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이란 무엇인가?
조류독감 AI에 이어 구제역까지 발생하여 농민의 시름이 한층 커졌다. 2000년부터 8차례나 발생하는 연례행사처럼 되어버려 관계부처의 대응미숙이 빈축을 사고 있다.
구제역(口蹄疫)이란 동물의 입과 발에 증상이 나타나는 병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소, 돼지, 양, 사슴 등 발굽이 갈라진 동물(우제류)에 발생하는 1급 전염병으로, 병원균은 RNA 바이러스이며 7개의 혈청형(O, A, C형 등)이 알려져 있다. 동물의 입, 코, 유두, 발굽 등에 물집이 생기며 체온상승, 식욕부진, 산유량감소 등의 증상을 동반한다. 공기, 물, 사료 등으로 전파되며 동물 질병 중에서 전염력이 가장 강해 한번 발생하면 경제적인 손실이 막대하기 때문에 국제수역사무국에서 A급 질병으로 분류하며 대부분의 국가가 1급 전염병으로 지정하고 있다.
이 바이러스는 숙주역(대상동물))이 넓고 감염력도 강해 철저한 관리가 요구된다. 폐사율이 높지는 않지만 어린 가축에게는 치명적이다. 돼지의 경우 성돈일 때는 10% 미만의 폐사율을 보이나 새끼일 때는 60%에 가까운 치사율을 나타낸다. 소에게는 7-8%의 치사율을 보이지만 그렇게 심각한 경우는 많지 않다.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증상이 나타날 때까지의 시간은 동물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6-7일 정도라 알려져 있다. 양이나 염소 등은 증상이 경미하여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아 이것이 오히려 전염성을 키우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감염동물은 증상을 나타내기 전에도 체외로 많은 바이러스를 배출하기 때문에 방역 전에 전파가 쉽게 일어날 수 있어 대책을 더욱 어렵게 한다. 소, 양등은 호흡기로, 돼지는 소화기를 통해서 감염이 잘 일어난다. 사람에게는 발병사례가 없으며 전염되지 않는 것으로 되어있다. 감염된 고기를 먹어도 인체에는 해가 없으며 또한 가열(50도 정도)에 의해 쉽게 사멸되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바이러스성 질병의 경우는 어떤 종류나 마찬가지지만 치료방법이 없다는 게 문제다. 발병 10여일 지나 스스로 체내에서 항체가 생기는 자연치유를 기다릴 수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치유됐을 경우에도 번식력 감소, 성장지연 등의 후유증으로 경제성이 떨어져 폐사시키는 경우가 많다.
구제역의 감염을 막는 것은 쉽지 않다. 사료, 물, 공기, 접촉으로 쉽게 옮겨 다니기 때문에 유일한 예방법은 철저한 감염원 차단과 백신접종뿐이다. 백신의 경우에도 바이러스의 혈청형 사이에 여러 변종이 있어 해당백신의 생산과 선택에는 여러 어려움이 따른다. 한 혈청형에 대한 백신은 다른 혈청형에는 면역작용을 나타내지 않아 접종해도 효과가 없다. 심지어 같은 혈청형에 속해도 유전자서열에 30%까지 차이가 있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구제역 백신은 한 혈청형 마다 개별적으로 적용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국가의 정책상 예방접종을 꺼리는 일면도 있다. 일단 예방접종을 실시하게 되면 구제역 통제 불능국가로 낙인찍히는 동시에 청정지역의 지위를 상실하게 되어 수출길이 막히고, 덩달아 국내소비가 급감되기 때문에 쉽게 접근할 수도 없다는 딜레마에 빠진다. 또 백신가격이 비싸 어느 정도의 매몰처리가 오히려 경비를 더 절감하는 효과를 낼 수도 있어 접종을 꺼려하는 경향도 있다. 그래서 발생초기에는 전파를 막는데 주력하며 수십만 마리를 한꺼번에 살 처분하는 경제적 손실까지 감수하게 된다. 그러나 2011년 이후부터는 우리도 백신을 접종하는 정책으로 바뀌어 사전에 대비하고 있으나 그 효과는 그렇게 크지 않은 것으로 이번에 드러났다.
발생지역 인근의 소나 돼지가 발병이 되지 않았는데도 사전 차단을 빌미로 산 채로 매몰하는 방법이 과연 옳은가 하는 윤리적 문제도 있다. 이런 야만적인 잔인성에 소유주나 관계 종사자의 정신적 충격이 크다. 심할 경우 그 충격과 트라우마로 정신적 치료를 요하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한국에 구제역이 처음 발생한 것은 1934년 이였으나 그동안 잠잠하다가 2000년 경기도 파주지방에 발생하여 큰 재산상의 피해를 입혔으며 2002년에는 102농가에서 16만두가 살 처분되는 막대한 타격을 가했다. 2010년에는 340만여 마리의 살처분 보상비와 매몰 등의 관리비용에 2조 이상의 경비가 소요됐다.
한국의 우제류 수출실적은 1년에 20억 정도에 불과해 수출에 미치는 경제적인 손실이 미미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당시 백신사용의 제한 등 정부의 초기대응이 미숙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우를 범했다는 비난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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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충북 보은에서 발생한 구제역은 A형과 O형 두 종류라 했다. 아직 발생초기라 그 피해는 가늠하기 힘들다. 백신접종으로 소의 90%이상이 면역이 되어있어 걱정이 없다던 보건당국의 발표와는 달리 지역에 따라서는 항체형성이 한 자리 숫자에 불과하다는 발표도 있었다. 심지어 항체 형성률이 높았다는 곳에서도 구제역이 발생해 ‘물 백신’ 논란도 일고 있다. 경기 연천에는 A형 항체 형성률이 90%이라 했음에도 불구하고 A형 구제역이 발생해 백신에 대한 믿음이 깨졌다.
정부의 말을 듣고 제대로 접종했는데도 구제역에 걸렸다는 농가의 하소연이 잇따른다. 정부가 배포한 접종 매뉴얼에도 문제가 많은 것으로 드러나 기존의 접종결과 자체를 믿을 수 없다는 말까지 나온다. 접종매뉴얼도 통일되지 않고 뒤죽박죽인 것도 문제다. 거기다 백신 접종에 따른 착유량의 감소, 유산 등의 부작용을 우려해 농민들이 접종을 꺼려하는 부분도 한몫 했다. 이러한 혼란에 대해서 당국은 문제가 뭐였는지 조차 제대로 파악을 못하는 듯해 농민의 불안은 더욱 가중되는 형국이다. 6년 전의 대형 악몽이 재현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참고로 2000년 이후 8차례 발생한 구제역 관련비용이 3조 3000억 원에 달하고, 최근 3년간 백신공급에 2000억 원이 소요됐다. 축산 선진국 덴마크는 1944년 이후 한건의 구제역도 발생하지 않았다. 이에 비하면 우리의 대처가 얼마나 후진적이고 허술한지가 짐작이 간다. 이번에는 과거의 돼지에 반해 소에 타격이 집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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