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통영시 광도면의 한 박신장(굴 껍질을 까내는 곳)에서 지역 아낙네들이 인근 해역에서 양식한 굴을 까고 있다. 굴은 지역 경제를 살리는 버팀목이지만, 부산물인 굴 껍데기를 재활용하거나 버릴 방법을 찾지 못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
굴 패각으로 환경오염은 물론 악취로 주민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지난주(3일) 경남 통영을 찾았다. 통영 앞바다는 크고 작은 섬들이 육지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했다. ‘통영 8경’으로 꼽히는 관광명소와 이순신 장군이 ‘학익진’ 대형으로 왜군을 섬멸했던 한산대첩 전적지로도 유명하다. 정부는 이곳 해상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보전하고자 1968년 국내 최초 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했다.
해상의 아름다움과 달리 바다와 인접한 어촌 마을은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어 방문객들의 미간을 찌푸리게 한다. 통영시청 관계자와 함께 굴 생산 현장과 패각 처리 현장을 둘러보았다. 통영시 광도면과 용남면 등 굴 집판장과 패각 처리 공장이 있는 지역은 어김없이 굴 껍데기가 파쇄돼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마구잡이로 내버려둔 굴 조가비에서 침출수가 흐르고 역겨운 냄새가 나는 등 허술하게 관리되는 현장도 곳곳에서 목격됐다.
5일 통영시 환경과에 따르면 한 해 15만t의 굴 패각이 발생해 이 중 9만 4000t만 비료나 채묘용(굴 종패)으로 재활용되고, 4만 6000t은 방치되고 있다. 어민들과 지역 환경단체는 “시에서 파악하고 있는 양보다 훨씬 많은 양이 방치되고 있다”면서 “활용처가 마땅치 않아 길게는 5년 이상 내버려두거나 불법매립, 해양투기 등도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굴 패각은 산업폐기물로 분류돼 비료나 사료 등으로 재활용되는 것을 제외하고, 매립이나 해양투기 등이 엄격히 규제되고 있다.
통영시는 굴 패각 처리를 위해 2009년부터 친환경 처리사업을 통해 어민들에게 운반비와 자원화 처리비용으로 t당 2만원(연 14억 400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재활용 물량이 한정적이다 보니 인근 연안이나 공터 등에는 내다버린 굴 껍데기들이 즐비하다. 밭과 공터 등에는 어김없이 조가비들이 버려져 아예 하얗게 변해버렸다.
어민들은 “법대로 처리하려고 해도 버릴 곳이 없다”면서 “무조건 법의 잣대로 단속만 할 것이 아니라, 대안을 마련해 달라”고 하소연했다. 현재 굴 패각을 합법적으로 처리하는 방법은 비료를 생산하는 공장으로 보내는 것이 유일하다. 하지만 비료로 재활용되는 양은 7만 2000t에 불과하고 물량을 더 늘릴 수도 없는 상황이다. 비료를 만드는 공장도 적재할 공간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굴 조가비를 이용해 만든 비료는 주로 토질 개선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농민들이 꼭 필요해서 사는 일반 비료와는 차원이 다르다. ‘있으면 쓰고 없어도 그만’인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굴 패각으로 만든 비료는 정부에서 농협중앙회를 통해 무상으로 공급하는 ‘토질 개선용’으로 생산·공급되는 것 외에 판매처는 거의 없다. 공장 가동률도 시설 용량의 절반에 그치고, 이마저 농번기 이후에는 중단돼 버린다.
바다살리기국민운동 강호준 본부장은 “석화(굴) 껍데기 재활용에 대해 중앙 정부나 지자체가 나서 방안을 찾아야 한다”면서 “활용처가 없다면 일반쓰레기처럼 일정 구역에 매립을 하도록 허용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굴 양식에서 부산물 처리까지 관리 부처도 제각각이어서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도 쉽지 않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정부가 강력 단속에 나섰지만 불법 매립지가 너무 많아 한시적으로 이를 양성화시킨 적도 있다. 이후부터 매립과 해양투기를 엄격히 규제하고 있지만, 생산량 급증과 함께 패각량도 갈수록 늘어나는 실정이다. 주민들은 여름철을 앞두고 냄새와 들끓는 파리떼로 고통받을 생각을 하면 벌써 머리가 아프다고 하소연했다. 이와 관련, 통영시 관계자는 “관련법 개정과 각종 루트를 통해 재활용 방안을 찾아내 연안투기나 불법매립을 최대한 줄여 나가겠다”고 밝혔다.
글 사진 통영 유진상 기자 jsr@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