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2.01 03:03 | 수정 : 2018.02.01 11:37
[일본 건물의 화재 대피 시설]
비상용 소방대 진입구 표시 "이곳에 모이면 반드시 구출"
깰 수 있게 강화유리 금지
위층과 아래층 이어주는 피난 해치도 설치돼 있어
제천 스포츠센터나 밀양 세종병원 화재에서 대부분의 희생자는 화염 때문이 아니라 탈출구를 찾지 못한 채 연기에 질식해 각각 29명, 39명이 숨졌다. 소방대원도 불이 난 건물 어디로 진입해야 효과적인 구조를 할지 몰라 '구조 골든타임'을 허비했다. 만약 건물마다 비상구 외에 창문 어딘가에 사회적 약속으로 구조창 표시를 해놓았다면 대피하는 사람도, 소방대원도 신속하게 탈출과 구조 활동을 벌였을 것이다. 일본은 이런 방식을 건물소방법에 규정해 놓고 반드시 지키도록 하고 있다. 연립주택이나 아파트에는 화재 등 비상시에 위층에서 아래층으로 대피할 수 있는 '피난 해치'를 설치해 놓았다.
◇"비상시 이곳으로 대피하라"
1월 31일 오전 도쿄 시내. 서울로 치면 종로구쯤에 해당하는 미나토구의 한 10층짜리 빌딩에는 층마다 유리창 가운데 하나에 빨간색 역삼각형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건물 밖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삼각형 한 변의 길이가 20cm인 아크릴판 삼각형이다. 이 표시는 화재나 지진 등 비상 상황에서 소방대원들이 구조를 위해 건물 안으로 진입하는 '소방대 진입구'를 가리킨다. 건물 바깥에서 보면 빨간 삼각형이고, 건물 안쪽에서 보면 '소방대 진입구'라는 글자가 쓰여 있어 어떤 용도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일본 건축소방법은 높이가 31m 이하인 건물의 3층 이상부터는 이 표시를 유리창에 부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건물 관계자는 "화재가 나거나 지진이 발생해 구조가 필요한 상황이라면 이곳에 와서 기다리거나 유리를 깨고 완강기를 사용해 탈출할 수 있다"고 했다. 주변에 늘어선 호텔, 아파트, 상가 빌딩의 유리창에도 같은 스티커가 줄줄이 붙어 있었다.
소방대 진입구 표시는 엄격한 설치 기준이 있다. 폭 75cm 이상, 높이 120cm 이상 크기 창문에 바닥에서 80cm 이내 위치에 부착해야 한다. 긴박한 상황에서 쉽게 눈에 띄어야 하고,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크기의 창문에 붙여야 한다는 의미다. 이 표시가 붙은 창문은 철망유리(격자 모양으로 철사가 들어 있는 유리)나 강화유리를 사용할 수 없다. 일본은 지진이 잦기 때문에 강화유리를 쓰는 경우가 많지만, 이 창문은 비상시 소방대원들이 신속히 부수고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금지한 것이다. 이 표시가 있는 창문 밑에는 비상구처럼 탈출에 방해되는 책장이나 책상 등 가구를 놓아서는 안 된다. 물건을 쌓아 두는 것도 금지돼 있다.
◇'피난 해치'로 위아래층 연결

피난 해치 뚜껑을 열자 접혀 있던 길이 2.5m짜리 철제 '피난 사다리'가 아랫집인 303호 베란다 쪽으로 내려갔다. 사다리를 실제로 타보니 조금 흔들리긴 했지만 7~8초 만에 아래층으로 내려갈 수 있었다. 건물 관리자는 "소방법에 따라 아파트와 맨션은 2~3가구마다 한 곳씩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시설"이라며 "소방 당국이 1년에 두 번씩 해치에 물건을 두었는지 등을 점검한다"고 했다. 주민 나미코씨는 "베란다는 공용 공간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빨래만 널지 짐을 두거나 하지 않는다. 여차하면 도피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피난 해치 옆으로는 '경량 칸막이(게야부루 도비라·발로 차서 부수는 문)'도 설치돼 있다. 옆집과 베란다를 구분하는 얇은 문이다. 여차하면 이 문을 부수고 옆집 베란다로 대피할 수 있도록 '비상 시 발로 차 부수고 도망가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이 문을 만든 일본 에스데공업 측은 "20 초 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