 평화통일, 베트남은 경제성장

이 자리의 여러분이 세계 견문에 나선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바다의 시간을 하늘과 육지의 시간으로 바꾼다면 2년이 아니라 2개월에 가능할 것입니다. 인터넷을 이용하면 또 어떻게 되겠습니까? 필요한 정보와 상식적인 지식만 수집하기로 한다면, 겨우 2시간에 해결할 것입니다.교통수단과 통신기술의 발전이 여러분 세대를 결정적으로 지원하는 가운데, 여러분 세대는 귀중한 경험들을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개발도상국가가 어떤 정책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경험론적이며 총체적인 답변은 한국에도 있으며, 여러분은 얼마든지 공부하고 연구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인재육성에 대한 정책, 그리고 개개인이 지닌 삶의 자세입니다. 인재육성과 국가의 명운이 직결된 사례를 일본에서 찾아봅시다.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이 20세기 전반기에 아시아에서 저질렀던 역사적 죄업을 우리는 명백히 기억하지만, 그때 일본의 부국강병은 인재육성과 밀접한 관계였습니다.

명치유신 무렵부터 일본은 젊은이들을 서구와 미국으로 유학 보내고 있었던 반면, 한국은 국가의 문을 걸어 잠그는 쇄국정책을 고집하면서 근대적인 인재육성에 무관심했고, 이는 한국이 자주적 근대화에 좌절한 요인의 하나였습니다. 여러분의 호지명 선생은 험난한 전쟁 중에도 전후 베트남의 재건에 대비하여 인재들을 해외로 보냈습니다.

미안해하는 젊은이들에게, “여러분에게는 공부가 바로 전쟁”이라는 가슴 뭉클한 격려의 말씀도 하셨습니다. 통일 베트남에서는 그때 유학을 하고 돌아온 인재들이 각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가장 혹독한 시기에도 인재육성을 잊지 않았던 베트남은 이제 경제부흥과 일류국가 건설의 새로운 국가적 목표에 따라 인재육성에 더 큰 힘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조선일보 DB

국가 재건의 핵심은 부패척결
자기 정신과의 투쟁에서 승리해야
부패하지 않아

엘리트 계층이 부패하지 않아야 국가발전 가능

나는 개개인의 삶에 대한 자세를 빼놓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에게 반드시 들려주고 싶은 내 경험의 하나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한 나라가 일어서는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전제조건은 지도층과 엘리트 계층이 부패하지 않고 분명한 비전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물질적 유혹에 약한 것이 인간입니다. 인간은 강철처럼 강인하기도 하지만, 땡볕에 내놓은 생선처럼 부패하기도 쉽습니다. 그래서 부패는 인간정신의 문제입니다. 권력을 잡은 지도층이나 엘리트 계층에 속한 인간이 부패하지 않는 것은 자기 정신과의 부단한 투쟁의 결실입니다. 역사 속의 모든 위인들은 끊임없이 자기 정신과 투쟁했습니다. 여러분이 훌륭한지도자로 성장할 꿈을 간직하고 있다면, 지금부터 자기 정신과의 투쟁을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젊은 날의 신념이 필생을 이끌어가는 나침반이 되기 때문입니다.

나는 지도층과 엘리트 계층이 당대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그러나 자기 인생의 미래를 설계해 보지 않은 사람은 지도자가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우연한 기회에 지도자가 된다고 해도 당대의 비전을 제시할 수 없습니다. 나는 한국 젊은이들과 만나서 “10년 뒤의 자기 모습을 그려보라”는 충고를 했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똑같은 충고를 해주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10년 뒤의 자기 모습을 그려놓고 있습니까? 만약 그려놓았다면, 치밀하고 열정적으로 그 길을 가야 합니다. 만약 그려놓지 않았다면, 몇 날 며칠을 지새우더라도 10년 뒤의 자기 모습부터 그려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 개인의 비전이 모여서 베트남의 새 지평을 열게 된다는 사실도 명심하기 바랍니다.

친애하는 하노이국립대 학생 여러분, 베트남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젊은 엘리트 여러분. 이제 약속된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선물한 베트남어판 '철의 사나이-박태준'이라는 책에 나오는 한 문장을 들려주고, 나의 이야기를 마칠까 합니다. 책에서는 본문의 마지막 문장인데 2009년 9월, 한 인터뷰에서 오늘의 베트남을 위해 한마디 해달라는 권유를 받고, 나는 그 책에 나온 대로 답변했습니다. 그것을 읽겠습니다.

2008년 ‘포스코 창립 4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박태준 명예회장이 기념식이 끝난 뒤 창립멤버들과 포스 코 역사관을 둘러보고 있다. 포항제철소 착공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김학렬 부총리, 박 회장의 모습을 실 물크기로 재현해 놓은 밀랍인형을 보며 “나하고 대통령은 하나도 안 닮았어”라고 해 웃음을 자아냈다. 사 진=최재훈 기자

反부패와 자신감이
혁신의 원동력

“개발도상국이 경제발전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힘은, 부패하지 않는 것과 인민의 자신감입니다. 베트남에는 20세기의 세계 지도자중에 가장 청렴했던 호지명 선생이 국부로 계시고, 프랑스와 미국을 물리친 자부심과 자신감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 위대한 정신적 유산을, 국가의 부강과 인민의 행복을 성취하기 위한 저력으로 활용하는 일입니다. 모든 역사에는 기복이 있지만, 지도층과 인민이 위대한 정신적 유산을 공유하고 그 바탕 위에서 합심한다면, 반드시 일류국가를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오늘 여러분과의 만남을 오래 기억할 것입니다. 여러분 세대의 시대적 과제를 운명처럼 짊어지고 당당히 나아가는 여러분의 앞날에 행운이 함께하기를 빌며, 베트남의 무궁한 발전과 베트남 인민의 행복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생애 마지막 연설. /포스테 박태준미래전략연구소 유튜브 채널


박태준의 철판과 정주영의 배가 만나는 순간
박태준이 '올해의 인물'에 선정된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