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회문화/사회 , 경제

65년전 은혜 못 잊어…" 美 은인 이름으로 1억원 기부조선일보

화이트보스 2020. 5. 26. 11:35

65년전 은혜 못 잊어…" 美 은인 이름으로 1억원 기부

조선일보

 

 

 

 

 

 

 

입력 2020.05.26 03:00

주한미군 페이건 3세 도움 받아 26년 교직 생활한 80대 박모씨

故 페이건 3세

 

80대 박모씨는 지난 22일 경북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찾아 1억원 기부를 약정했다. 약정자 이름은 박씨가 아니라 미국인인 고(故) 프랭크 F 페이건 3세. 박씨는 25일 본지 통화에서 "페이건 3세는 어린 시절 아버지 같은 분으로, 나는 그분의 지원 덕에 학창 시절을 보내고 교사까지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페이건 3세는 외국인으로서 첫 '고인(故人) 아너(1억원 이상 기부자)'가 됐다.

박씨가 기억하는 페이건 3세와의 첫 만남은 1955년 대구의 주한미군 방송국(AFKN)에서였다. 12세 소년 박씨는 6·25전쟁 중에 아버지를 여의고, 초등학교만 졸업한 후 홀어머니와 동생들을 위해 생계 전선으로 뛰어든 소년 가장(家長)이었다. 페이건 3세는 한 해 전 한국으로 파병돼 미군 방송국의 아나운서로 일하고 있었다.

10대 소년이 AFKN 아나운서와 만나게 된 경위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박씨는 "고인이 한국에 머무르는 1년 남짓한 시간 저에게 영어를 가르쳐주고 제가 정직하게, 올바른 사람으로 살도록 이끌어 줬다"고 말했다.

페이건 3세는 1956년 1월 목회자의 길에 대한 확신을 갖고 미국으로 돌아갔지만 영어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인연을 이어갔다. 박씨는 "고인은 신학생 시절 넉넉하지 않았을 텐데 저에게 중학교 학비로 처음 25달러를 보내줬다"면서 "8년간 그가 보내준 학비는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큰 사랑이고 지지였다"고 했다. 박씨는 1973년 영어 교사가 됐고 1999년 은퇴했다.

페이건 3세는 1990년까지 미국 버지니아주의 한 성공회 교회 목사로 활동 후 은퇴했다. 박씨는 1994년 무렵에도 미국을 찾아가 고인과 그 가족을 만나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고인이 2003년 세상을 떠난 사실을 뒤늦게 유족들로부터 전해 들었다.

/일러스트=이철원

 

"고인에게 제가 보답할 수 있는 길은 고인의 이름으로 그의 뜻을 받들어 기부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신이 도와준 그 한국인이 은혜를 저버리지 않았다'는 걸 전해주고 싶었어요."

박씨는 "저도 넉넉한 형편은 아니지만 고인처럼 자라나는 아이들이 조금이나마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데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좋아요 167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5/26/2020052600021.html