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는 법이 없어서 아니라 제대로 집행 안 됐기 때문인데
인간 본성 거스른 김영란법, 활기 잃은 사회에서 ‘저녁 있는 삶’이면 뭐하나

여기서 부의 낭비는 위세(威勢)와 연관이 있다. 미친 듯한 증여에 의해 추장과 가신 사이, 또는 부족과 부족 사이에 위계질서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아낌없이 남에게 자기 물건을 주는 사람이 재산의 손해만큼 명성이란 추상적인 부를 획득한다. 그에 반해, 받기만 하고 답례하지 않는 사람은 상대방에게 종속되고, 더 낮은 지위로 떨어져 그의 하인이 된다. 자원의 소모가 오히려 그것을 소모한 사람에게 특권을 안겨준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프랑스의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는 한없이 무질서하고 자유로운 이 축제 속에 실은 매우 엄격한 규칙이 숨겨져 있음을 발견했다(‘증여론’·1925년). 그것은 ‘주기’ ‘받기’ ‘답례’라는 3각형 구조이다. 이 세 단계는 그냥 자유롭게 주고받는 행위가 아니라 엄격한 의무 조항이라는 것이다. 즉 선물은 반드시 주어야 하고, 주어진 선물은 반드시 받아야 하며, 받았으면 반드시 답례를 해야 한다. 이때 선물은 물건만 뜻하는 것이 아니다. 환대, 서비스, 배려 같은 추상적인 개념도 포함된다.
여하튼 선물의 급부(給付)와 반대급부는 겉보기에 자발적인 형식인 듯 보이지만 실은 엄격하게 의무적이어서, 이를 소홀히 하면 불행한 결과가 생긴다. 어느 추장이 손자의 돌잔치에 이웃 사람 누군가를 깜박 잊고 초대하지 않았는데, 그 사람이 앙심을 품고 추장의 손자를 죽였다는 전설이 한 원시 부족 사이에 전해 내려온다. 주는 것을 거부하는 것, 초대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전쟁을 선언하는 것과 같고, 받는 것을 거부하거나 답례하지 않는 것 역시 비슷하게 위험한 일이 된다.
모스는 결국 선물이 원시 부족만이 아니라 문명화한 현대사회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회의 공통적 현상이며, 사회가 작동하는 원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사회적 인간이 사회 안에서 상호 관계를 맺기 시작할 때 행하는 제일 첫 번째 행위이다. 모든 사회 고유의 예의범절의 시작이기도 하고, 경제적 행위로서의 신용의 기원이기도 하다.
물건을 주고받는 행위여서 선물은 얼핏 물자의 순환이나 교역 같은 경제적 현상으로 보이지만, 모스는 정치적 의미를 찾는다. 물건을 주고받으려면 우리는 우선 창(槍)을 내려놓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개인 간 혹은 집단 간에 물건을 주고받다 보면 비록 적대적 사이라 하더라도 거기엔 무력에 의존할 필요가 없는 평화의 관계가 형성된다. 하기는 무역을 하는 두 국가 간에는 전쟁이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의 원초적 성질을 거스르고 있다는 점이다. 자연을 거스르면 활기가 없어지고, 활기가 사라지면 사회의 발전도 정체될 것이다. 어둡게 가라앉은 사회에서 저녁이 있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묻고 싶다.
박정자 객원논설위원 상명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