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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의 ‘땅 위의 정치’論

화이트보스 2018. 9. 2. 11:29



이해찬의 ‘땅 위의 정치’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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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남석 정치부 차장

“정치인 이해찬은 서울시 부시장을 맡기 전과 후로 나뉜다. 이전엔 비가 오면 ‘오나 보다’ 그러고 말았는데 이후엔 중랑천이 넘치지 않는지, 망원동이 침수되지 않는지를 먼저 걱정하게 됐다. 이전엔 구름 위에서 거대 담론을 얘기했다면, 이후엔 땅에 발을 딛고 정치를 하게 됐다고 할 수 있다.” 2001년 무렵으로 기억된다. 김대중(DJ) 정부를 떠받치던 여당 새천년민주당의 정책위의장을 맡고 있던 이해찬 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당시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정치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이 대표는 1995년 7월 민선 1기 조순 서울시장이 취임하자 정무부시장을 맡아 약 5개월간 활동했다. 그리 길지 않았지만, 날것 그대로의 민생 문제를 체험한 이 기간은 재야 운동 시절부터 지략가로 꼽히다 1988년 국회에 입성하자마자 ‘5공 비리 청문회’를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 등과 함께 스타 정치인으로 발돋움한 ‘차세대 주자’의 정치관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은 듯했다.

실제로 이 대표는 다른 정치인에 비해 뜬구름 잡는 듯한 거대 담론보다 디테일을 중시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 여당 정책위의장 시절 판교 신도시를 개발할 때도 그랬다. 다들 제2의 분당, 제2의 일산 신도시를 하나 더 만들 거라 예상할 때 그는 “베드타운이 아니라 미국 실리콘밸리와 같은 저밀도 자족형 첨단 신도시를 만들어야 한다”고 분명한 콘셉트를 제시했다. 선거 판세와 전략을 설명할 때도 감에 의존해 막연한 주장을 쏟아내기보다는 여론조사 결과 등 구체적인 수치를 동원하기를 즐겼다. 이런 스타일은 이 대표가 국무총리 등을 거치며 ‘버럭’ ‘불통’ ‘골프 파문’ 등 부정적인 이미지를 수없이 쌓았음에도 “일만큼은 잘한다”는 평가를 받는 요인이 됐다.

꽃가마를 탄 듯했던 문재인 정부 1기가 막을 내리고 2기로 넘어가는 지금 시점에 이런 여당 대표가, 더욱이 싸움을 피하지 않는 인파이터 스타일의 그가 ‘강력한 여당’을 표방하며 들어선 것은 관심 있게 지켜볼 일이다. 디테일은 현장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사실 출범 후 1년 3개월 만에 중대 위기를 맞은 문재인 정부에 가장 필요한 것은 ‘땅에 발을 딛는 일’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이는 주요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사람들이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현장을 외면한 채 거대 담론과 진영 논리에 매여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예외를 거의 인정하지 않는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 대책 없는 탈원전 선언 등 최근 논란이 되는 정책들은 공통적으로 현장에서 거부당하고 있다. 보수 진영뿐 아니라 문재인 정부 정책 기조에 동의하는 사람들, 여당 의원들 사이에서도 반발이 나온다. 시장이 적응할 수 있도록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조절했더라면, 근로시간 단축 시 업종별 특성을 반영했더라면, 탈원전 선언 전에 전력수급계획의 실현 가능성을 면밀히 검증했더라면 하는 답답함의 토로다.

이 대표 체제에서 민주당과 정부, 청와대는 공개적으로는 매월, 비공개로는 매주 정책협의회를 열기로 했다. 이 자리는 현장의 목소리를 공유하고 고민하는 장이 돼야 할 것이다. ‘구름 위 국정 운영’으로 현장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greent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