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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이 이기면 국가는 진다

화이트보스 2016. 7. 1. 15:28



포퓰리즘이 이기면 국가는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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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숙 국제부장

영국이 유럽연합(EU) 탈퇴 국민투표 이후 전세계의 걱정거리로 등장했다. 마그나카르타의 나라, 애덤 스미스와 존 스튜어트 밀의 나라로, 자본주의와 대의제 민주주의 ‘종주국’이나 다름없는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 및 그 과정은 서구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를 부추길 정도로 충격적이다.

1989년 공산체제의 붕괴 이후 탈냉전시대가 개막됐을 때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는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로 결판났다”며 ‘역사의 종언’을 얘기했다. 그러나 사반세기 만에 자유민주주의의 역류 사태가 영국에서 일어났으니 ‘역사의 귀환’이라고도 할 만하다. 중국과 러시아가 브렉시트 논란을 조롱하며 자국의 권위주의 체제가 더 우월하다는 주장을 펴는 지경이 됐다.

영국의 자유민주주의를 후진적 포퓰리즘의 막장 무대로 전락시킨 주범은 표와 권력에 중독된 정치인들이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전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 등은 브렉시트만 되면 영국이 천국행 티켓을 얻게 되는 양 감언이설을 쏟아냈다. 그러나 국민투표가 끝나자마자 “꼭 그렇게 된다는 것은 아니다”며 말을 바꾸고 있다. 그 원죄는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에게 있다. 2015년 총선 때 EU 회의론자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공약으로 내거는 ‘악마와의 거래’를 했다. 존슨 전 시장도 목표는 오로지 차기 총리였고, 브렉시트 찬성 캠페인은 오직 캐머런과 각을 세워 표를 얻기 위한 전술이었다. 정치적으로 성장하려면 최고 권력자와 싸우라는 속설에 충실했다. 국가 지도자들이 파워게임 차원에서 국가적 중대사안을 악용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례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세계적으로 많다. 국민투표로 중대사를 결정하는 직접 민주주의 방식, 나아가 ‘1인1표 민주주의’ 자체가 한계에 봉착했다는 위험한 주장까지 확산될 정도다. 우리나라에도 있다. 최근에는 이명박정부 때의 세종시 수정안 충돌이 대표적이다. 2010년 세종시수정안 국회 표결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미 좀 봤다”고 했던 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였다. 당시 이 대통령과 정운찬 총리는 세종시가 국가 비효율을 증폭시킬 것이라고 결론짓고 국회에 수정안을 제출했는데 유력한 대선 후보였던 박근혜 의원이 반대했다.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게 표면적 이유였지만, 당내 친박 결집과 충청표에 더 큰 관심이 있었을 것이다. 최근 영남권 신공항 공약을 ‘김해공항 확장’으로 후퇴한 것만 봐도 ‘공약은 무조건 지켜야 한다’는 박 대통령의 원칙이 이현령비현령임을 알 수 있다. 

세종시 수정안 부결 후 친박계 인사들은 “차기 대선 후보로서 지위가 확고해졌다”며 환호했다. 그리고 캐머런 총리가 불리했던 판세를 뒤집어 총선에서 승리한 것처럼, 박 대통령도 근소한 표차로 당선됐다. 또 존슨 진영의 브렉시트 찬성 캠페인처럼, 국가의 장래에 큰 부담을 남겼다. 세종시 수정안 반대는 외형상으로는 캐머런 총리, 내용상으로는 존슨 전 시장을 닮은 셈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무소속 이해찬 의원이 국회 ‘세종시 분원’설치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새누리당 소속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아예 국회와 청와대를 세종시로 옮기자며 한술 더 뜨고 나섰다. 안보·경제 등 화급한 현안이 산적해 있는데 제20대 국회가 시작되자마자 세종시 문제를 다시 제기한 것이다. 박 대통령 재임 중이라 공무원들이 입을 닫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만나면 수많은 문제점을 얘기한다. 지금이라도 시정해야 한다며 구체적 대안을 내놓는 사람도 많다.  

영국이나 한국이나 이렇게 ‘자유민주주의’가 비난을 받게 된 일차적 책임은 공익과 국익에 대한 최소한의 경외심도 없이 대중을 선동하며 표를 얻고 권력에 탐닉해온 정치인들에게 있다. 그래도 영국에서는 선동 정치에 속았다는 ‘리그렉시트’ 움직임이 있다. 당장 번복하긴 어려워 보이지만 그래도 영국은 영국이다. 한국 정치인들은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이 내려진 행정수도 이전을 행정복합도시라는 꼼수로 건설한 것도 모자라 확대론을 꺼내고 있다. 물론 이런 정치인을 선출한 것이 국민이니 누구 탓을 하기도 어렵다. 선동정치와 포퓰리즘이 이기면 국가는 진다. 내년이면 ‘민주화 30년’이다. 그런데 나쁜 정치 때문에 자칫하면 힘겹게 쟁취한 민주주의를 자축하기보다 걱정하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